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한 5건 재심서 무죄 검사, 그래도 아무 일 없었다 [뉴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받아 들었다. 김남옥(金南玉, 1937~1990) 항목의 부제가 눈을 사로잡았다.
기소사건 중 5건이나 재심 무죄가 선고된 1970, 80년대 대표적인 간첩조작사건 검사.
5건. 한 검사가 기소한 사건 중 다섯 건이 수십 년 뒤 무죄로 뒤집혔다. 그것도 재심에서. 즉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는 뜻이다. 공장에서 불량품이 5개 나왔다면 품질 관리자를 즉시 불러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검찰공장 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남옥은 1990년 사망할 때까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며 한 가지를 생각한다. 5건의 재심 무죄가 나온 검사가 살아있었다면 과연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영국에서라면, 독일에서라면. 그리고 한국에서는?
김남옥(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37년 출생, 납북어부의 운명을 쥔 검사
김남옥은 1937년 태어났다. 검사로서 그의 행보가 집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1970년대 목포 일대에서 근무할 때다. 광주지검 목포지청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서해안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들을 줄줄이 담당했다. 1972년 동림호 사건, 1973년 김성학·이청일 사건, 1979년 태영호·강대광 사건, 1981년 김기삼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쳤다.
납북어부란 무엇인가. 서해에서 고기를 잡다가 북한에 납치됐다가 돌아온 어부들이다. 그들은 이미 한 번 피해자였다. 국가가 바다에서 자국민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수사기관이 그들을 간첩으로 의심하고,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검사가 기소했다. 납북의 고통 위에 간첩조작의 고통이 덧씌워졌다. 김남옥은 그 두 번째 고통의 문지기였다.
2023년 9월 3일 여수 MBC 뉴스 화면 갈무리
세계사 속의 동류, 확증 편향 의 법률기술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사례가 떠오른다. 영국에서도 1970~80년대 아일랜드공화군(IRA) 관련 테러사건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간첩 또는 테러리스트로 기소됐다. 길퍼드 4인 (Guildford Four)과 버밍엄 6인 (Birmingham Six)이 대표적이다.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으로 기소됐고, 수십 년 뒤 무죄가 확정됐다. 영국 정부는 공식사과하고 배상했다. 담당 검사와 경찰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다.
소련의 안드레이 비신스키(Andrey Vyshinsky, 1883~1954)는 스탈린(1878~1953) 치하 대숙청 재판의 공식 기소자였다. 자백은 증거의 여왕 이라는 그의 법리는 고문으로 받아낸 허위자백을 기소의 근거로 삼는 것을 정당화했다. 김남옥의 기소 방식과 구조가 다르지 않다. 다만 비신스키는 수천 명을 처형대로 보냈고, 김남옥은 수십 명의 인생을 망쳤다. 규모의 차이일 뿐, 방법은 같다.
제임스 번스 미 국무장관(왼쪽)이 1945년 7월 15일 포츠담 회담 참석을 위해 공항에서 안드레이 그로미코주미 소련 대사(가운데)와 안드레이 비신스키 당 중앙위원의 영접을 받고 있다.(위키피디아)
동림호 사건 고문은 경찰이, 기소는 검사가
1972년 동림호 사건이 김남옥의 첫 번째 문제 사건이다. 목포 앞바다에서 납북됐다가 귀환한 동림호 선원들이 수사기관의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조작됐다. 목포지청 검사 김남옥은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상황에서도 기소를 강행했다.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의 공통된 패턴이 있다. 선원들이 바다에서 납치된다. 귀환한다. 수사기관이 연행해 불법 구금한다. 이근안(1941~2026) 같은 기술자가 혹독하게 고문한다. 어부들은 결국 이근안이 불러주는 대로 자술서를 베낀다. 사건이 검찰에 넘어온다. 검사는 고문의 흔적을 보면서도 기소한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고문을 폭로한다. 검사는 묵살한다. 유죄가 선고된다. 수십 년 뒤 재심에서 무죄가 나온다.
김남옥이 담당한 5건 모두 이 패턴을 따랐다. 그는 이 패턴을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패턴이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맡은 사람이었다. 고문이 있어도 기소하지 않으면 간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소가 없으면 유죄 판결도 없다. 검사는 그 공장의 중간 공정이었다.
▲ 2008년 7월 9일 전북 부안군 위도의 한 섬마을에 410년 만의 무죄와 명예회복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어부들이 겪어온 설움과 고통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 이주빈
모든 것이 애매합니다만 사형에 처해주십시오
김남옥의 이력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있다.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시절인 1981년 제주 간첩조작사건에서 그는 이렇게 논고했다.
모든 것이 애매합니다만 사형에 처해주십시오.
모든 것이 애매하다. 그런데 사형이다. 이 논고 한 문장이 그가 어떤 검사였는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증거가 불분명해도 사형을 구형하는 것, 이것이 공안검사의 소신이었다.
이 사건은 2014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모든 것이 애매하다 고 스스로 인정한 사건에서 사형을 구형하고 유죄를 받아낸 검사. 30년 뒤 재심재판관은 그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99년 10월 28일의 이근안. 연합뉴스 자료사진
5건의 재심 무죄가 말하는 것
김남옥이 기소한 사건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날들을 상상해본다. 법원은 사과했다. 재심 재판관들은 눈물을 흘리며 국가를 대신해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그 기소를 강행했던 김남옥은 1990년 사망했다.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피해자들이 억울하게 감옥에 있는 동안 김남옥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반헌법행위자열전』이 확인한 것은 그가 1985년 전남대 삼민투 사건을 기소하고, 1986년 일본 관련 김양기 간첩조작사건을 담당하며 피의자의 고문 호소를 묵살하고 기소했다는 것이다. 퇴직할 때까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21년 12월 28일 KTV 진실 그리고 화해 유튜브 화면 갈무리
납북어부들의 겹친 비극, 국가가 두 번 버린 사람들
영국에서 이 기록을 읽으며 한 가지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납북어부들은 국가가 두 번 버린 사람들이다. 첫 번째는 바다에서. 대한민국 해군과 해경이 지켜주지 못했다. 두 번째는 육지에서. 돌아오자마자 간첩으로 만들었다.
제2남진호 선원들의 경우를 보면 더욱 기막히다. 경찰은 선장에게 북한 해상에서 조업하다 잡혔다고 진술하면 다른 선원들은 풀어주겠다 고 회유해 월선한 것으로 처리했다. 국가가 납치사실을 은폐하고 선원들을 협박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 이근안이 그 선원들을 다시 잡아다 간첩으로 만들었다. 이 구조 안에서 김남옥은 기소장을 썼다.
김남옥(반헌법행위지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의 길퍼드 4인 사건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기소한 검사와 경찰관들은 이후 광범위한 조사를 받았다. 일부는 형사 기소됐고, 비록 최종 유죄 선고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조사의 과정 자체가 기록으로 남았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공식 사과와 함께 제도를 바꿨다.
한국에서는 김남옥이 1990년 사망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재심 무죄는 그가 죽은 뒤에야 줄줄이 나왔다. 책임을 물을 대상이 사라진 뒤에야 역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것이 한국 공안검찰 역사의 가장 씁쓸한 패턴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김남옥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애매합니다만 사형에 처해주십시오.
이 한 문장이 공안권력의 본질을 압축한다. 애매하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원칙,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법의 근본 원칙이 이 한 문장으로 뒤집혔다. 그 문장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는 지금도 살아 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김남옥의 이름을 기록했다. 5건의 재심 무죄를 만든 검사의 이름을.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