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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끝나기를 원하는 러-우 전쟁, 왜 못 끝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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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이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들었다. 다음달(6월)이면 제1차 세계대전은 물론, 독소전쟁 기간마저 뛰어넘게 된다. 전쟁 초기의 그 충격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정권이 교체되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전 세계적으로 컸었고, 트럼프도 내가 정권을 잡으면 24시간 안에 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 쳤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24시간은 ‘몇 달’로 변했고 몇 달이 지나도 성과가 없자 ‘반년 정도’라는 말이 등장했다. 타협과 협상의 가치 정반대로 받아들이는 두 개의 윤리체계 물론 반년이 지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최후통첩을 몇 개 던지고 심지어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면 회담까지 가졌음에도 결과는 빈손이었다. 이제는 트럼프마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닫았다. 분명한 실패다. 왜 그럴까? 의지가 없어서는 아닌 듯하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과 유럽도 이 전쟁이 조속히 끝나기를 바란다. 러시아 역시 어이가 없는 조건이나마 내세우면서 나름대로 전쟁을 끝내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대체 왜 끝나지 않는 걸까? 양측이 인식하는 상황이 매우 많이 달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유명한 ‘반사적 게임 이론(Reflexive game theory)’을 창시한 미국의 수학자 겸 심리학자 블라디미르 레페브르(Vladimir Lefebvre)는 저서 『양심의 대수학』에서 이른바 ‘두 가지 윤리체계’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전 세계 사람들의 윤리체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제1 윤리체계는 규칙, 절차, 그리고 과정을 중시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불법이나 비윤리적인 방식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믿으며 대인 관계에서는 무엇보다 ‘타협’을 우선시한다. 이 사회가 추구하는 최고의 도덕적 가치는 ‘평화’와 ‘갈등 회피 능력’이다. 레페브르는 이를 ‘서구적, 진보적, 미국식’ 체계라고 부른다. 반면에 제2 윤리체계는 오로지 ‘목표’만을 바라본다. 목표 도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당화하며 ‘타협은 곧 후퇴’로 여긴다. 이 체계를 따르는 이들은 상대와의 협상을 ‘퇴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투쟁을 올바르고 훌륭한 태도라고 믿는다. 이들에게 가장 높게 평가받는 능력은 ‘굽히지 않는 자세’ ‘강력한 자기 주장’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적과 타협하고 대화하는 행위는 ‘배신’이자 ‘반역’으로 생각한다. 레페브르는 이를 ‘동방, 보수, 소련식’ 윤리체계라고 불렀다. 현재 전 세계 정부와 정보기관들은 타국과의 협상이나 군사 전략을 기획할 때 이 이론을 널리 활용하고 있다. 거래라는 ‘결과’와 체면 위한 ‘그림’이 부딪힌 알래스카 회담 트럼프와 푸틴, 이 두 개인의 윤리체계가 지닌 근본적 차이가 바로 협상으로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핵심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의 국정 운영 스타일이 푸틴과 꽤 비슷해 보이지만 그의 근본적인 가치관은 미국인(제1 윤리 체계)이란 배경을 벗어나지 않는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진심으로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당근과 채찍 전략을 섞어가며 ‘거래(deal)’를 원했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적 이미지가 급락한 푸틴과 알래스카 회동까지 진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5.8.15.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입장에서 이 만남은 ‘거래가 성사될 기회’였으나 푸틴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푸틴은 이를 거래의 장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일’ 기회로 보았다. 결국 회담이 아무 성과 없이 결렬되자 트럼프는 미련 없이 돌아서서 협상장을 떠났다. 반면 푸틴은 자신의 세계적 위상을 재확인 했다느니 두 정상의 ‘마음이 통했다’느니 ‘미국이 러시아의 힘을 느꼈다’느니 하면서 국내 선전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에게는 ‘결과’가 중요하지만 푸틴에게는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푸틴에게는 이 과정에서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켰다는 ‘그림’이 반드시 필요하다. 푸틴의 배경과 현재 그가 내뱉는 말들, 그리고 러시아 언론이 쏟아내는 서사를 분석해 보면 그가 명백히 ‘제2 윤리체계’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전쟁을 끝낸다’는 결과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체면을 지키기 위한 명분과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전쟁 그 자체는 이미 군사적, 전략적 의미를 잃었다. 2024년 이후 러시아가 새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거의 없고 2026년부터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밀려 오히려 영토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유럽의 한 연구소는 흥미로운 비유를 내놓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에 달팽이 한 마리가 국경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기어갔다면 지금쯤 폴란드 국경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조롱 섞인 계산이다. 오직 승리를 향하여!” 외치는 ‘갈등의 화신’ 병력 손실 또한 기록적이다. 전쟁 중이라 정확한 통계는 어렵지만 가장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사상자 수는 이미 120만 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20·21세기를 통틀어 러시아 역사상 두 번째로 참혹한 전쟁이다. 모든 경제 지표가 하락하고 국제 무역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푸틴은 굽히지 않는다. 이러한 ‘소모적 대립’이야말로 제2 윤리체계의 전형적인 징후다. 적에게 절대 굴복하지 마라!”, 어떠한 대화도 없다!”, 오직 승리를 향하여!”와 같은 과거 소련식 구호가 지금도 푸틴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지고 있다. 서방을 향해 핵무기로 협박하면서 남긴 러시아가 없는 세상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섬뜩한 발언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죽더라도 너희들도 다 보내 주겠다는 의미다. 이 극단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과 과연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까?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트럼프가 재선되었을 때 러시아 내 반전 진영에서는 터널 끝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위기였다. 그토록 ‘거래’를 좋아하는 트럼프이므로 어떻게든 푸틴과 공통점을 찾아 딜을 성사시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 희망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제 트럼프가 러-우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갈등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갈등 그 자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버린 푸틴. 과연 누가 그를 정상적인 협상의 파트너로 삼아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교수 abnormal.ily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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