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공장 지으면 반도체 무관세…낭보만일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미국에 생산 설비를 짓는 기업에게는 반도체 품목별 관세를 예외로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직후에 나온 발언이다.
이에 따라 이미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관세가 면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의 의도는 관세를 무기로 한국 등 반도체 강국들이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짓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관세를 피하자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한국은 국내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때 발생하는 고용 등 천문학적 경제 효과를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트럼프 임기 내 미국에 반도체 공장지으면 무관세?
러트닉 장관은 7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어제) 발언은 당신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동안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 하지만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는다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 는 뜻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임기 중에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상무부에 신고한 뒤, 그 건설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받을 경우 공장을 짓는 동안에는 관세없이 반도체를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 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미국에서 공장을 짓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감독돼야 한다 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반도체에 약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애플의 대미 시설투자 계획 발표 행사에서 우리는 반도체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 이라며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집적회로(chips)와 반도체(semiconductors)가 부과 대상 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미국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건설한다면 부과되지 않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18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GENIUS 법안 서명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청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2025. 7.18. [AP=연합뉴스]
미국에 공장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무관세 가능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의 발언대로 실행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관세를 면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각각 반도체 관련 대규모 공장 설립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에 3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8년 양산을 목표로 인디애나주에 38억 7000만 달러 규모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한편 러트닉 장관은 7일 0시(미 동부시간 기준)를 기해 발효된 새로운 상호관세 부과로 미국 정부의 관세 수입이 매월 50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관세 수입은 300억 달러였다. 그는 이제 반도체가 들어오고, 의약품이 들어오고, 온갖 종류의 추가적인 관세 수입이 들어올 것 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CNBC 인터뷰에서 내주 정도”(next week or so)에 반도체와 의약품의 품목별 관세를 발표할 예정 이라면서 처음에는 의약품에 약간의 관세(small tariff)를 부과하지만, 1년이나 최대 1년 반 뒤에는 150%로 올리고, 이후에는 250%로 올릴 것 이라고 예고했다.
한국은 지난달 30일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반도체·의약품 분야의 최혜국대우(MFN)를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유리하거나 동등한 대우를 받기로 한 이같은 약속이 유효하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
삼성전자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관세 지렛대 삼아 한국 등 반도체 강국의 미국 투자 압박하는 트럼프 정부
반도체 100% 품목 관세를 무기삼아 한국 등 반도체 강국을 윽박지르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속내는 반도체 강국들의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짓는 것으로 보인다. 러트닉 장관은 반도체 관세 부과 조치를 통해 미국으로 유입될 반도체 건설 투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발표한 대로 1조 달러 규모 라고 말해 속내를 드러냈다.
러트닉 장관은 TSMC는 애리조나에 2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아이다호와 뉴욕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한다 며 실로 엄청난 규모이고, 미국 전역에 걸쳐 이뤄질 것 이라고 호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경제에 관해 발언하면서 차트를 들고 있다. 2025.8.7. [AP=연합뉴스]
반도체 관세 피하려 미국에 공장짓다 국내 제조업 공동화될 수도
반도체는 한국의 대미 수출 품목 중 자동차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제품이다. 한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수출 품목인 셈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 달러(약 14조 7000억 원)였다. 명목상으로 지난해 대미 반도체 수출 비중은 7.5%로, 중국(32.8%)이나 홍콩(18.4%), 대만(15.2%), 베트남(12.7%)보다는 현저히 낮지만 조립·가공 등의 이유로 대만 등 다른 국가를 거쳐 미국에 수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외국산 수입 반도체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일본경제신문 8월 7일치
문제는 대미 수출품 중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해서 관세를 피할 목적으로 무턱대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당장 관세를 피할지는 모르지만 국내 제조업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도체 등 제조업은 우리나라의 번영과 장기 지속을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산업 부문이다. 특히 반도체 공장 건설은 천문학적 투자가 이뤄지고 전후방 연관 산업 및 그에 수반하는 기업들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지대하다. 최근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양질의 일자리도 반도체 공장이 건설되면 제법 만들어진다.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사회에도 엄청나게 크고 다양한 긍정적 효과가 발생된다.
그런데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 이런 긍정적 효과들 대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단순하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세 관세를 피할 길이 생겼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