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인들이 서부 개척기 들소를 대량학살한 까닭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질주하는 들소들을 배경으로 흰 말을 타고 달려가는 노음 크리스티 전 국토안보부장관. 광고 동영상 갭처
갈색 말을 탄 카우보이 차림의 여인이 광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향해 자신만만하게 얘기한다.
내가 왜 이런 광활한 공간(wide open space)을 사랑하느냐고? 우리 선조들이 왜 여기로 왔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지. 이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만이 줄 수 있는 자유를 위해. 나는 크리스티 노엄입니다.”
지난 3월 5일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국토안보부 장관자리에서 쫓겨난 그 크리스티 노엄(55)이다.
국토안보부장관직에서 쫓겨난 노엄의 광고
그녀 배후에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미국역사 영웅들의 거대한 얼굴조각들이 새겨진 러시모어 바위산이 보인다. 그곳이 노엄이 2019년부터 트럼프 정권에 들어간 2025년까지 그녀 자신이 주지사로 있던 미국 중서부 사우스 다코타 주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장면이 바뀌면서 이번에는 다른 차림새로 백마를 탄 노엄이 앞쪽에서 달려가고 있고, 그 뒤에는 수많은 바이슨(baison 아메리카 들소. 미국에서는 버팔로(buffalo)라 불린다. 둘은 생김새가 비슷한 소과 동물이지만 조금 다르다) 무리가 초원을 떼재어 한 방향으로 질주하고 하고 있다.
제퍼슨, 루스벨트 등의 거대 얼굴조각이 새겨진 러시모어산을 배경으로 말을 타고 가는 노엄 크리스티. 광고 동영상 캡처
노엄은 미국이 자유를 찾는 사람들의 고향이 되겠지만, 자신은 ‘불법 이민’을 단속할 것이라며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미국 시민을 다치게 한 자는 응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1분짜리 동영상 광고 때문에 노엄은 쫓겨났다. 역설적이게도 응징을 당한 자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의 경질 이유로 지난 1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이민단속 요원들의 무리한 불법 이민자 단속 중에 시민 2명이 잇따라 단속요원 총에 맞아 사망한 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오히려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된 사실이 거론됐다. 2월 말 미국의 이란 침공 뒤 원유공급 차질 등으로 가솔린값이 오르고 인플레가 더욱 악화되면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지고 있던 상황에서, 11월 중간선거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 트럼프는 자신이 총애해 마지 않던 노엄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 며칠 뒤인 10일에는 백악관이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향해 중간선거 악재가 될 수 있는 이민자 대량 추방(mass deportation) 강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처럼 국토안보부가 주도한 이민단속 정책에 대한 이미지 악화가 노엄 경질의 한 가지 이유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더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노엄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제작한 그 광고 동영상이었다. 그녀는 거기에 2억 2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정부자금을 가져다 썼고, 그것이 문제가 돼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트럼프의 승인을 받았느냐는 의원들 추궁에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기 광고를 불법이민 단속의 정당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트럼프의 점수까지 따려 했다가 역풍과 함께 그러잖아도 떨어지는 지지율에 예민해진 트럼프의 역정까지 사 잘린 것이다.
‘서부 개척’은 백인들의 선주민 식민지배 과정
동영상에서 서부를 개척한 카우보이들”을 정당한 방법으로” 미국에 온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추구한 것은 ‘자유’였다고 주장한 노엄의 그 ‘자유’는 19세기에 새로 미국땅으로 편입한 ‘서부’로 몰려 간 백인 식민자들의 자유였다.
자유노동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며 남부의 노예제를 반대하는 정당으로 1854년에 창당한 공화당은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 링컨 정권을 창출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시작된 남북전쟁 때 경작자들에게 공유지를 무상 불하한 홈스테드법(Homestead Act. 1862년. 자영농지법으로도 불린다)을 제정해 연방정부가 입식자들(‘서부 개척’에 나선 백인 식민자들)에게 노엄이 얘기한 광활한 공간”을 (각자가 가질 수 있을 만큼) 자기 땅으로 삼아도 좋다고 사실상 인정해 준 결과, 계속 확장되던 철도망(1865년에 최초로 대륙횡단철도 개통)까지 가세해 동부의 거대한 인파가 서부로 밀려 들어갔다.
하지만 서부는 빈 땅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많은 선주민들(아메리카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백인들은 남북전쟁을 통해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키면서 같은 시기에 서부 선주민들로부터 광대한 땅을 빼앗았다. 선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 안에 그들을 가둬 넣고는, 무력으로 그들을 ‘토벌’해 궤멸적인 타격을 가했다. 백인들의 ‘서부 개척’은 실은 선주민들의 땅을 빼앗아 식민지로 만든 것이었고, 홈스테드법은 그들 백인 식민지 정착민(입식자)들의 토지 탈취를 합법화한 것이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나 요르단강 서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선주민 땅 빼앗기와 입식이 이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아메리카 들소 바이슨. 미국인들은 버팔로라고 부른다. BBC
440만~800만이던 선주민 20만~30만으로
미국역사의 영웅,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백인 지배계급 영웅들의 거대 두상이 새겨진 러시모어산을 포함한 ‘블랙힐즈’도 원래 그 일대에 살았던 선주민 라코타 수우족의 성지였던 ‘파하사파’(Paha Sapa 검은 언덕)였다. 백인정부는 1868년에 그 일대를 선주민의 영토로 지정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고 그들을 그나마 그 한정된 지역에 가둬 ‘보호’하는 듯했으나, 6년 뒤인 1874년에 그 주변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채굴자들이 몰려들자 1876년에 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고는 전쟁을 벌여 그 땅을 모조리 빼앗았다.
노엄이 동영상에서 얘기한 그의 선조들의 ‘정당한 이민’의 실상이 그런 것이었다.
그 토지 강탈이 불법이었다는 것은 100년이 지난 1980년에야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선주민들에겐 이미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백년이었다.
유럽 백인들이 밀려들어오기 전의 아메리카 선주민 수는 440만~800만 쯤으로 추산됐으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20만~30만으로 줄었다. 최근까지 그들의 수는 다시 예전 수준을 회복해 가고 있지만, 그들의 잔혹한 수난사는 잊혀졌다.
노엄이 자랑스레 얘기한 광활한 공간”은 청정한 빈 땅이 아니라 그들의 선조가 선주민들로부터 약탈한 피눈물로 얼룩진 땅이었다.
산처럼 쌓아 올린 무수한 들소들의 뼈. 디트로이트 공공도서관 임병선
3000만~6000만이던 들소들은 456마리만 생존
백인들의 그 식민지 약탈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것은 선주민들만이 아니었다. 선주민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기둥 가운데 하나였던 바이슨(미국인들은 ‘버팔로’로 지칭)도 대량 살해당해 거의 멸종 직전까지 갔다.
선주민들의 (백인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높여 토지 양도에 응하도록 만들기 위해 합중국(백인 정부)은 정책적으로 평원 민족(대평원의 선주민들)의 기본적인 경제기반인 버팔로를 절멸시키도록 군에 지시했다.”(대니얼 임머바르 , 글항아리)
아메리카 들소 대량학살을 다룬 BBC 다큐멘터리가 인용한. 위의 사진 중 아래 부분.. BBC
선주민의 경제 젖줄 말리기 위해 들소 학살
1880년대까지 그레이트 플레인(대평원)의 들소들은 거의 절멸당했다. 백인들은 선주민 학살과 함께 선주민의 경제적 젖줄이던 들소들을 절멸시킴으로써 선주민들의 투항을 유도하려 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선주민들은 연간 10만 마리 미만의 개체만을 사냥해 들소의 수를 1800년대 초반까지 3000만~6000만 마리로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889년 1월 1일 현재 미국에는 순종 들소가 고작 456마리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중 256마리는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한 줌밖에 안 되는 보호구역 안에 갇힌 상태로 생존했다.(BBC. 2024.12.4. ‘산더미처럼 쌓은 들소 해골들, 더 무섭고 소름끼치는 이유’ 임병선)
노엄이 만든 동영상에 배경으로 비친 들소들은 그러나 AI로 만든 가짜영상이 아니다. 1890년대에 조직적인 들소 보호운동이 시작됐고, 그 덕에 상당수가 복원됐기 때문이다.
들소 보호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뉴욕에서 1899년에 문을 연 브롱크스 동물원이었다. 거기에서 번식된 들소들 중 14마리가 1913년에 블랙힐즈 남쪽에 있는 윈드케이브 국립공원까지 철도로 실려가 증식됐다.
버팔로 사냥하던 루스벨트, 들소 보호자로 변신
서부 ‘개척’시대 이후 자연보호와 야생동물 보호운동, 국립공원 설치를 추진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1901~1909년 대통령(제26대)직에 있던 루스벨트는 트럼프의 ‘돈로주의’보다 100년도 더 전에 제국주의적인 ‘먼로 독트린’을 다시 제창했다.
1858년 뉴욕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는 20대 후반에 다코다에서 들소 사냥과 목장경영을 하면서 열정적인 ‘개척자적 삶’을 보냈다. 말하자면 그는 맥인들의 서부 ‘개척’시대의 선주민 배제와 들소 절멸정책의 마지막 연대에 가담하면서 자신이 파멸로 몰아간 대상을 애처롭게 여기는 도착적인 수호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브롱크스 동물원과 아메리카바이슨협회 설립에 깊이 관여했던 것이다.
그 무렵 국내 정복, 곧 내부 식민지 개척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루스벨트는 1898년에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차관직을 내던지고 육군 지원병이 돼 선주민과의 전쟁 경험자들과 함께 ‘러프 리이더스’(Rough Riders)라는 의용군 기병대를 창설하고 스페인을 상대로 쿠바 정복 전쟁에 참전했다. 1901년에 대통령이 된 뒤에는 강력한 해군력을 토대로 카리브해 주변에서 강압적인 제국주의 ‘곤봉 외교’(Big Stick Diplomacy)를 펼치는 한편, 태평양 쪽에서는 열강들에 잠식당하고 있던 중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문호개방’정책을 추진했다.
인종차별주의자 루스벨트의 한국과의 악연
그때 루스벨트는 일본을 아시아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이용하려 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데에는 루스벨트의 그 전략이 크게 기여했다. 1904년 러일전쟁 때 루스벨트는 일본의 전쟁비용을 대는 재정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영국과 함께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그는 1905년 러-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중개하면서 일본에게 유리하게 체결되도록 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해 7월 루스벨트의 밀명을 받은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일본총리 가쓰라 다로를 만나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보장하는 대신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보장해 준 것이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루스벨트는 백인 외의 인종들을 경멸했으나 일본을 이용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준백인’ 대우를 해 주면서 조선인들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 마땅한 미개인 취급을 했다.( 나가타 아키후미)
이후 미국은 줄곧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일본의 독점적인 중국침략이 노골화한 뒤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고,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대일 전쟁에 돌입했다. 일본 패전 뒤 미국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을 분단해 소련과 분할통치했다. 분단과 전쟁, 1천만 이산가족 등 한국현대사의 질곡이 거기서 비롯됐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인종전시’까지 한 백인들의 비백인 차별 여전?
브롱크스 동물원과 아메리카바이슨협회 설립에 관여한 또 다른 주요 인물 중에 매디슨 그랜트가 있다. (1916)을 쓴 매디슨 그랜트는 당시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새로운 이민물결이 미국으로 밀려들고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인 이민도 늘어나자 ‘이민의 위협’을 선동하고 다른 인종과의 혼혈을 부정하면서 위대한 인종”인 북방인종”의 소멸을 걱정한 인종주의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랜트의 우생학적인 주장은 결국 1924년의 이민법(1890년 인구 조사를 기준으로 미국의 국가별 이민 쿼터를 2% 이내로 제한해 동·남유럽 및 아시아 이민을 차별·배척한 법)으로 이어졌다.
이 또한 트럼프의 ‘돈로주의’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몽골계 선주민과 히스패닉 등 남방계 인종의 미국 이민에 거부감을 지닌 트럼프 정권의 전 국토안보부장관 노엄도 노르웨이계의 이른바 ‘북방인종’이다.
1906년 브롱크스 동물원에 전시 된 오타 벵가. 위키피디아
2020년 5월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래퍼 조지 플로이드가 경관들 손에 살해당한 뒤 인종차별반대 시위가 미국과 세계로 확산되자 브롱크스 동물원은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첫째 1906년 9월의 며칠 동안 아프리카 콩고 출신의 피그미족 오타 벵가라는 남성을 원숭이 우리 속에 넣어 오랑우탄과 나란히 ‘전시’한 것을 사죄했다. 그리고 우생학에 토대를 둔 그랜트의 사이비과학적인 인종주의에 대해서도 사죄하고 그것을 비난했다.
오타 벵가는 루이지애나 매입 100년을 기념한 1904년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 때 처음으로 전시됐고, 그때의 대규모 ‘인간전시’에는 아메리카 선주민과 미국의 식민지가 된 필리핀 사람과 아이누족 사람들도 ‘전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SNS에 올린,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원숭이로 묘사한 게시물.
미국은 그런 점에서 아직도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를 원숭이로 묘사한 인종차별적인 클립이 포함된 게시물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가 비난이 일자 삭제했다.
러시모어산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백인들의 영웅을 새겨넣은 덴마크계의 가트슨 보그람 역시 노엄과 같은 ‘북방인종’으로, 그들 인종의 우월성을 맹신하며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집단 KKK에도 관여한 인물이다.
이 글은 일본의 진보적 월간지 5월호에 실린 모치즈키 히로키의 연재물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 제16편을 토대로 해서 쓴 글이다. 작가이자 NPO법인 ‘난민지원협회’가 운영하는 웹매거진 ‘닛뽄 복잡기행’ 편집장인 모치즈키는 2024년부터 뉴욕 시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