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첩 을 만들다] ①끝나지 않은 안기부 시절 조작 행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는 2023년,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당국은 신 대표가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해 지령과 공작금을 수수하고 국내에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피의 사실을 공표하며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에게 간첩 낙인을 찍었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활동 이력과 엮어 세월호 간첩 이라는 악명까지 붙였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에 이어 지난 9월 25일, 대법원은 그에게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이는 보수 언론이 즐겨 쓰는 증거 불충분 과는 본질이 다르다. 신 대표가 밝혔듯, 수년간에 걸친 내사와 불시의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증거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은, 증거 자체가 부재 를 확인한 사건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막대한 인력과 세금을 투입해 한 평범한 시민을 어떻게 간첩 으로 조작하려 했는지, 그 비상식적인 조작의 전 과정을 추적한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18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평화쉼터에 주차된 차량을 압수수색 하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1.18. 연합뉴스
국가정보원(국정원).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방식은 과거 안전기획부(안기부) 시절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평범한 한 시민을 수년간 국내와 해외에서까지 조직적으로 불법 사찰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바로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의 이야기다. 그가 법정에서 마주한 증거 들은 그가 간첩이어서 가 아니라, 간첩으로 만들어져야 했기 에 수집됐다.
국정원과 검찰이 신 대표에게 씌운 혐의는 구체적이고 촘촘했다. 그들은 (신 대표가)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은밀하게 접선하고, 공작금을 수령하고, 지령을 받아 국내에 잠입하여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고 북한 지령에 따라 활동했다 고 했다. 이 무거운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은 증거 확보 라는 명분으로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그의 일상을 샅샅이 훑었다.
신 대표가 국정원의 감시망에 포착된 것은 2017년 1월부터로 보인다. 하지만 작전 이 본격화된 것은 그가 캄보디아를 방문한 2017년 9월이다. 신 대표는 당시 자신이 캄보디아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출국하는 날까지, 자신의 모든 행적이 국정원에 의해 촬영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재판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됐다.
감시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했다. 국정원 요원들은 신 대표가 소위 북한 공작원 을 만났다는 객실 바로 맞은편 방에 투숙하며 24시간 감시를 이어갔다. 신 대표는 국정원 요원들은 호텔 입구와 객실 복도에 미리 카메라를 설치했고 바로 맞은편 방에 며칠을 묵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고 말했다.
제주평화쉼터에서 대화 중인 신동훈 대표.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기자는 신 대표에게 국정원의 감시와 간첩 만들기 밑그림의 실체에 대해 직접 물어봤다.
-2017년부터 수년 간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감시가 이뤄졌다. 그들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신 대표를 쫓았다고 생각하나?
그들은 내가 간첩 행위 를 하는 순간을 포착하려 한 게 아니다. 이미 간첩 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거기에 끼워 맞출 그림을 찾고 있었다. 통화 녹취에서도 말했듯, 그들은 내가 캄보디아에서 공작금을 받고 지령을 받아오는 증거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그 집요한 감시가 저의 무죄를 증명한다. 그들은 나의 모든 행적을 보고 대화 내용을 다 들었다. 캄보디아 호텔 맞은편 방에서 24시간 도청까지 한 것 같다. 하지만 그 결과, 간첩 혐의와 관련된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내가 간첩 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가장 잘 알게 됐다.
-국내에서 숲 해설사로 일하던 일상마저 감시해 제주 부부 회합 이라는 증거로 둔갑시켰나?
그것이 바로 조작의 본질이다. 그들은 내가 제주 동백동산(곶자왈)에서 방문객들에게 숲 해설을 하는 장면을 은밀한 회합 으로 포장하려 했다. 당시 촬영된 장소는 제주공항 입국장, 내 자택, 그리고 동백동산이다. 내가 방문객을 마중 나가고, 집에서 나와 숲 해설을 하던,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이었다.
만약 그들이 정말 내가 비밀 결사 조직 활동을 했다고 의심했다면 왜 그 숲 해설 현장을 덮치지 않았겠나? 그들은 이미 도청과 감시를 통해 그 자리가 간첩 활동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거 가 필요했기에 그 영상을 제주 부부 회합 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냈다.
국가기관이 막대한 인력과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수년 간 한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이유. 그것은 진실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해둔 간첩 이라는 답안지에 억지로 증거 라는 이름의 낙서를 채워 넣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