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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기 전에 …현진오, 멸종위기식물 40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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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滅種)’이란 영원히 그 존재가 사라지는 무서운 일이다. 한 사람이 사라지면 그 사람과 관련 있는 인연이 끊기듯이, 하나의 식물이 사라지면 그 식물에 기대어 사는 곤충이 사라지고 먹이사슬로 연결된 동물도 연쇄적으로 사라진다. 결국엔 식물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을 에워싼 세계가 함께 오는 일이고, 한 식물과의 만남은 식물의 관계망에 내가 동참하는 일이다. 개체 수가 줄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공생(共生)해야 상생(相生)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인위로 인해 생물 다양성이 크게 위협받는 시대에 그리고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3월에, 식물의 안부를 묻는 전시가 화제다. 바로 숲과나눔(이사장: 장재연)의 ‘공간풀숲’에서 열리는《사라지기 전에: 현진오, 멸종위기식물 40년 기록》전시회이다.   ⟪사라지기 전에; 현진오, 멸종위기식물 40년 기록⟫은 식물학자 현진오 박사가 40여 년간 전국의 산과 섬, 습지와 계곡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록해 온 멸종 위기식물 사진과 영상, 식물표본, 저술 43권을 바탕으로 구성한 ‘에코라키비움’ 전시회이다.(ECO Larchiveum,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과 박물관(Museum)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형태의 전시로, 공간풀숲의 전시 브랜드명이다) 공간풀숲은 이 전시를 위해 현진오 박사의 저술을 읽고, 식물의 다양한 얼굴을 작품으로 마주하는 가운데 한 식물학자의 연구 인생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였다.   안개 낀 숲과 섬바디 , 2008년 6월 14일, 울릉도 ⓒ현진오                                                          전시장에서 현진오 박사가 쓴 책을 보고 있는 관객들, 최연하 촬영                                                                            현진오 박사의 강의를 경청하는 관객들. 최연하 촬영 지난 3월 13일, 생물다양성: 사라지는 식물들 을 주제로 전시장에서 특강을 하는 현진오 박사, 최연하 촬영 전시된 식물의 면면을 살펴보자. 매화를 닮아 맑은 인상을 주는 ‘매화마름’은 얕게 고인 논과 습지에서 별처럼 하얀 꽃을 피우는 수생식물이다. 한때는 농촌의 논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제초제 사용과 생육지 파괴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현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보호받고 있다. 현박사가 2005년에 백두산에서 촬영한 ‘노랑만병초’는 척박한 고산 환경에 적응한 대표적인 만병초류 식물이다. 숲과 바다가 맞닿은 자리에서 조용히 매달린 채 자연의 균형을 증언하는 ‘지네발란’, 한라산에만 나는 한라산 특산식물 ‘구름떡쑥’, 제주도에서는 신선이 먹는 불로장생의 열매라고 전해지는 ‘시로미’ 열매, 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키가 10cm 정도로 매우 작기에 나무인지 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암매’ 등 전시장에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식물들의 모습과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매화마름, 강화도 초지리, 2010년 5월 21일 ⓒ현진오 구름떡쑥, 한라산, 2016년 7월 9일 ⓒ현진오 암매, 한라산, 2019년 6월 2일 ⓒ현진오 제주도 조천이 고향인 현진오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식물을 가까이 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꽃 피는 기간이 가장 긴 곳이다. 2월 중순부터 봄꽃이 피기 시작해 12월 하순까지 가을꽃을 볼 수 있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식물도 많기 때문에 사시사철 꽃이 핀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와 한라산은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으로 가히 식물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귀한 식물들이 많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지금도 부모님 계시는 이곳에 언제나 달려갈 수 있어 좋다. 고향을 향할 때면 언제나 신바람이 난다” 고 말한다. 전시장에서, 암매와 시로미를 비롯해 제주도에 서식하는 희귀식물 13종을 만날 수 있다.   ‘제주도 조천’이 고향인 현진오 박사가 촬영한 제주도 희귀식물들을 관람 중인 관객, 최연하 촬영 식물은 생태계의 뿌리이자 기반이지만, 멸종위기 문제를 이야기할 때 식물은 종종 관심의 바깥에 놓인다. 동물처럼 움직이지도, 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식물은 인간의 개발과 변화 앞에서 무력하기 쉽다. 서식지 훼손과 불법 채취, 기후 위기와 생태계 교란종 확산의 문제로, 우리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식물들이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미 멸종한 식물 중에는 인류가 보존했다면 멸종하지 않았을 종도 있다. 한 식물의 멸종이 생태계에 미칠 파장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인위적인 멸종으로 인한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멸종위기식물을 보존하는 문제는, 단순히 자연환경을 개선하고 생물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하는 일로 연결된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가 공생하려면 먼저 알아야 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커져야 한다. 식물 종(種)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가져야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실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동북아생물연구소’ 현진오 소장님이 한반도에 서식하는 생물을 40년 넘게 조사, 연구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이유이다.   털복주머니란을 관찰하고 있는 현진오박사와 털복주머니난 ⓒ현진오 털복주머니난은 ‘복주머니’처럼 부푼 주머니 모양의 꽃을 피우는 희귀 난초다. 짧은 개화기 동안 조용히 피어나는 한 송이는, 고산 생태계가 간직한 희귀한 시간과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의 경계를 상징한다. 흰 바탕에 자줏빛 반점이 찍힌 꽃은 숲속의 그늘과 햇빛이 교차하는 곳에서 더욱 또렷하게 빛나고, 꽃 전체에 잔털이 있어 이름처럼 ‘털’의 질감이 남는다. 높은 산의 열린 숲과 초지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생육지가 매우 제한적이며, 과거에 비해 개체 수가 급감해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보호하고 있다. ” 이번 전시는 아름다운 식물을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사라지는 생명’을 단순히 슬퍼하는 전시가 아니라, 사라짐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묻는 자리이다. 기록은 멸종을 단숨에 막을 수는 없지만, 멸종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만들고, 결국 보호와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현진오 박사의 40년 기록은 개인의 집요한 관찰을 넘어, 한국 식물 보전의 역사이자 미래를 위한 증거이다. 관람자는 이 전시를 통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자연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라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전시 4월 4일까지  공간풀숲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 3가길 8-4) - 관람 시간 12-6pm/ 일·월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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