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엡스타인, 성공이란 가면 뒤의 음습함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뉴욕 맨해튼의 고급 저택, 카리브해의 사유지 섬, 그리고 최고 권력자들과의 친분. 제프리 에드워드 엡스타인(Jeffrey Edward Epstein, 1953~2019)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아메리칸 드림 의 전형처럼 보였다. 하지만 화려한 외피를 벗기자 드러난 것은 조직적 성범죄, 권력 유착, 그리고 정의가 돈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참담한 현실이었다.
2019년 7월, 뉴욕 교도소에서 그가 의문의 죽음을 맞기 전까지, 엡스타인 사건은 미국 사회에 던져진 폭탄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권력과 돈 앞에서 법은 과연 평등한가?
2006년 엡스타인의 머그샷 (위키피디아)
고졸 전직 교사가 월스트리트 거물로
1953년 뉴욕 브루클린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엡스타인은 평범한 출발선에 섰다. 그는 1969년 쿠퍼 유니언 대학에 입학했지만 중퇴했고, 이후 뉴욕대학에서도 수학을 전공하다 1974년 학위 없이 떠났다. 학벌 사회인 미국에서 명문대 졸업장 없이 성공한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에서 고졸이 재벌이 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다.
1974년, 그는 맨해튼의 명문 사립학교 달튼 스쿨(Dalton School)에서 수학과 물리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당시 그를 채용한 교장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로 유명해진 도널드 바(Donald Barr, 1921~2004)였다. 바는 나중에 법무부 장관이 되는 윌리엄 바(William Barr, 1950~)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권력의 끈은 이미 이때부터 엮이고 있었던 셈이다.
1976년, 엡스타인은 교직을 떠나 투자은행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에 입사했다. 학위도 없는 전직교사가 월가에? 여기서부터 그의 네트워크 능력 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초, 그는 파트너로 승진했지만 1981년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났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내부 규정 위반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엡스타인은 1980년 7월호 코스모폴리탄 잡지의 이달의 독신남 으로 선정되었다. (위키피디아)
돈세탁 마술사 인가, 투자 천재 인가
1982년, 엡스타인은 자신의 금융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그가 내세운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최소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고객만 받습니다. 당시 환율로 약 1조 원, 지금으로 치면 최소 수조원대 자산가만 상대한다는 얘기다. 재벌 총수급만 고객으로 받겠다는 것과 같다.
문제는 그의 수익 구조가 불투명했다는 점이다. 투자 전문가들조차 엡스타인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모르겠다 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그의 재산은 끄떡 없었다. 누구는 그를 현대판 연금술사 라 불렀지만, 실상은 초부유층의 세금 회피와 자산 은닉을 도와주는 합법적 탈세 컨설턴트 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 성범죄자 등록을 위해 촬영된 엡스타인의 사진 (위키피디아)
권력자들의 친구, 아니 공범?
엡스타인의 진짜 힘은 인맥이었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1946~ )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 ) 현 대통령, 영국 왕실에서 축출된 전 앤드루 왕자(former Prince Andrew, 1960~ ), 진보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1928~ )를 비롯한 하버드대 교수들까지. 그의 연락처에는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엡스타인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전용기를 수십 차례 함께 탔다는 기록이 있다. 2002년, 트럼프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을 멋진 친구 라고 불렀다. 물론 나중에 스캔들이 터지자 모두들 별로 친하지 않았다 며 한발 뺐지만 말이다.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한국 정치권에도 비슷한 일이 늘 반복되지 않던가.
1993년 9월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하는 엡스타인 (위키피디아)
2008년, 정의의 첫 번째 좌절
2005년, 플로리다주 팜비치 경찰이 엡스타인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수십 명에 이르렀고, 대부분 14~17세 소녀들이었다. 연방검사 알렉산더 아코스타(Alexander Acosta, 1969~ )가 사건을 맡았다.
2008년, 충격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엡스타인은 연방 기소 대신 주 법원에서 청소년 성매매 알선 혐의만 인정하고, 18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실제로는 13개월만 복역했다. 게다가 근무 출장 프로그램 이라는 특혜를 받아 하루 12시간씩 사무실 출근이 허용됐다. 교도소는 그저 잠만 자러 가는 곳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이 합의가 피해자들에게 통보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9년, 법원은 이 합의가 피해자 권리를 침해한 불법 이었다고 판결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코스타? 그는 2017년 트럼프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이 됐다. 권력은 권력을 보호한다.
2019년, 두 번째 체포와 의문의 죽음
2019년 7월 6일, 엡스타인은 파리에서 뉴저지로 돌아오던 중 테터보로 공항에서 체포됐다. 이번엔 연방검찰이 2002~2005년 미성년자 성매매 조직 운영 혐의로 기소했다. 보석은 불허됐다.
그러나 같은 달 23일, 엡스타인은 감방에서 목에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됐다. 자살 시도로 추정됐지만 본인은 부인했다. 그는 자살 감시 대상에 올랐다가 며칠 후 해제됐다.
8월 10일 아침, 엡스타인은 맨해튼 교도소 독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공식 사인은 목맴 자살 . 하지만 의문은 끝없이 쏟아졌다. 감시카메라는 고장 났고, 담당교도관 둘은 졸고 있었다. 부검을 맡은 마이클 베이든(Michael Baden, 1934~ ) 박사는 타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 했다.
인터넷은 즉시 엡스타인은 자살하지 않았다 는 문구로 도배됐다. 음모론? 아니면 합리적 의심? 그 경계가 모호해진 사건이었다.
미국 CBS 방송은 법무부가 최근 공개한 엡스타인 파일 속에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한 공식 발표에는 없던 증거 기록이 나왔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그의 사망 당일 밤 감방 구역 출입과 관련해 오렌지색 섬광이 엡스타인 감방 구역 계단을 올라갔다”는 영상 관찰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별장 마러라고에서 멜라니아 트럼프(왼쪽부터), 앤드루 영국 왕자와 어울리고 있는 제프리 엡스타인 (Prince Andrew book seals his fate for any return - BBC News)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들
엡스타인 사건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구조가 존재한다.
첫째, 권력과 돈의 유착. 2019년 한국을 뒤흔든 버닝썬 사건을 떠올려보라. 재력가, 연예인, 경찰, 그리고 정치권이 얽힌 구조. 엡스타인 사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가해자들은 변호인단을 동원하고, 피해자들은 2차 가해에 시달린다.
둘째, 사법 거래의 불평등. 2008년 엡스타인이 받은 솜방망이 처벌은 한국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를 연상시킨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은 집행유예, 둘 다 없는 사람은 실형. 같은 죄를 지어도 처벌이 다르다면, 그것을 정의라 부를 수 있을까?
셋째, 피해자 보호의 실패. 엡스타인 사건 피해자들은 수십 년을 침묵해야 했다. 한국의 성범죄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왜 이제 와서 말하느냐 는 질문 자체가 2차 가해다. 중요한 건 언제 가 아니라 무엇이 일어났느냐다.
넷째, 언론과 시민사회의 역할. 엡스타인 사건을 끝까지 파헤친 건 마이애미 헤럴드 탐사보도팀이었다. 2018년 기자 줄리 브라운(Julie K. Brown)의 연속기사가 없었다면 2019년 재수사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 언론도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 파헤치기에 집중해야 한다.
왼쪽부터 트럼프와 그의 여자친구(이자 미래의 아내)인 전 모델 멜라니아 크나우스, 엡스타인, 맥스웰이 2000년 2월 12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클럽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How well did Trump and Epstein really know each other? A timeline | Donald Trump News | Al Jazeera)
미완의 정의
엡스타인은 죽었지만 그의 공범들은 대부분 살아있다. 그의 오랜 동료였던 기슬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 1961~ )은 2021년 유죄 판결을 받고 2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다른 연루자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살고 있다.
2021년 11월, 엡스타인의 피해자들은 그의 유산(약 6억 3000만 달러)에서 보상을 받기 시작했다. 돈이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인정이기는 하다.
한국 사회는 엡스타인 사건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권력자라고 해서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 피해자 중심의 사법체계, 그리고 끈질긴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제프리 엡스타인이라는 한 인간의 추락은 끝났지만, 그가 상징하는 권력과 돈의 카르텔은 여전히 건재하다. 엡스타인 파일 은 지금도, 앞으로도 한동안 미국 사회를 계속 흔들 것이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건 결국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당신은 오늘도 눈을 뜨고 있는가?
1997년 마러라고에서 제프리 엡스타인과 함께 있는 트럼프 (Exclusive | Jeffrey Epstein’s Friends Sent Him Bawdy Letters for a 50th Birthday Album. One Was From Donald Trump. - W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