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 자본주의’ 시대, 과연 선거란 무엇인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춘천에 3600억 원을 투자해 데이터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굴지의 데이터 기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겠다” “이번 사업은 친환경 무탄소 에너지 기술과 최첨단 데이터 기술이 시너지를 창출하는 멋진 성공 모델” “730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춘천과 강원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 이는 디지털 산업 종사자 3만 명, 디지털 기업 3000개, 매출 300% 성장을 이루는 ‘333 프로젝트’를 조기에 안착시킨다는 구상이다. 또 “(이미 착공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외에)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곳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더 건설하겠다” “강원도 국유림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어 관광열차 등을 설치하도록 하겠다.” 이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붕괴일이기도 한) 3월 11일 강원도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와 수열에너지 융복합클러스터 착공식에서 한 말들이다. “올해 시작된 민생토론회는 정책 공급자가 아닌 정책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과제를 발굴하고, 각 부처와 부처의 벽을 허물어서 국민들께서 빨리 체감하실 수 있도록” 속도를 높이려는 강한 의지의 산물이다.
세수 600조 훌쩍 넘는 1000조 짜리 ‘우익 포퓰리즘’
대통령이 직접 참여, 주관하는 민생토론회는 올 1월 4일에 시작하여 3월 11일까지만 해도 모두 19차례를 찍었다. 그간 수도권 12회, 영남 4회, 충청 2회, 강원 1회 개최했다. 아직 호남과 제주에선 열리지 않았다. 이 민생토론회는 전국 각지의 핵심 이슈에 유관 부처, 지자체를 연계해 개최함으로써, 최소한 겉보기에는 민초들 요구를 직접 국정에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관권선거’ ‘총선용 선심 공약’ ‘환경보다 개발 우선주의’ 등 비판이 쏟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여야 영수회담은 한 번도 개최하지 않으면서, 또 ‘본부장 비리’ 문제를 둘러싼 특검들은 철저히 거부하면서, 총선을 몇 개월 앞두고 약 1000조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갈 개발 사업만 전국 곳곳에 약속하는 ‘우익 포퓰리즘’을 강행하니 대략 난감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 예산에서 세금 수입이 600조 원 규모인데, 국가 부채가 이미 1300조 원 규모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공공부채를 모두 합치면 총부채가 6000조 넘는다. 1년 간 부가가치 총생산을 뜻하는 국내총생산(GDP)이 2200조 규모이니 지금 대한민국은 자기 역량의 3배 가까이를 부채로 안고 산다. 갓난아기조차 1인당 빚이 1억이 넘는 ‘부채 공화국’이다. 공식적인 나라 살림조차 이렇게 빚더미이고 이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앞뒤 생각않고 공약(空約)으로 끝날 공약(公約)만 남발한다. 모두, 표(票) 때문이다. 표가 돈이고 권력인 세상이니까! 내 아버지는 1919년생으로 팔십 평생 일자무식이었지만 늘 “허가 받은 도둑놈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한탄하셨다. 나는 어릴 때 그 진의를 잘 몰랐지만, 갈수록 ‘딱’ 맞는 말씀이라 찬탄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N. 프레이저 교수는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에서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질서’가 아닌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볼 것을 주문한다. 자본주의가 단지 인간 노동만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이는 착취 시스템이 아니라 여성의 돌봄, 자연 생태계, 제3세계 빈민, 공적 정치영역 등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들을 착취, 수탈, 약탈하는 시스템으로 확장해 살피자는 얘기다. 나는 인류가 오늘날 불행하게 된 뿌리를 여러 모로 파헤치던 도중, 자본주의에 대한 시야를 확장하자는 프레이저 교수의 이 주장에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그간 유사한 주장과 입장을 펼치는 학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프레이저 교수는 그 모든 논의들을 종합한 것으로 보인다.
진보 포퓰리즘‘도 경계해야 할 ‘식인 자본주의’
따지고 보면, 자본의 가치증식은 직접적 생산과정에 돌입한 인간 노동력만이 아니라 그 노동력을 낳고 기르며 돌보는 돌봄노동(주로 여성이 수행), 물이나 공기, 흙, 천연자원 등 모든 삶의 토대인 자연 생태계, 나아가 ‘야만인’ 내지 ‘미개인’이라 불리며 노예 취급되던 제3세계 사람들, 그리고 국민의 혈세(피땀, 눈물의 결실)로 나라 살림을 운영하는 공공 정치(좁게는 노동법과 노동행정, 넓게는 모든 제도와 정책) 등 다양한 측면에 의존하며 그 진액을 빨아들이며 진행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A. 스미스나 D. 리카도의 ‘노동가치설’도, K.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도 오늘날 자본주의 분석에 미흡한 면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제대로 분석,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면 페미니즘, 생태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국가주의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물론 나는 종종 현실 (국가주의) 정치에서 대안으로 등장하는 ‘진보 포퓰리즘’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원래 ‘대중(인기) 영합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populism)은 좌우를 막론, ‘표(票)’에 갇힌 정치, 따라서 ‘성장-분배 줄다리기’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H. 하이데 교수의 말처럼, “(자본주의 폭력의 역사에서) 포퓰리즘을 낳는 토양은 기존의 두려움이 더 이상 억압·회피·대체되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성된다.”(‘포퓰리즘의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녹색평론>159호, 2018년 3~4월) 포퓰리즘은 표(票)를 위해 피해의식과 희생양(표적), 원한과 상처, 두려움과 불안감, 분노와 증오, 공격성과 폭력성을 활용한다. 표가 곧 돈이고 권력이다. 따라서 표(票) 정치는, 시스템 자체를 원점 재검토 하지 않기에 자본의 그물망에 곧잘 휘말린다. 이런 면에서 (4.10 총선을 앞두고) 약 1000조 원 규모의 개발 공약을 남발하는 윤 대통령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정부의 5대 실정을 심판하고 5대 국가비전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겠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약 역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선, 윤 대통령이 춘천에서 민생토론회 이름으로 ‘선거 개입’을 하던 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3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태원참사, 채상병 사망, 양평고속도로,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등 윤석열 정부의 5대 실정(‘이채양명주’)을 이번 4·10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채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 피의자 신분이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대통령이 나서서 “호주 대사로 임명하고 개구멍을 통해 도망시키는 일을 벌였다”며 나무랐다. “과연 제정신인가” 반문했다. (호주 교민들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제 호주 대사는 ‘도주 대사’로 불린다.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공수처를 공수표로 만들어버렸으니, 일단 매우 정당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이재명의 ‘5대 국가비전’은 윤석열식 패러다임에서 자유롭나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5대 국가비전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겠다”고 했는데, 그 5대 비전이란, 합계출산율 1.0 회복을 위한 출생소득 종합 정책 물가 상승률을 2%로 낮춰 서민·취약 계층 보호 성장률 3% 회복 미래 전략산업 육성 주가 및 코스피 5000시대 개막 등이다. 이른바 ‘1-2-3-4-5 공약’이다. 나는 (민주당 안에서조차) 고립무원의 이재명 대표가 몇 차례나 ‘죽음의 위기’까지 극복하며 지금에 이른 것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앞에 나온 춘천에서) “데이터가 돈”이라며 세상 만물을 상품화, 심지어 공공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드는 윤석열식 패러다임이 (전형적인 ‘식인 자본주의’로서) 심각한 문제라 보지만, 이재명 대표 역시 이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
출산율 문제만 해도 이것은 청춘 남녀가 반갑게 만나 함께 ‘좋은 삶’을 꿈꾸는 가운데 자연스레 새 생명을 잉태하고 또 ‘조건 없는 사랑’으로 자녀를 키워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어떻게 만드는가의 문제인데, 대안이라 나서는 민주당 역시 자본주의 노동력, 즉 ‘제2세대 노동력’을 왕성하게 생산한다는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좋은 사회’를 만들면 저절로 출산율도 오를 것이며, 지구 전체를 생각해 스스로 조절도 할 것이다. 대학 입시나 경쟁 교육, 자본주의 노동시장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게 답이란 얘기다.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 역시 자본의 가치증식 과정과 밀접하다. 특히, 지구 역사 6500만 년 만에 다가오는 6차 대멸종이나 현재의 기후위기 사태, 즉 생존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미래 전략산업’은 수백 년 역사의 자본주의 산업화가 아닌, 소농 중심(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의 유기농업(식량)으로부터 새출발해야 한다. 이는 단지 농업 문제(‘스마트팜’ 역시 새로운 상품 시장에 불과하다)가 아니라 생명과 공동체를 보는 시각의 전환을 요한다.
만일 지구의 모든 나라들이 앞다투어 ‘성장률 3%’를 달성하려 한다면 지구는 더 빨리 끝장나고 말 것이다. “인간적 필요를 위해선 지구 하나도 충분하지만, 인간의 탐욕을 위해선 지구가 서너 개 있어도 모자랄 판”이라 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을 상기하자. 게다가 주식 시장은 바로 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토대이자 ‘식인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주식 시장이 활성화할수록 ‘제 살 깎아 먹는’ 자본주의가 팽창할 것이며, 그것은 마치 암세포 원리처럼 더 이상 갉아먹을 대상인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스스로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저축, 나의 주식, 나의 증권이 과연 어떤 ‘블랙박스’ 과정을 거치며 나에게 이자, 배당금, 수익을 가져다주는지 좀 더 숙고해 보자. (전기차나 휴대폰에 들어가는, 리튬이나 콜탄, 구리, 코발트 같은 새 광물을 개발한답시고) 최첨단 인공지능(AI)까지 대거 동원해 지구를 체계적으로 채굴하고 제3세계 원시림이나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며, 인간 노동력과 여성 생명력을 무한 착취한 대가로, 그리고 공공 정치를 배신하고 사유화한 대가로 주어지는 경제적 이득이라면 최소한 부끄러워하거나, 그만 두거나, 작은 이득이라도 주변에 두루 나누거나, 좀 더 통 크게 놀자면, 그런 ‘약탈 체제’ 자체를 전면 종식시켜야 한다.
‘급한 불’부터 끄고 꼭 ‘생명의 그물망’을 이야기하자
물론, 극우 보수 정당과 싸우다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닮아간 야당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게 당장은 무리임도 안다. 그래서 일단 코앞에 닥친 선거에서는 ‘더 고약한 자’를 ‘뽑지 않는’ 투표를 하는 게 답이다. 우선 ‘급한 불’은 끈 다음, ‘보다 상식적인 자들’의 공공 정치가 가능할 때, 진정한 미래를 생각하는 말이 좀 통할 때, 그때부터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과연 암세포가 우리 생명을 갉아먹듯 작동하는 ‘식인 자본주의’를 어떻게 지양,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게 있다. ‘식인 자본주의’란 말은 ‘신사 자본주의’의 반대가 아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일종의 식인 체제로, 자기 자신을 집어삼킨다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박정희와 전두환식 권위주의적 형태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식 자유주의적 형태로, 또 우리 모두가 (잘 모르고) 꿈꾸듯 (국가)복지주의나 환경주의적 형태로, 얼굴만 다양하게 바꾸며 그 ‘식인성(파괴성)’을 지속, 유지한다(졸저 <부디 제발> 참고). 현재의 윤석열 체제는 형식적 자유도, 복지나 환경도 다 걷어차면서, 오히려 푸른 숲 그린벨트까지 대거 해체하려는 검찰 권위주의를 보이니 박정희식 권위주의보다 더 퇴행적이다. 특히, 그린벨트 해제만 보더라도 ‘차라리 박정희가 나았다!’고 해야 한다. 지구 전체가 이런 식이니, 갈수록 남아 있는 생명의 기운(지구와 사람, 공동체)이 급격히 줄어든다. 그래서 모두 자본주의(그 구조와 작동, 한계와 모순)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이런 공부는 결코 (노동력을 생산하는) 학교에선 가능하지 않다. 각종 선거는 가난한 집에 제사 돌아오듯 자주 닥치고, 깊은 공부(심학)와 숙고의 시간은 가뭄에 콩 나듯 극히 드물다. (‘정책 수요자’인) 우리 후손들, 1인당 1억 이상의 빚을 짊어진 후손들의 미래는 어찌 할까?
과연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이웃, 후손들이 ‘좋은 삶’을 위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가? 신영복 선생은 ‘아름다움’은 ‘앎’에서 왔으며, ‘안다’는 것은 ‘껴안는’ 것이라 했다(홍은전 <그냥, 사람> 참고). 무엇이 ‘좋은 삶’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 잘난 정치가들, 특히 ‘허가 받은 도둑들’이 많은 세상, 오호통재라! 그럼에도 불구, 일단 투표부터 제대로 해서 ‘부패의 그물망’을 제거하고, 그 뒤 ‘자본의 그물망’에 갇히지 않게 조심하면서도 ‘생명의 그물망’을 하나씩 논하자! 자본주의를 제대로 알고 넘어서야 진정 아름다운 삶도 실현 가능하니까! 4월 10일, 민주주의를 위한 당신의 한 표로 ‘부패의 그물망’부터 시원스레 걷어내는 게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