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스왑도 지팔지꼰 …협상 최대한 늦춰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2025년 9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3500억 달러를 ‘선불’로 투자하라고 요구하며 전례 없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합의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는 한국 외환 보유액 4220억 달러의 83%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무제한 한-미 통화스왑을 요구했으나,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길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지만, 실상은 신중하지 못한 계산이다.
미국 현지에서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5.9.14 연합뉴스
신중하지 못한 통화스왑 셈법
금융시장에서의 스왑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주식, 금리, 자산, 부채, 신용, 외환 등 보유 자산의 리스크를 회피할 의도로 같은 의도를 가진 자산 보유 상대와 스왑을 행한다. 이번에 이야기되고 있는 중앙은행 간 스왑도 보유자산 리스크 회피 목적을 갖는데, 조금 더 특징적인 점은 최종대부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 국가의 외환위기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령 우리나라가 어떤 이유로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으나, 보유하고 있는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고 더 이상 대응 불가능한 상황이 될 때, 미국 연준과의 통화 스왑은 우리나라의 부족한 외환 보유고 역할을 대신 해준다는 의미에서 최종대부자가 되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 때 배운 것은 저들이 그냥 돈을 내줄리 없다는 것
중앙은행 간 통화스왑을 통해 외환위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IMF가 분류한 글로벌 금융 안정망(GFSN) 구상의 2단계에 해당한다. IMF는 외환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위기 극복을 위한 자금조달 방식을 4단계 위기 수준에 따라 행하기로 했다. 1단계는 해당 국가가 외환보유고를 통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다. 다음 2단계는 외환보유고 부족 때문에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 선택하게 되는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왑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될 경우, 지역 간의 금융협력을 도모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지역 간 금융협력을 통해서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혹은 지역금융이 협력에 나서지 않으면 IMF 대출을 받게 된다(98년 우리나라 IMF 사태가 바로 이것). 이 네 가지 수준에 따라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통한 외환위기 대응 자금조달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현재 우리나라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에게 제안한 무제한 통화스왑은 2단계 외환위기 대응 자금조달 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1998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저들이 그냥 돈을 내줄 리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가혹하리만큼의 대가를 이미 치렀지 않나.
외환 보유고 운용 등 곳간 열쇠까지 미국에 맡긴 최상목 아닌가
우리가 어려워서 빌리는 만큼 IMF나 미국이나 마냥 호의적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 4월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등은 미국과 환율협의체 안을 합의하고 돌아왔다. 여기서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 구성비와 운용 수익 등의 상세한 내용을 한 달에 한 번씩 미국에 보고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한국은행이 공개하지 않는 정보다. 국민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정보를 미국에 정기적으로 공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환율시장에 개입하지 않기로 합의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국민연금을 통한 외환시장 개입까지도 환율시장 개입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2년 유예 후 외환시장을 24시간 개방하기로 했다. 이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방어막을 모두 걷어낸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모두 감당해야 할 사안이다. 이런 가운데 외환 보유고 운용까지도 미국에 상세 보고하게 되면 그야말로 곳간 열쇠를 미국에 통째로 맡기는 형국이다.
달러 주고, 달러 모자라니, 다시 빌리는 코미디 같은 스왑 과정
직접적으로 더 큰 문제는 실제 외환 보유고의 일정 부분을 팔아 미국의 요구대로 선불로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이다. 한국은행 외환 보유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유가증권, 그중에서도 미국 국채가 대다수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 국채는 달러가 아니다. 따라서 미국의 요구대로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팔아서 달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달러 부족에 직면하게 된다.
달러가 부족하니, 미국과 무제한 달러 스왑 협상을 통해, 미국에게 달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미국에게 달러를 주고 나니, 달러가 부족하고, 그래서 다시 미국에게 달러를 빌려달라고 해야 하는 코미디(?)에 가까운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이 취하는 통화스왑 방식은 미 국채를 담보로 미 국채를 다시 매입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 달러가 부족해 스왑을 하는 것인데, 달러로 국채를 사서 그것을 담보로 달러를 빌리는 꼴이다. 왜 이런 하나 마나 한 제안을, 그것도 막대한 이자를 지급하면서 하겠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단기적 대응 아닌 글로벌 경제 지형 변화에 대처할 때
한국 경제는 2025년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 대미 ‘선불 투자’ 부담과 우리나라가 제안한 통화스왑이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미 설명했듯, 무제한 통화스왑은 위기 대응의 한 단계 수단일 뿐, 투자금 유출과 달러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미국이 무제한 통화스왑을 받을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당장 원화의 국제적 신인도는 올라갈지 모르나 버거운 일들이 일들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달러 선불’의 압력, 그리고 한국 외환 보유고 구성 변화와 금융시장 자율성 상실이라는 두 개의 도전이 동시에 다가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패권 전략 속에 한미관계는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제하고 있다. 지금은 단기적 위기 대응을 넘어, 글로벌 경제 지형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장기적 체질 개선을 위한 종합 전략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스왑을 운위할 때가 아니며, 협상을 늦출수록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