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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유대인에게 불편 웨일스 갑부 독일 여권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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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홈페이지 갈무리 오늘날 영국은 유대인들에게 불편한 곳이다. 1954년 9월 12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서 태어난 억만장자 투자자 마이클 모리츠(71) 경은 조부모와 사촌 등 친척 상당수를 홀로코스트에 잃은 유대인이다. 가족의 나치 경험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 마이클 경은 지난해 맨체스터 히튼 파크 시나고그 공격을 예로 들며 영국이 유대인들에게 미국보다 훨씬 적대적 이라며 반유대주의가 항상 공기 중에 있다 고 개탄했다. 그는 또 가족 전체가 겪었던 박해와 현재의 유대인 공격에 비슷한 점이 있다며 보험 증권 (insurance policy)으로 독일 여권을 신청했다고 털어놓았다고 영국 BBC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 보험 증권 이란 표현은 박해를 피해 달아날 수 없었던 조상 중의 일부가 미국이나 영국으로 탈출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때 쓰던 표현이다. 마이클 모리츠 경의 이름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시사주간  타임 기자로 일하며 샌프란시스코 지국장을 맡아 애플을 비롯한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을 알게 됐다. 애플의 초기 성공을 다룬 책 스티브 잡스와 애플 Inc. (The little kingdom : The private story of Apple computer)은 잡스와 애플의 초기 성공 요인을 심도있게 분석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1986년 기자 직을 그만 두고 벤처 캐피털로 전향해 세쿼이아 캐피탈에 합류했다. 구글과 야후 말고도 페이팔, 유튜브, 링크드인 등 수많은 정보통신(IT) 기업들을 초기에 발굴해 투자했다. 덕분에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투자자 명단에서 여러 차례 1위에 올랐다. 구글에 투자하면서 경험 많은 임원을 보강해야 한다는 투자 조건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모리츠다. 그 조항 때문에 영입된 인물이 훗날 구글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에릭 슈미트다. 국내 축구 팬들에게도 낯익은 얼굴이다. 그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7년에 걸쳐 리더십을 주제로 의견을 나눈 결과를 담은 책 리딩 (Leading)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마이클 모리츠 경이 어머니 도리스의 무릎 위에 앉아 있으며 외조모와 함께 한 외조부의 무릎에 여동생이 앉아 있다. 모리츠 가족 제공 영국과 미국 여권을 모두 소지한 71세의 그는 2000년대 초 닷컴 붐 시기에 야후와 구글 같은 기업에 투자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여 웨일스인으로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란 얘기를 듣는다. 회고록 아우슬랜더 (Ausländer)를 통해 마이클 경은 나치 치하에서 가족이 겪은 일을 상세히 기록한다. 그의 친조부모 맥스와 미니 모리츠는 홀로코스트 당시 희생된 많은 친척들 중 한 명이었다. 공공 기록을 통해 그는 그의 친척 두 명, 증조부 오스카 모리츠와 사촌 미라 마르크스가 버스에 태워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되는 모습이 게슈타포 경비병에 의해 사진으로 찍힌 사실을 발견했다. 마이클 경의 부모는 독일을 탈출해 카디프로 정착했으며, 그는 현재 문을 닫은 페닐란의 하워디언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외부인이라는 느낌이 따라다녔으며, 10대 시절 전화번호부를 열어 M 섹션을 훑어보며 가족만이 Moritz 로 기록되지 않길 바랐다고 회상했다. 에반스와 토마스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유일한 모리츠였다. 그리고 내게는, 마치 여백에 검정 대문자로 유대인 이라고 적혀 있는 것 같았다.   마이클 경의 증조부인 오스카 모리츠와 그의 사촌 미라 마르크스가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되는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게슈타포 경비병들이 찍은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 기록보관소 제공 마이클 경은 BBC 뉴스 인터뷰를 통해 반유대주의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여러 사회에서 문제였지만, 영국이 유대인들에게 미국보다 훨씬 더 적대적 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대속죄일(욤 키푸르)에 치명적인 공격 현장을 언급하며 내 사촌들은 히튼 파크 시나고그에서 반 마일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산다 면서 그리고 그들은 그 특정 시나고그의 신도는 아니었지만,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고 돌아봤다. 마이클 경은 반유대주의 때문에 런던 북서부의 유대인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식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며  이런 일화들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와 닿았다 고 털어놓았다.  그의 발언은 시나고그 공격 이후 영국에서 반유대주의 사건 보고가 급증한 가운데 나왔다. 마이클 경은 이제 독일 여권을 신청 중이라며 그 이유로  유럽에서 거의 100년 전 일어난 일이 교육 시스템의 매우 중심적인 부분을 형성하는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세대가 그 의식의 일부로 자라왔다 고 설명했다. 그에게 그러면 앞으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줄 거라는 뜻이냐 고 묻자 아니다. 하지만 약간의 위안이 되기 때문 이란 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도 마이클 경은 2001년에 당시 웨일스 수석장관 로드리 모건과의 만남이 그 다르다 는 느낌을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털어놓았다. 웨일스 정부의 실리콘밸리 무역 방문 중, 모건이 얘기를 이렇게 시작했다고 전했다: 마이클, 너 같은 착한 유대인 소년이 왜 실리콘밸리에 있지? 그는 그 발언이 즉시 자신을 카디프에서의 어린 시절로 데려가 웨일스인이 아니라는 모든 감정, 다르다는 감정 을 불러일으켰다고 돌아봤다. 그건 마음의 신경을 건드렸다... 정말 생생했다. 마이클 경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혀를 깨물었다. 굳이 말다툼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 말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나는 그것을 기억한다. 그는 이런 발언이  엄청난 악의 를 담고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자신이 영국에서 유대인으로 자라고 살면서 묘사한 더 넓은 패턴에 부합한다고 본다.   1949년 결혼식 날의 마이클 경의 부모 알프레도와 도리스. 모리츠 가족사진 마이클 경은 웨일스의 최고 부자로 매년 이름을 올리는 것에 대해 눈을 굴리며, 절약 정신이 투철한 어머니 도리스가 자신을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곤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항상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했다 며 입을 연 그는 자신의 이름이 신문 부호 명단에 오를 때 어머니가  놀랐다 며  내 생각에 그녀는 죽을 때까지 내가 사기꾼일 거라고 확신했던 것 같았다 고 웃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카디프에서 어머니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경찰이 문 앞에 있다면, 어머니는 분명 아, 마이클을 찾고 있구나 라고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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