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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남영동 짓고, 이근안 키우고, 반상회 조직…김치열의 유신

남영동 짓고, 이근안 키우고, 반상회 조직…김치열의 유신
[사람들]
중앙정보부·검찰·경찰을 두루 관장한 유신체제의 파수꾼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받아 들었다. 김치열(金致烈, 1921~2009) 항목을 읽으며 한 가지 사실에 눈이 멈췄다.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뀐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정문 앞 기둥에는 이런 정초석이 새겨져 있다. 1976년 10월 2일 내무부장관 김치열. 그 건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박종철(1965~1987)의 이름이 말해준다. 바로 그 건물을 지은 자의 이름이 기둥에 그렇게 새겨져 있는것이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구조가 보인다. 고문 시스템은 집을 짓는 사람, 수사관을 키우는 사람, 법률로 포장하는 사람이 있어야 작동한다. 김치열은 그 세 역할을 두루 수행했다.   김치열(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21년 경북 달성 출생, 일본 주오대학에서 고등문관 합격까지 김치열은 1921년 9월 15일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 장수 사야가(沙也可)에게서 유래한 사성(賜姓.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성) 김해 김씨라는 이채로운 가문이다. 1942년 일본 주오(中央)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해방 후 1946년 대구지검 검사로 공직을 시작해 이승만(1875~1965) 정권 말기인 1958년 서울지검 검사장까지 올랐다. 30대 후반에 검찰의 꽃 이라 불리는 서울지검장에 오른 것은 당시로도 이례적이었다. 세계사 속의 동류, 충성의 기술자 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궤적을 걸은 인물이 떠오른다. 소련의 라브렌티 베리야(Lavrentiy Beria, 1899~1953)다. 스탈린(1878~1953)의 비밀경찰 수장으로 내무부를 장악하고 대규모 감시·체포·처형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는 탁월한 행정능력과 절대적 충성심으로 스탈린의 신임을 받았다. 스탈린 사후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처형당했다. 김치열과의 차이는 있다. 베리야는 처형당했고, 김치열은 2009년 자연사했다. 베리야는 수만 명을 직접 처형했고, 김치열은 제도와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핵심은 같다. 국가폭력 시스템의 핵심 설계자이자 집행자로서 최고 권력자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것이다.   라브렌티 베리야(위키피디아) 최종길 교수의 죽음 은폐한 주역 김치열 이력의 첫 번째 결정적 장면은 1973년 10월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 고문치사 사건이다.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던 김치열은 부장 이후락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중앙정보부의 실질적 책임자였다. 중앙정보부는 최종길 교수를 유럽 거점 간첩단 공작에 이용하려다 고문 중 사망케 했다. 김치열은 10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최종길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한 후 투신자살했다 고 발표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중앙정보부가 최종길이 간첩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김치열 차장이 간첩으로 발표해 조작했음을 확인했다. 2006년 서울고법은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최종길 교수를 고문 수사한 대공수사국장 안경상은 검사 출신으로 김치열이 중앙정보부의 실권을 장악한 후 더욱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김치열은 1973년 12월 검찰총장으로 영전했다. 언론은 그를 면도날 검사 라며 금의환향 이라고 보도했다.   김치열(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박영복 사기사건 무마, 사회안전법 제정 검찰총장 시절 김치열은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했다. 하나는 74억 원을 부정 대출받은 박영복 사기사건 을 사실상 무마한 것이다. 부정 대출의 상당부분이 김치열이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재직할 때 중앙정보부 간부들의 비호 아래 이루어졌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김치열은 배후에서 전면적으로 영향을 미친 자는 없다 고 발표했다. 또 하나는 1975년 사회안전법 제정을 주도한 것이다. 사회안전법의 핵심은 형기를 마친 비전향 좌익사범을 보안감호소에 다시 가두는 것이었다. 법관의 판결이 아닌 행정처분 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 악법은 훗날 형제복지원 등 엄청난 인권침해의 씨앗이 됐다. 김치열은 과잉 적용을 경고하는 신중한 말을 함께 남겼지만, 법 자체를 기획하고 실행한 것은 그의 손이었다.   김치열(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남영동을 짓고, 이근안을 키우고, 반상회를 만들다 1975년 12월 내무부장관이 된 김치열의 재임 3년은 유신독재 일상화의 결정판이었다. 먼저 1976년 5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립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은 좁은 나선형 계단, 창문 없는 조사실 등 고문에 최적화된 구조로 악명을 떨쳤다.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숨진 바로 그곳이다. 다음으로 대공 경찰조직을 강화하고 정보2과를 독립시켰다. 조직 개편 직후부터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좌천된 채 와신상담하던 이근안(1941~2026)이 이때 등장했다. 이근안은 김치열의 대공경찰 강화시기인 1976~1977년에 납북어부 정규용, 오형근, 안장영, 김흥수, 안희천 등을 잇달아 간첩으로 조작하며 공 을 세워 특진했다. 김치열이 지은 집에서, 김치열이 키운 조직, 김치열이 임명한 수사관들이 고문을 자행했다. 마지막으로 매달 25일을 반상회의 날 로 정례화하고 17~50세 남성을 민방위대에 편제했다. 전 주민을 감시와 동원체제로 묶는 유신 이데올로기의 일상화였다. 영국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소련의 상호감시 체제, 동독 슈타지의 정보원 네트워크가 겹쳐 보였다. 규모는 달랐지만 구조는 같았다.   김치열(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부마항쟁 계엄 선포 반대, 10·26 곧바로 알리자고 소신 흥미로운 것은 김치열이 단순한 ‘예스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979년 YH 사건 때 강경책만이 최선이라면 팔레비나 소모사의 말로가 왜 그렇게 됐겠느냐 며 박정희에게 직언했다. 부마항쟁 때는 부산지역 비상계엄 선포를 반대했다. 중앙정보부장 신직수와는 공개적으로 대립했고, 김영삼(1927~2015)을 구속하려는 신직수의 방침을 막아냈다. 그러나 이 소신 이 체제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유신독재의 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현실주의자의 전략이었다. 10월 26일 박정희 피살 직후 열린 비상국무회의에서 김치열은 사태를 빨리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심을 잡았다. 다음 달 전두환(1931~2021) 등 신군부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1980년 5월 전두환의 계엄사령부는 김치열을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해 수사했다. 파악된 재산은 34억 4627만 원이었다. 박정희를 섬기던 자가 똑같이 박정희를 섬기던 전두환에게 숙청당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김치열.(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베리야를 다루는 역사교육의 핵심은 이것이다. 국가폭력 시스템은 한 명의 괴물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고 충성스러운 관료들이 제도를 설계하고, 법을 만들고, 조직을 구축함으로써 작동한다는 것이다. 김치열이 유신독재에 기여한 방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1976년 10월 2일 남영동에 정초석을 놓던 내무부장관 김치열을 떠올렸다. 건물을 짓는 것, 조직을 만드는 것, 법을 제정하는 것. 이것들이 고문과 학살보다 죄가 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자체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김치열의 이름을 기록했다. 남영동을 짓고, 이근안을 키우고, 반상회를 만든 유신의 파수꾼.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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