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스티네는 화물번호가 찍힌 소포가 돼 돌아왔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에서 외국인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5.10.29. 연합뉴스
내 딸 스티네는 화물번호가 찍힌 소포에 넣어져서 노르웨이 집으로 돌아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기분이었다. 나는 딸의 모든 비행경로를 지켜봤다. 혼자 외롭지 않게 집으로 돌아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딸은 인천에서 비엔나, 오슬로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한국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면서 한국의 부모들이 1년 내내 싸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르웨이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아버지 에릭 에벤센, 어머니 수잔나 에벤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행정안전부, 서울특별시는 이태원 참사 3주기인 29일 오전 10시 29분 서울 광화문 북광장에서 별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로 3주기 기억식을 개최했다. 이번 3주기 기억식은 정부 공식 초청으로 방한 중인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 46명을 포함해 국내 유가족 300여 명과 다른 재난 참사 유가족, 정부 및 국회 주요 인사, 시민 등 800여 명이 참여했다.
광화문 북광장에는 스크린이 설치되고, 스크린 맞은 편 앞자리에는 보라색 옷을 입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았다. 일부 유가족은 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울먹였다. 행사장 오른편에는 이재명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 국민의힘 장동혁 당대표의 추모 화환이 나란히 세워졌다.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추모사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2025.10.29. 연합뉴스
추모사이렌이 오전 10시 29분 서울 전역에 1분 동안 울렸다. 묵념에 이어 이 대통령의 추모사가 영상으로 나왔다. 이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참사 유가족과 국민께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며 고개를 숙였다. 이 대통령은 이어 3년 전, 서울 한복판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의 소중한 생명이 너무나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며 국가가 다시는 유가족분들의 등을 돌리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미흡했던 대응, 무책임한 회피, 충분치 않았던 사과와 위로까지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하나하나 바로잡아 가겠다 며 진실을 끝까지 밝히고 국민의 생명이 존중받는,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 잊지 않겠다. 꼭 기억하겠다 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유가족들은 이 대통령의 추모사가 중계되는 동안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뒤이어 단상에 오른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늘 처음으로 정부가 공식 주최하고 외국인 희생자 가족들도 함께해 이 자리가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며 이제 진실의 시작이다. 시간이 늦은 만큼 더 빈틈이 없어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절실한 바램을 국회가 지키겠다 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책무라는 국민적 합의를 입법으로 완성하겠다. 생명안전기본법을 통과시키겠다 고 약속했다. 우 의장은 또한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독립성과 권한을 온전히 지켜가며 사명을 다 하도록 뒷받침하겠다 고 말했다.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5.10.29. 연합뉴스
유가족들은 아직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진상규명 필요한 정보 자발적 협조 부탁
특조위 송기춘 위원장은 이태원참사가 3년이나 지났지만 탈상 을 하려면 멀었다며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희생과 피해로 인한 아픔과 슬픔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송 위원장은 유가족들은 대부분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며 진상조사와 피해 구조를 위해 유가족들에게 연락을 하면 참사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제 와서 뭐하러 이러냐 고 반응하는 분들도 많다 고 했다. 국가에 대한 기대를 접고 참사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가 아직도 있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참사는 진행 중 이라며 특조위는 작년 6월 활동을 시작해 희생자 신청사건 92건, 피해자 신청 22건, 피해자 직권 123건, 진상규명을 위한 직권 6건, 안전사회를 위한 직권 과제 8건 등 총 251건에 대한 조사 개시 결정을 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 했다. 또한 이는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닌 한 사람의 생명, 한 가족의 상처, 우리 사회가 외면했던 책임의 흔적으로, 특조위는 그 진실을 충실히 밝혀 곧 국민께 보고드리겠다 고 했다.
송 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참사를 직접 겪거나 목격한 분, 구조 활동에 참여해 고통받은 분, 참사 관련 국가 기관에서 일하며 진상규명에 필요한 정보를 갖고 계신 분들의 자발적 제보와 협조 다시 한번 요청한다 고 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에 외국인 유가족들이 참석하고 있다. 2025.10.29.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대표해서 송해진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많은 참사를 겪어왔다 며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세월호 참사까지. 그때마다 우리는 슬퍼했고 분노했으며 변화를 약속했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참사를 온전히 마주하고 진정한 변화로 나아간 경험이 부족하다 며 참사가 일어나면 잠시 주목받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된다 고 했다.
그는 정부를 향해 말씀드린다 며 정치적 갈등도 있고 경제적 과제도 있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앞설 수 없다 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이어 일상의 현안 속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하는 것이 국가의 첫번째 원칙이 돼야 한다 며 이 비극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자 살아있는 우리가 짊어질 책임 이라고 했다.
문화 예술인들이 무대에 올라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박소란 시인은 가을밤 산책 낭독을 했고, 가수 안예은 씨는 상사화, 만개화 등 노래 두 곡을 불렀다. 안 씨는 코로나19 이전 나는 언제나 핼러윈이 되면 이태원에 있었다 며 아직도 참사가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는다.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하겠다 고 했다. 안 씨의 절창에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유가족들도 울었다.
이태원 참사에서 동료 스타일리스트 안지호 씨를 잃은 배우 문소리 씨는 추모글을 통해 이창동 감독 영화 에 나오는 시 아녜스의 노래 를 낭독했다. 이후 12명의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은 찬란한 빛나는 나의 별 이란 제목의 공연을 올렸다.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에서 유가족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2025.10.29. 연합뉴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 5명은 무대에 올라 시민대책회의 공동선언문 을 발표했다. 이들은 왜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아무런 예방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왜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를 받고도, 쏟아지는 CCTV를 지켜보고도 신속 대응을 안 했는지, 왜 공적 구조 활동은 지연됐고 정부 재난대응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는지, 왜 유족들 호소를 외면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지 를 물으며 성역없이 진상을 온전히 밝힐 때까지, 우린 시민들과 함께 지켜볼 것 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3주기 기억식은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며, 절망의 어둠 속에서 진실을 찾고 희망을 잇기 위해 애쓴 지난 날들은 우리가 누릴 안전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 며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그날까지 함께하겠다 고 다짐했다.
유가족들은 3주기 기억식이 끝난 뒤 외국인 유가족들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포옹하거나 서로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한 유가족은 진상규명도 안 됐는데 무슨 추모냐. 이런 자리가 왜 만들어진 거냐 고 말하며 오열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