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 만들어 돈 모은 대법관, 조봉암 사법살인의 주심 [뉴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김갑수(金甲洙, 1912~1995) 항목을 읽다가 한 대목에서 손이 멈췄다. 한국전쟁 중 피난길에 부역자 처벌 특별조치령 을 만든 사람이 서울 수복 후 자신이 만든 법에 걸린 사람들을 변호해 돈을 모았다는 것이다. 김갑수는 회고록에 이 일을 이렇게 기재했다.
법의 위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만든 악법의 위력에 새삼 놀랐다니. 어이없는 뻔뻔함인지, 천연덕스러운 유머인지. 그러나 그 법에 걸려 죽어간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결코 웃을 수 없다.
영국에서 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한국현대사 법조계의 한 축이 보인다. 친일에서 출발해 이승만 정권에 부역하고, 사법살인에 가담하고, 4·19 발포 원흉을 변호하고, 박정희 공화당의 법률고문까지 지낸 사람. 그리고 그 모든 행적 앞에서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은 사람.
김갑수(나무위키)
1912년 경기도 안성 출생, 친일 판사 집안의 장남
김갑수는 1912년 3월 7일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광주지법 판사를 지낸 김종근의 장남으로, 그의 집안은 아버지, 숙부, 처남, 매부, 사촌까지 모두 법조인인 대표적인 사법엘리트 가족이었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1935년 11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그리고 1937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평양지방법원 판사로 일했다. 일제 고등문관시험을 합격한 조선인 사법관이 독립운동가를 재판하는 법정에 앉아 있었다. 그 법정의 한 자리에 김갑수가 있었다. 이 경력이 그를 『친일인명사전』에 오르게 했다.
해방 후 그는 재빠르게 월남했다. 미군정청 사법부 사법조사국장을 거쳐 법무부 법무국장, 법무부 차관, 내무부 차관으로 올랐다. 친일판사 경력은 새 나라에서도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법률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더 빠르게 요직에 앉았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토록 촘촘할 수가 없다.
1973년 12월 17일 자 기사 내가 겪은 이십세기 - 백발의 증인, 원로와의 대화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비슷하게 체제의 도구 가 된 법률 전문가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인물들이 떠오른다. 독일의 카를 슈미트(1888~1985)다. 당대 최고의 법학자로 평가받던 그는 나치가 집권하자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해 독재에 법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주권자란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 라는 그의 이론이 히틀러(1889~1945)의 독재에 법적 토대를 깔았다. 슈미트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심문을 받고 나서 학계에서 고립됐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
소련의 안드레이 비신스키(1883~1954)는 스탈린(1878~1953) 대숙청 재판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인민의 적 으로 기소하고 이미 결론이 정해진 재판에 법률적 외양을 입혔다. 김갑수는 이들보다 작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구조는 같다. 법률전문가가 권력의 의지를 법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
검찰총장 비신스키(가운데)가 제2차 모스크바 재판에서 카를 라데크에 대한 1937년 기소장을 낭독하고 있다.(위키피디아)
한국전쟁의 악법, 달아나며 만들고, 돌아와 돈이 된 비상조치령
김갑수 이력의 첫 번째 문제적 장면은 1950년 한국전쟁이다. 내무부차관이던 그는 전쟁이 터지자 재빠르게 피난했다. 그리고 대전으로 피난한 그는 국방부차관 장경근과 함께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비상조치령) 을 만들었다. 6월 25일부터 소급 적용된 이 악법은 인민군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협력한 이들, 즉 부역자 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법적 근거가 됐다.
이승만과 고위 공직자들이 먼저 도망치고 국민을 전쟁터에 버려두었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하자마자 미처 피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부역자로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역사학자 김두식은 이렇게 비판했다.
혼자 살겠다고 시민을 버려두고 도망친 최고위 공직자들이 대전에 자리잡자마자 가장 먼저 이런 악법부터 제정한 것이 놀랍다.
서울로 돌아온 김갑수는 변호사 간판을 내걸었다. 그리고 이 비상조치령으로 기소된 이른바 ‘부역자들’의 변호를 맡아 돈을 벌었다. 법의 위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 했다. 자신이 만든 악법의 피해자를 변호해 돈을 버는 것을 법의 위력 이라 표현하는 감각. 감탄인가, 고백인가.
김갑수, 아래 오른쪽 2번째.(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조봉암 사법살인, 무기 라고 읽고 사형 이라 확정했다
김갑수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장면이 있다. 1959년 진보당수 조봉암(1898~1959) 사형 확정 판결이다. 이승만(1875~1965) 정권은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200만 표 이상을 얻어 이승만의 강력한 도전자가 됐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기소했다.
김갑수가 주심인 대법원 합의부는 1959년 2월 27일 조봉암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그런데 이 재판에는 기묘한 장면이 있다. 김갑수가 판결문을 낭독하던 중 사형 부분에서 무기 라고 읽었다고 변호인들과 방청인, 신문기자들이 증언했다. 그러나 판결문에는 사형이라 적혀 있었다. 합의 변경설, 즉 무기징역으로 정해졌던 형량이 공판 직전에 사형으로 바뀌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갑수는 오독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고 인정하면서도 합의 변경설은 끝까지 부인했다.
1959년 7월 30일, 재심 청구마저 김갑수가 주심이 되어 기각됐다. 기각 18시간 만인 7월 31일 조봉암의 사형이 집행됐다. 유일한 증인 양이섭은 이틀 전 이미 처형됐다. 2011년 대법원은 재심을 통해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52년이 걸렸다.
김갑수가 주심인 대법원 합의부는 1959년 2월 27일 조봉암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나무위키)
경향신문 복간이 가장 보람 있었다 는 후안무치
1960년 경향신문 폐간 사건에서 김갑수는 헌법위원회가 구성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위헌 여부를 헌법위원회에 제청하는 꼼수를 써서 사건을 사실상 방치했다. 그러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하자 몇 시간 만에 경향신문 복간을 결정했다.
그리고 30년 뒤인 1990년,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40여 년의 법조인 생활 중 경향신문 복간 결정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판사로서 최대의 긍지를 느끼게 해준 명판결이었습니다.
한승헌 변호사는 경향신문 사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아픔은 경향의 몫이었지만 수치는 사법부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김갑수는 그 수치스러운 장면을 자신의 최대 공로로 기억했다. 뻔뻔함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갑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4·19 발포 원흉 변호, 박정희 고문변호사
4·19 혁명 이후 그는 발포명령자 홍진기(전 내무부 장관)와 조인구(전 치안국장), 3·15 부정선거의 장본인 최인규(전 내무부 장관)의 변론을 맡았다. 4·19 혁명유족회로부터 규탄을 받았다. 이후 5·16 쿠데타 세력의 공화당에 합류해 박정희(1917~1979)의 고문변호사, 마포지구당 위원장을 지냈다. 1980년에는 전두환(1931~2021) 정권이 들어서자 신정당을 창당해 총재가 됐고, 1982년에는 혁신정당을 자처한 신정사회당 의장까지 됐다. 조봉암의 평화통일론 을 간첩 행위로 처벌하는 데 사형 판결로 기여한 사람이, 30년 뒤 혁신정당 의장이 됐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이보다 더 기막힌 변신이 또 있을까.
김갑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카를 슈미트의 이름이 법학 교재에 등장할 때마다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다. 그의 이론적 업적을 인정하더라도 나치 부역의 역사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영국학계의 원칙이다. 한국에서 김갑수는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조봉암의 사형 판결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2011년 재심 무죄가 나왔을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김갑수가 조봉암에게 사형을 확정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정치적 반대자를 법의 이름으로 제거하는 문법, 그것이 60년을 건너 다른 옷을 입고 귀환했다. 법비(法匪) 중의 법비는 죽어서도 살아남아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한.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