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을 이어온 영국인의 보수성…득실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인들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궁금하다면, 이런 농담을 들어보자. 프랑스인은 혁명을 세 번이나 했고, 독일인은 나라를 두 번이나 통일했는데, 영국인은 아직도 화씨 온도를 쓴다. 심지어 날씨 얘기할 때만 말이다. 더 웃긴 것은 파운드와 온스, 야드와 마일 같은 단위도 여전히 고집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까지 우리만의 방식 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면, 영국인들의 보수성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영국기 유니언잭. (위키피디아)
차와 함께 굳어진 전통
영국인의 보수성은 아마도 차(茶) 문화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루에 차를 다섯 번씩 마시는 민족이 어떻게 급진적일 수 있겠는가? 오전 11시와 오후 4시가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차를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킬 리 없다. 찰스 디킨스(1812~1870)가 〈위대한 유산〉에서 묘사한 것처럼, 영국인들은 변화보다는 안정된 일상을 추구한다.
영국의 차 문화는 단순한 음료섭취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이다. 찻잔을 드는 방법, 설탕을 넣는 순서, 비스킷을 담그는 시간까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빅토리아 여왕(1819~1901) 시절부터 내려온 이런 관습을 바꾸려는 영국인은 거의 없다. 프랑스인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할 때, 영국인들은 집에서 차를 끓이며 참 시끄럽네, 우리는 조용히 차나 마시자 고 중얼거린다.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이 변증법을 통해 끊임없는 발전을 설파했다면, 영국인들은 어제 했던 대로 오늘도 하면 되지 않나? 라고 철학을 고수한다. 이것이 바로 영국식 실용주의의 정수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효과가 있으면 계속하고, 없으면 천천히 바꾸면 된다.
지구본의 영국. (위키피디아)
섬나라 특유의 고립감과 우월감
영국이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도 한 몫 한다. 대륙의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은 이웃나라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살아왔지만, 영국인들은 도버해협이라는 천연방벽 덕분에 우리만의 방식 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었다. 이 32킬로미터의 바다가 영국인들에게는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문명의 경계선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유럽대륙을 휩쓸 때도,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전 유럽을 위협할 때도, 영국인들은 우리는 다르다 며 버텼다. 호레이쇼 넬슨(1758~1805)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한 이후,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믿게 됐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변화에 대한 의심이 DNA에 새겨진 것 같다.
심지어 20세기에 들어서도 영국은 유럽통합에 늘 소극적이었다. 샤를 드골(1890~1970)이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두 번이나 거부했을 때, 영국인들은 오히려 역시 대륙사람들과는 맞지 않아 라고 생각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국 윌트셔에 있는 스톤헨지는 높이 약 4m, 너비 2m, 무게 25톤인 돌로 이루어진 고리 모양의 기념물로, 기원전 2400~2200년에 세워졌다. (위키피디아)
의회제의 역설과 점진주의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은 현대 민주주의의 요람이면서도 가장 보수적이다. 마그나 카르타(1215년)부터 시작된 점진적 발전 전통 때문에, 영국인들은 급진적 변화를 불신한다.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의 공화정 실험이 실패로 끝난 후, 영국인들은 역시 왕정이 최고야 라며 찰스 2세(1630~1685)를 다시 모셔왔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벌어지는 의회논쟁을 보면 영국인들의 보수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의원들은 수백 년 전 관습대로 서로를 존경하는 신사 라고 부르며, 칼을 찰 수 없도록 칼이 닿지 않도록 의자 사이 간격을 벌려 놓은 전통도 여전히 지킨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자유론 에서 개인의 자유를 역설했지만, 영국 의회는 여전히 중세적 관습에 얽매여 있다.
프랑스인들이 루이 16세(1754~1793)의 목을 자를 때, 영국인들은 참 과격하네, 우리는 그래도 왕을 죽이지는 말자 고 혀를 찼다. 1989년 독일인들이 베를린 장벽을 부술 때도, 영국인들은 우리 런던탑은 그대로 두자 고 했다. 변화는 필요하지만, 너무 급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영국의 사고방식이다.
서머싯 주, 바스에 있는 로만 목욕탕은 로마 브리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언어에서 드러나는 보수적 사고
영국인들의 보수성은 언어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혁신 을 뜻하는 innovation 이라는 단어를 영국인들은 오랫동안 부정적 의미로 사용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혁신가 는 말썽꾸러기 나 체제전복자 와 거의 동의어였다. 새로운 것보다는 검증된 것을 선호하는 영국인들의 성격이 언어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에드먼드 버크(1729~1797)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에서 급진적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이는 영국인들의 보수적 성향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점진적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진보 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영국 정치의 기본 원칙이 다.
반면 볼테르(1694~1778)나 장 자크 루소(1712~1778)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기존 체제를 뒤엎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 했다. 독일의 카를 마르크스(1818~1883)도 혁명적 변화를 통한 사회개조를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이런 급진적 사상가들이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와 이에 따른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음식문화로 보는 천년의 고집
영국 음식을 보면 보수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피시 앤드 칩스, 로스트 비프, 스테이크 앤드 키드니 파이, 구운 소시지와 으깬 감자(뱅거스 앤드 매시, Bangers and Mash)... 모두 수백 년 전부터 먹던 것들이다. 조리법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이 신선한 재료로 정교한 요리를 만들고, 독일인들이 맥주와 소시지의 조합을 끊임없이 발전시킬 때, 영국인들은 우리 할머니가 해주던 그 맛 그대로 를 고집한다.
조지 오웰(1903~1950)은 영국식 요리의 최고 미덕은 예측 가능성 이라고 했다. 맛이 있든 없든, 영국인들은 전통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일요일 로스트, 금요일 피시 앤드 칩스 같은 관습은 종교적 의식에 가깝다. 외국 음식이 들어와도 영국식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인도 커리가 영국에서는 치킨 티카 마살라 가 되고, 중국음식은 달콤하고 신맛의 소스를 뒤집어쓴다.
런던의 유명한 심프슨스 레스토랑은 1828년 개업한 이래 똑같은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200년 가까이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여전히 성업 중이라는 것 자체가 영국인들의 보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1707년 5월 1일 영국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을 통합한 연합 조약 문서. (위키피디아)
왕실, 영원한 보수의 상징
엘리자베스 2세(1926~2022)가 70년간 재위하며 보여준 것처럼, 영국인들은 변화보다는 연속성을 선호한다. 프랑스가 공화국과 제국, 왕정을 오락가락할 때, 독일이 제국, 공화국, 나치, 분단, 통일을 겪을 때, 영국은 꿋꿋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했다.
왕실의 존재 자체가 영국인들에게는 안정과 연속성의 상징이다. 2022년 찰스 3세(1948~)가 즉위하면서도 전통을 현대에 맞게 조금 다듬자 는 정도가 전부다. 왕관을 쓰는 의식, 근위병 교대식, 여왕의 생일축하 행사 같은 것들이 모두 수백 년 전 그대로다. 혁명? 그런 건 프랑스나 독일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영국 왕실이 스캔들에 휩싸여도 폐지하자는 여론은 소수에 그친다. 다이애나 비(1961~1997)의 죽음으로 왕실에 대한 비판이 거셀 때도,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개혁은 필요하지만 폐지까지는… 이라고 생각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19세기에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의 여제로 군림했다. (위키피디아)
정치문화 속의 보수주의
영국의 정치 문화도 보수성이 도드라진다. 보수당과 노동당이라는 양당 체제가 1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것도 그런 예다. 독일처럼 연정이 일상화된 것도 아니고, 프랑스처럼 정당이 수시로 생겨나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영국인들은 익숙한 정치구조를 선호한다.
윈스턴 처칠(1874~1965)이 보수당과 자유당을 오가며 정치생활을 했지만, 그의 기본철학은 늘 점진적 개혁이었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다. 지금까지 시도된 다른 모든 체제를 제외하고는 이라는 그의 명언은 영국인들의 현실주의적 보수성을 잘 보여준다.
마거릿 대처(1925~2013)가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했을 때도, 영국인들은 급진적 변화보다는 점진적 적용을 선호했다. 토니 블레어(1953~)의 신노동당도 결국은 기존체제 내에서의 개선을 추구했을 뿐이다.
런던 화이트홀의 세노타프에서 추모의 일요일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화환이 헌화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교육제도에 스민 전통주의
영국의 교육제도도 보수성의 온상이다. 이튼, 하로우 같은 명문 사립학교들은 수백 년 전 설립 당시의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교복, 기숙사 제도, 라틴어 수업까지 모든 것이 과거 그대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도 마찬가지다. 중세시대 건물에서 가운을 입고 강의를 듣는 모습은 21세기에도 변한 게 없다.
이런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사회지도층을 형성하니, 영국사회 전체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변화보다는 전통을, 혁신보다는 검증된 방식을 선호하는 문화가 대를 이어 전해진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전투에서 비행한 스피트파이어와 허리케인. (위키피디아)
보수성도 하나의 지혜
영국인들의 보수성을 무조건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공포정치나 독일 나치의 극단주의, 소련의 사회주의 실험 같은 급진적 변화가 가져온 혼란을 생각하면, 영국식 점진주의도 나름의 지혜다.
프랑스인들이 자유, 평등, 박애 를 외치며 혁명을 일으킬 때, 독일인들이 철학과 과학으로 세상을 바꾸려 할 때, 영국인들은 조용히 차를 마시며 천천히 해도 되지 않나? 라고 속삭인다.
물론 이런 보수성이 때로는 발목을 잡기도 한다. 산업혁명의 선구자였던 영국이 정보화 시대에는 뒤처진 것도, 유럽통합에서 늘 소외감을 느낀 것도 이런 보수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려는 영국인들의 고집도 나름대로 존중받을 만하다.
어쩌면 이런 여유로움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의 미덕일지도 모른다. 급할 것 없다. 차나 한 잔 더 마시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천 년을 이어온 전통이 하루아침에 바뀔 이유는 없지 않은가?
HMS 인빈시블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군을 격파하고 돌아왔다.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