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페이지투미   페이지투미 플러스
페이지투미 홈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모아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김어준과 최욱 넘어 곽노현으로

김어준과 최욱 넘어 곽노현으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성용 신부(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한국의 시사 유튜브는 더는 주변부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미디어가 감당하지 못한 권력 감시와 의제 설정 기능을 수행하며 정치 공론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배경에는 사회문화적 차원의 큰 변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하며 한 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던 기존 미디어의 시대에서, 이제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구조 속에서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환경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실시간 반응과 댓글, 참여를 통해 여론이 형성되면서 기존의 소통 구조는 빠르게 약화되고 있으며, 새로운 미디어들은 촌각을 다투며 사용자들을 끌어들이는 경쟁 구도 속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물에서 놀아도 스타일은 확연히 다른 유튜브계 두 총아 그 중심에 서로 다른 방식의 두 플랫폼이 있습니다. 하나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이고, 다른 하나는 최욱의 〈매불쇼〉입니다. 이 둘은 같은 진영으로 묶여 논의되곤 하지만 작동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김어준이 창이라면 최욱은 방패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김어준이 전선을 긋고 돌파하는 방식이라면, 최욱은 들어온 공격을 받아내며 해석하는 방식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김어준이 뉴스를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면 최욱은 뉴스를 확산시키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김어준이 의제를 만들고 방향을 제시하는 아젠다 세터라면, 최욱은 그것을 대중적 언어로 번역해 공론장으로 퍼뜨리는 중계자입니다.   김어준 뉴스공장 화면 캡처 이 차이는 정치 문화의 층위와도 연결되는 듯합니다. 김어준의 방식은 1980년대 논쟁 정치의 당파성을 일정 부분 계승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선명한 전선, 강한 프레이밍, 지지층 결집이라는 운동형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반면 최욱의 방식은 대중성의 정치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양한 패널과 상호작용, 피드백을 통해 여론을 조정하고 토론의 장을 형성하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소통 방식에서도 차이가 관찰됩니다. 김어준은 댓글을 유도하고 반응을 조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최욱은 댓글에 반응하며 입장을 조정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김어준이 전투적 언어, 가령 ‘쫄지마!’로 국면을 돌파하려는 스타일이라면, 최욱은 낄낄거리는 웃음과 수정의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사과합니다”라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최욱 매불쇼 화면 캡처 그들의 한계와 과거 민주정부의 과오에 대한 문제의식 이 두 매체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는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권력 감시의 공백을 메우고 정치적 무관심을 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이는 분명히 평가받을 필요가 있고 감사할 지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한계 역시 지금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투형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자기 수정 능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고, 공론장형 커뮤니케이션은 구조개혁을 견인할 동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진지한 주제들을 희화화하거나 단순화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 이후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성과와 공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확장과 시민 참여의 제도화, 권위주의 잔재의 해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과오 역시 냉정하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특히 윤석열이라는 괴물 권력의 등장에 이르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구조적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은 성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독설과, 조국혁신당에 대한 함돈균 교수의 정신분석학적 해석에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정치가 자기 정당화의 서사에 갇힐 때 현실 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의 국면이 내부 비판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합니다. 내란 세력의 완전한 척결이라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란 세력 책임 추궁과 같이 가야 할 권력 구조 재설계 그럼에도 집권 세력 내부에서 나타나는 일부 모습들은 우려를 낳습니다. 공소 취소를 촉구하는 의원들의 대규모 집단행동이나 과도한 충성 경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은 숙의와 포용의 정치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긴 시간 거리에서 함께 행동해 온 시민들에 대한 존중과 공존의 사유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점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동원의 언어가 설계의 언어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내란 세력에 대한 분명한 책임 추궁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제도 개혁입니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하는 과제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요구하는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권력 남용을 차단하는 제도가 없다면 적폐 청산만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상법개정’은 코스피 6000시대를 넘어 경제구조의 개혁과 변화를 끌어내는 커다란 사회대전환입니다. 이 지점에서 민들레에서 보여준 곽노현의 ‘정치시스템 개혁’의 문제 제기가 ‘광야의 예언자’의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그의 개혁론은 ‘급진적 실용주의’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급진적(radical)’이라 함은 과격함이 아니라 뿌리로 간다는 의미에서 이해됩니다. 라틴어 radix”가 뿌리”를 뜻하듯 문제의 표면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자는 제안으로 이해됩니다. 이재명 대통령 개인의 역량과 개인기로 국면을 전환할 수는 있겠지만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권력은 다시 엘리트 구조로 수렴할 가능성이 큽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직후 84%, 퇴임 지지율이 45%였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이, 아니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민들레에 연재하고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 ‘정치 시스템 개혁’ 칼럼들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는 개인보다 구조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 권력의 집중, 사법 엘리트의 폐쇄성, 책임성 없는 관료 체계가 유지되는 한 정치적 성과가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기 어려워 보입니다. 인물 교체만으로 사회를 바꾸겠다는 기대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거나 오류가 없다고 전제하는 태도 역시 민주주의의 성숙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 바꾸는 정치에서 사회대전환의 구체적 실천으로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확성기의 에너지와 공론장의 숙의를 제도 설계로 연결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원은 숙의로 이어져야 하고 숙의는 구조개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팬덤 경쟁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친명, 반명, 문빠, 찐윤, 반윤. 이런 말들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그러나 ‘수박’은 여전히 유효한 듯합니다) 김어준의 창과 최욱의 방패, 수많은 정치해설, 모두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제는 뿌리를 겨냥하는 개혁의 언어, 사회대전환의 언어와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합니다. 정치의 중심을 인물에서 제도로, 전투에서 설계로 이동시킬 때 권력 분산과 민주주의의 안정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대통령을 바꾸는 정치에서 구조를 바꾸는 정치로 나아가야 할 시기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확성기와 공론장을 넘어 뿌리로 가는 개혁이 요구되는 시간으로 보입니다.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