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와 핵폭탄, 인터넷 예언 적중...H.G. 웰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 이름만 들으면 아, 화성인 쳐들어오는 소설 쓴 사람? 하고 넘어갈 법하다. 맞다, 그 사람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내면 너무 억울하다. 그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20세기 인류 문명의 방향타를 두 손으로 잡고 흔든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제국주의 영국 한복판에서 평등을 외쳤으니, 요즘 말로 하면 찐 진보 논객 이었던 셈이다.
1920년의 웰스.(위키피디아)
포목상 아들, 세상을 뒤집다
1866년 9월 21일, 영국 켄트주 브롬리에서 웰스는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프 웰스(Joseph Wells, 1827~1910)는 포목점을 운영했고, 어머니 사라 닐(Sarah Neal, 1822~1905)은 귀족 저택의 가정부였다. 열네 살에 직물상 점원으로 팔려가다시피 취직했다가 뛰쳐나왔고, 약국 조수와 교사 보조를 전전하다 마침내 장학금을 타 런던 왕립과학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진화론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열렬한 지지자인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에게 배웠다. 훗날 웰스가 과학은 인류를 구할 수 있다 고 믿게 된 것은 이 시절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의 웰스, 버티 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는 1870년대경에 찍은 사진.(위키피디아)
소설 속에 경고장을 넣어 배달하다
웰스가 이름을 알린 건 1895년, 《타임머신(The Time Machine)》을 낸 서른 살 무렵이었다. 시간 여행자가 80만 년 뒤의 미래로 가보니, 인류는 지배계급 엘로이 와 노동계급 몰록 으로 나뉘어 있었다. 엘로이는 지상에서 유유자적 놀고, 몰록은 지하에서 혹사당하며 엘로이를 먹여 살렸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몰록들은 엘로이를 잡아먹었다. 이걸 그냥 공상 이야기로 읽으면 곤란하다. 귀족과 공장주가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고 노동자는 지하공장에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던 1890년대 영국 산업자본주의를 정면으로 풍자한 것이었다.
1898년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에서 화성인들이 영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은, 사실 영국이 전 세계 식민지에서 벌이던 학살과 수탈을 뒤집어 보여준 것이었다. 너희가 다른 민족에게 하던 짓을 누군가 너희에게 하면 어떻겠냐 는 통렬한 반문이었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포장지 속에 경고장을 넣은 배달물이었다.
웰스는 1887년에서 1888년까지 겨울 동안 서식스에 있는 어파크에서 요양했는데, 그곳에서 그의 어머니 사라가 가정부로 일하고 있었다.(위키피디아)
31년 앞서 핵폭탄을 경고한 예언가
웰스의 예언능력은 실로 놀랍다. 1914년 소설 《해방된 세계(The World Set Free)》에서 핵폭탄의 개념을 묘사했다. 실제 핵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건 1945년이니 31년 앞선 경고였다. 이 소설을 읽은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Leó Szilárd, 1898~1964)가 핵연쇄반응 특허를 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탱크의 개념도 1903년 단편에서 먼저 묘사했고, 공중 폭격전을 다룬 《공중전쟁(The War in the Air)》은 1908년 작품이다. 실제 탱크가 전쟁터에 등장한 건 1916년이다. 이 양반 앞에서 미래학자 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다.
1936년 저작 《세계의 두뇌(World Brain)》에서는 전 세계 지식을 한곳에 모아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계 백과사전이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이것이 훗날 인터넷 시대의 열린 백과사전으로 현실화됐으니, 그는 꿈을 꾼 게 아니라 설계도를 그린 것이었다.
웨스트 서식스주 미드허스트에 있는 기념 명판은 웰스가 1883년에서 1884년 사이에 미드허스트 문법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머물렀던 숙소를 표시하고 있다.(위키피디아)
권력자들과 맞장 뜬 이상주의자
웰스는 사회주의 단체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에 가입했다가 너무 느리다 며 탈퇴했고, 세계 연방정부를 수립해 전쟁을 없애야 한다고 주창했다. 1920년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을 만났고, 1934년에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와 소련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을 같은 해에 만났다. 레닌에게는 당신은 너무 국가주의적 이라고 지적했고, 스탈린에게는 국가가 사라지는 게 목표여야 한다 며 설전을 벌였다. 웬만한 배짱 없이는 못할 짓이다.
1920년 작 《세계사 개요(The Outline of History)》는 인류 탄생부터 당대까지의 역사를 모든 시민이 읽을 수 있도록 쓴 역작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역사는 지배계급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목격한 웰스는 말년에 깊은 절망에 빠졌고, 1945년 마지막 저작 《정신의 한계에서(Mind at the End of Its Tether)》에서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비관에 다가섰다. 그리고 1946년 8월 13일, 79세로 눈을 감았다.
웰스가 1890년경 런던에서 공부하는 모습.(위키피디아)
웰스가 오늘의 한국을 본다면
자, 이제 한국 이야기를 해보자. 웰스가 지금 한국에 환생했다면 무슨 말을 할까?
《타임머신》의 엘로이와 몰록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의 오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강남 아파트값은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데, 청년들은 편의점 야간 알바와 배달 일을 겹치기로 뛰며 월세를 낸다. 지상에서 여유를 즐기는 엘로이와 지하에서 밤새 일하는 몰록의 구도가 낯설지 않다. 웰스는 이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것 이 아니라 선택된 구조 임을 소설로 폭로했다.
《우주전쟁》이 식민지 침략의 폭력성을 뒤집어 보여줬듯, 일제강점기와 과거 권위주의정권의 역사청산이 아직도 미완인 한국사회에도 그 울림은 유효하다. 강자가 약자에게 한 일을 정당화할 때, 그 역사는 반드시 되돌아온다.
《세계의 두뇌》를 떠올리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지금 한국에서 지식과 정보는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 언론은 누구의 편인가? 민들레 같은 언론매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웰스는 80여 년 전에 이미 논리로 뒷받침해 줬던 셈이다.
그리고 페이비언 협회를 떠날 때 웰스가 했다는 말, 너무 느린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는 오늘 한국 진보진영을 향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선거 때만 들끓다 조용해지고, 서로 편 갈라 싸우다 정작 중요한 순간을 놓치는 모습. 웰스가 봤다면 혀를 찼을 것이다.
웰스는 1866년 포목상 아들로 태어나 1946년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눈을 감았다. 핵무기, 불평등, 정보독점, 제국주의의 폭력성, 그가 소설과 글로 건드린 모든 문제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그의 위대함인 동시에 우리의 부끄러움이다. 웰스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처럼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기꺼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진보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도 결국 그것 아닐까.
웰스가 60번째 생일 하루 전인 1926년 9월 20일자 타임지 표지에 실렸다.(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