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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에너지 자립 구조 없으면 자주 국방 은 구호에 그쳐

에너지 자립 구조 없으면 자주 국방 은 구호에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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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 13일 밤 11시(미 동부 시간 13일 오전 10시)부터 미 해군은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선박에 대한 해상 봉쇄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란이 2월 28일 전쟁 개시 이래 호르무즈 해협을 막아온 데 맞서, 이번에는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차단하는 역 봉쇄에 나선 것이다. 파키스탄에서 21시간에 걸쳐 진행된 미-이란 첫 대면 종전협상이 결렬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양쪽에서 잠기게 됐다. 이 소식을 듣는 한국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3주 전인 3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은 안보회의에서 자주국방 역량이 통합 안보태세의 핵심 이라고 말했다.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다. 같은 시각,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의 사드(THAAD) 요격 시스템은 중동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대통령은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우리의 입장을 완전히 관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라고 인정했다. 자주를 선언하는 목소리와, 그 선언을 실행할 수 없다는 고백이 한 문장 안에 공존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났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되었다. 이 모순은 낯설지 않다. 한국 외교사에서 이 장면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반복되어 왔다. 위기가 올 때마다 자주 라는 단어가 소환되고, 위기가 지나면 서랍 속에 돌아간다. 문제는 수사가 아니라 구조다. 걸프만 인근을 항해 중인 화물선. 로이터 연합뉴스 세 차례의 자주, 같은 결말일까 1970년대, 닉슨 독트린으로 주한미군 2만 명이 철수하자 박정희 정부는 자주국방 을 선언했다.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심지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 앞에서 핵 프로그램은 폐기되었고, 한국은 다시 안보의 근본을 동맹에 의탁하는 구조로 돌아왔다. 자주국방의 물질적 기반인 에너지 자립, 독자적 군수 산업, 외교적 다변화를 갖추지 못한 채 구호만 남았다. 2000년대 중반,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 을 제시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 행위자가 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균형자가 되려면 양측 모두에 대해 지렛대를 가져야 한다. 에너지와 안보의 양쪽 모두를 외부에 의존하는 국가가 균형 을 잡겠다는 것은 빈손으로 저울을 들겠다는 것과 같았다. 이 구상은 구체적 실행 수단 없이 임기 종료와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2026년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4거래일 만에 18% 폭락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하락이다. 시가 총액 약 5000억 달러(약 700조 원) 이상이 증발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끄는 반도체 산업은 에너지 공급 불안이라는 예상치 못한 위협 앞에 섰다. 대통령은 다시 자주 를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세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패턴이 보인다. 외부 충격이 가해진다,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다, 지도자가 자주와 자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 취약성을 만든 구조 자체인 에너지 종속, 안보 의존, 외교적 수동성은 바뀌지 않는다. 위기가 가라앉으면 절박함도 함께 가라앉고, 다음 위기 때 같은 선언이 반복된다. 한국의 자주 는 위기의 수사였지, 평시의 정책이 된 적이 없다. 산업통상부는 3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평택당진항을 방문해 대중동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의 물류 애로를 현장에서 직접 청취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3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 2026.4.3. 연합뉴스 에너지 종속은 외교적 자율성의 부재 불러 숫자부터 보자.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서 조달하며, 사실상 전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액화천연가스(LNG)도 오만과 카타르 등 걸프 국가에 크게 의존한다. 석유는 1차 에너지 소비의 36.6%를 차지한다. 석탄은 22.3%, 천연가스는 19.7%다. 에너지 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에너지 종속은 정치적 자율성의 물질적 조건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다. 호르무즈에 목줄이 잡힌 국가는 중동 위기에서 독자적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 인도주의적 우려조차 자유롭게 말하기 어렵다. 상황은 3월보다 더 나빠졌다. 이란은 전쟁 기간에도 자국 원유를 하루 평균 185만 배럴씩 수출하면서 전쟁 자금을 확보해 왔고, 해협 통과 선박에 건당 최대 200만 달러의 통행료까지 부과했다. 미국의 역봉쇄는 이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결과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모든 선박의 안전이 더 불확실해졌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군함의 해협 접근을 휴전 위반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고, 해협이 죽음의 소용돌이 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란의 봉쇄 하나만으로도 한국 경제는 흔들렸는데, 이제 양쪽의 봉쇄 사이에 낀 셈이다. 칸트는 자율성을 외부의 명령이 아닌 자기 자신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국가 행위자에게 이 개념을 적용한다면, 자율적 외교란 동맹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반사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원칙과 이익에 근거하여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율성은 의지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인 에너지, 식량, 기술, 금융에서의 자기 충족성이 갖추어져야 한다. 자주 를 선언하면서 에너지의 70%를 단일 해상 통로에 의존하는 것은, 자유를 외치면서 쇠사슬을 풀지 않는 것과 같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분석이 정확히 이 점을 지적한다. 이란 전쟁은 한국의 에너지 취약성을 만든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되어 온 그 취약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드러냈을 뿐이다. 반도체라는 첨단 산업이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단일 병목에 묶여 있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의 정교함과 한국 안보의 조악함 사이의 비대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차 석유 최고가격제 실시 셋째 날인 12일 전국 주유소 평균 유가 상승세가 대폭 둔화한 가운데 서울 경유 가격은 전날 대비 보합세를 보였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윳값은 L당 1천992.3원으로 전날보다 0.7원 올랐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주유소 모습. 2026.4.12. 연합뉴스 구조를 바꾸지 않는 선언은 구호에 불과 에너지 자립은 산업 정책이 아니라 안보 전략이다. 이 인식의 전환이 출발점이다. 한국은 현재 26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추가 건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2038년까지 최소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가 건설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것도 속도의 문제가 있다. 컬럼비아대 에너지정책센터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가가 정상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2026년 말까지 고유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호르무즈가 열리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파괴된 산유 시설의 복구, 해협에 부설된 기뢰의 제거, 보험료 정상화까지 감안하면, 한국이 구조적으로 노출된 에너지 위험은 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상당 기간 지속된다. 원전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입선의 근본적 다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중동 의존도를 70%에서 50% 이하로 낮추는 것은 10년짜리 프로젝트가 아니라 5년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할 안보 과제다. 미국, 캐나다, 호주, 아프리카 산유국과의 장기 계약 확대, 재생에너지와 수소경제로의 전환 가속화, 그리고 전략비축의 확충이 병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에너지 자립은 외교적 발언권의 전제 조건이라는 인식이 정책 전반에 내재화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이 이란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 또는 전쟁의 합법성에 대해 독자적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용기의 부족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한 국가가 에너지 공급국이 관여된 분쟁에서 원칙에 근거한 발언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지는 만큼 외교적 자유도도 높아진다. 에너지 정책은 곧 외교 정책이다. 미국 한국경제연구소(KEI)는 한국이 일본, 유럽 등과 신속히 공조하여 에너지 안보와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한 다자적 프레임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미국 일변도의 안보 의존에서 벗어나, 같은 취약성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수평적 연대를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이는 반미적 선택도 아니고 동맹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동맹 안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실질적 무게를 갖도록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주체성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에서 비롯 1973년 석유파동, 1979년 2차 석유파동, 2025년 12일 전쟁, 그리고 2026년 이란 전쟁. 호르무즈 해협이 출렁일 때마다 한국은 충격을 받았고, 매번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고 말했다. 그리고 매번 달라지지 않았다. 오는 22일, 휴전이 만료된다. 그 뒤에 무엇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전쟁이 재개될 수도, 새로운 협상이 시작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어떤 시나리오가 오든, 에너지의 70%를 호르무즈 하나에 걸어둔 나라는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고, 반도체와 조선, 원전 기술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나라다. 이 나라가 호르무즈 해협 하나에 경제의 숨통을 맡기고 있다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해 온 것이다. 주체성이란 위기 때의 연설문에 들어가는 한 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원을 다변화하는 것, 비축량을 늘리는 것, 다자 안보 협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 그리고 원칙에 근거하여 국제 문제에 발언하는 것 등 구체적이고 지루한 작업들의 총합이 주체성이다. 오늘 밤 호르무즈는 양쪽에서 닫힌다. 한국은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이번에는 답이 달라지기를 기대하지만, 기대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구조가 달라져야 답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이재명 정부의 답이 달라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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