한덕수 8년 감형…‘공직·훈장’이 면죄부인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법부의 존재 이유는 권력자의 과거를 예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데 있다.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1심의 징역 23년에서 무려 8년을 깎아준 ‘통 큰’ 감형이다. 재판부가 내세운 감형 논리는 실로 빈약하며, 주권자인 국민의 법감정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과연 사법부가 헌정 질서를 파괴한 내란범죄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훈장이 ‘반국가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50여 년 공직에 봉직하며 다수의 훈장과 포장을 수여받는 등 국가에 헌신했다는 점을 주요 감형 사유로 꼽았다. 이는 지극히 전근대적인 ‘공적 상쇄’ 논리다. 고위 공직자가 누린 명예와 권한은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이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차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아니다. 오히려 국무총리라는 최고위직을 지낸 인물이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리고 내란에 동조했다면, 그 책임은 일반인보다 훨씬 무거워야 마땅하다. 훈장이 면죄부로 둔갑하는 순간, 사법 정의는 무너진다.
‘6시간의 해제’는 면죄부가 아닌 사후 수습일 뿐이다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는 점을 ‘공로’로 인정한 대목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내란이라는 참혹한 사태가 발생한 시점에서 국무회의 소집은 국무총리로서 당연히 행했어야 할 법적 절차이자 사후 수습에 불과하다. 불을 지른 자가 뒤늦게 물을 끼얹었다고 해서 방화의 죄책이 사라지지 않듯, 헌정 유린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취한 조치를 ‘헌신’으로 포장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기록상 가담 증거 부족’이라는 궁색한 변명
재판부는 내란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 전후의 정황과 국정의 2인자로서 그가 점유했던 위치를 고려할 때, 이를 단순한 ‘방조’나 ‘소극적 가담’으로 치부하는 것은 사법부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국민은 한 전 총리가 침묵하고 동조했던 그 시간 동안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운 벼랑 끝에 서 있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죄를 지어도 과거의 명성으로 탕감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헌정 질서를 유린한 죄에 대해 사법부가 이토록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는 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언제든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 상급심은 이번 감형 판결의 부당함을 바로잡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상식을 회복시켜야 한다. 사법부의 존재 이유는 권력자의 과거를 예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