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후소비자 의 부상...160조달러 자산의 힘 [환경] 미국 연방정부가 기후 규제를 후퇴시키고 일부 기업이 지속가능성 목표를 축소하는 가운데, 미국 소비자가 새로운 기후시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이 나왔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히트펌프, 주택용 태양광, 유기농 식품 등 저탄소 상품에 실제 지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다.
15일(현지시각) ESG투데이에 따르면, 미국 친환경 금융기업 그린파이(GreenFi)의 팀 뉴웰(Tim Newell) 최고경영자(CEO)는 기고문을 통해 현재 기후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워싱턴이 아니라 미국 소비자 라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기후 규제를 후퇴시키고 일부 기업이 지속가능성 목표를 축소하는 가운데, 미국 소비자가 새로운 기후시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이 나왔다. / 챗GPT 생성이미지
전기차는 줄었지만 ‘전동화 차량’ 비중은 사상 최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5년 미국에서 판매된 경량차 가운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합친 전동화 차량 비중은 약 22%를 기록했다. 전년의 약 20%보다 높아진, 미국 역사상 최대 비중이다. 신차 5대 중 한 대 이상이 전동화 차량인 셈이다.
다만 증가세를 주도한 것은 순수 전기차가 아니라 하이브리드차였다. 미국의 전기차 세액공제가 2025년 9월 30일 종료된 이후 배터리 전기차 판매는 감소했지만, 하이브리드차 판매가 이를 상쇄했다.
기업의 전기차 투자계획만 보면 시장이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포드(NYSE: F)는 전기차 사업을 축소하면서 195억달러(약 29조원)의 비용을 반영했고, GM(NYSE: GM)도 전기차 생산계획 조정으로 60억달러(약 9조원)의 손상 및 관련 비용을 처리했다.
하지만 또다른 통계도 있다. 포드의 F-150 하이브리드는 2025년 8만4934대 판매돼 연간 최대 기록을 세웠다. 포드의 전체 하이브리드차 판매도 증가했다. 도요타(NYSE: TM)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SUV인 RAV4를 2026년형부터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로 전환했다. 기존 RAV4 구매자 가운데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선택한 비중이 절반에 육박한 데 따른 결정이다.
자동차 기업의 대규모 전기차 투자는 조정되고 있지만,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 자체는 하이브리드를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히트펌프·태양광·유기농…구매로 드러난 기후 수요
기후 소비자의 부상은 자동차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미국 공조·난방·냉동협회(AHRI)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제조업체들이 출하한 히트펌프는 약 360만대로, 가스 난로 320만대보다 약 12% 많았다. 히트펌프 출하량이 가스 난로를 넘어선 것은 2021년 이후 4년 연속이다.
히트펌프는 외부의 열을 실내로 옮기는 방식으로 난방하기 때문에, 연료를 직접 태우는 가스 난로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다. 전력 생산 과정의 탈탄소화가 진행될수록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커진다.
주택용 태양광도 보급 기반을 넓혔다. 미국 태양에너지산업협회(SEIA)에 따르면, 2025년 초 기준 미국에서 옥상 태양광을 설치한 주택은 약 470만가구에 달했다. 상업용과 산업용 설비를 포함한 미국 전체 태양광 설치 건수는 500만건을 넘어섰다.
식품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유기농무역협회(OTA)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유기농 식품 매출은 전년보다 약 7% 증가한 766억달러(약 114조원)를 기록했다. 전체 식품시장보다 약 3배 빠른 성장세다.
그린파이 팀 뉴웰 대표는 캐피털원쇼핑(Capital One Shopping)의 자료를 인용, 지속가능성을 내세운 제품이 미국 소비자 소매지출의 24.8%를 차지하며, 소비자가 일반 대체 제품보다 평균 26.6%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고 설명했다.
160조달러 가계자산, 구매보다 큰 기후시장 변수
기후 소비자의 영향력은 상품 구매보다 금융자산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미국 가계의 순자산은 약 167조3000억달러(약 25경원)에 달했다. 주식과 펀드, 퇴직연금, 은행예금, 부동산 등을 포함한 규모다.
미국지속가능책임투자포럼(US SIF)은 미국에서 지속가능 투자전략으로 운용되는 자산을 6조5000억달러(약 9750조원)로 집계했다. 전문적으로 운용되는 미국 전체 자산 52조5000억달러(약 7경8750조원)의 약 12%다.
정치적 압력으로 일부 자산운용사가 상품명에서 ESG나 지속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전문적으로 운용되는 자금 10달러 가운데 1달러 이상은 여전히 지속가능 투자전략과 연결돼 있는 셈이다.
향후 세대 간 자산 이전도 변수다. 미국 자산관리시장 조사기관 세룰리어소시에이츠는 향후 25년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약 124조달러(약 18경6000조원)의 자산이 젊은 세대와 자선단체로 이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약 105조달러(약 15경7500조원)는 상속인에게, 약 18조달러(약 2경7000조원)는 자선단체에 이전될 것으로 예상됐다.
연준 자료상 베이비붐 세대가 보유한 자산은 2025년 2분기 약 83조3000억달러(약 12경4950조원)로, 미국 가계자산의 절반을 넘는다. 밀레니얼 세대의 순자산도 2019년 3분기 3조9400억달러(약 5910조원)에서 2024년 3분기 약 15조9500억달러(약 2경3925조원)로 5년 만에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기후변화를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라 주택보험료와 전기요금, 폭염, 산불, 홍수 등 생활비 문제로 경험한 세대가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게 되면 금융상품과 주택, 자동차, 에너지 소비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 있다.
기업의 기후전략, 규제에서 고객 분석으로
미국에서 판매가 늘어난 대표적인 저탄소 제품은 환경성만 강조한 제품이 아니다. 하이브리드차는 연료비를 줄이면서 충전 부담을 피할 수 있고, 히트펌프는 냉방과 난방을 하나의 기기로 해결할 수 있다. 태양광 설비는 전기요금과 정전 위험을 낮추는 수단으로 판매된다.
소비자는 탄소 감축량만으로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가격과 성능, 편의성, 에너지 비용, 유지비, 정책 인센티브를 함께 비교한다.
뉴웰 CEO는 기업의 기후전략은 더 이상 규제를 관리하거나 행동주의 주주를 만족시키는 문제만이 아니다 며 고객을 읽는 문제 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