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도 힘있게 세상을 바꾼 사람 조지프 엘더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름 없는 부고, 그러나 거인의 퇴장
지난해 1월 26일,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의 한 병원에서 95세의 노인이 조용히 숨을 거뒀다. 주류언론의 부고란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굵은 글씨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생을 ‘조용히’ 살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조용히 일했다. 전 세계의 유혈 낭자한 전쟁터를 누비며 적과 적 사이에서 비밀 편지를 날랐고, 서로 총구를 겨누는 자들을 한 방에 앉혀놓았으면서도 신문의 1단 기사 하나 남기지 않으려 평생을 경계했다.
그의 이름은 조지프 윌리엄 엘더(Joseph William Elder, 1930~2025). 사회학자이자 평화 활동가였던 그의 삶은,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현재 한국 사회가 가장 절실하게 복기해야 할 ‘평화의 교과서’다.
조지프 엘더(Joseph Elder, 1930~2025 - American Institute of Indian Studies)
이란의 선교사 아들, 하버드를 거쳐 세계의 중재자가 되기까지
엘더의 평화관은 그의 뿌리에서 싹을 틔웠다. 1930년 7월 25일, 그는 이란(당시는 페르시아)의 케르만샤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 소속 선교사였다. 어린 시절 엘더에게 이란어는 영어만큼이나 익숙한 모국어였고, 무슬림 이웃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다정한 친구였다. 그는 성년이 되기 전 이미 다름 이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옆집 이웃의 얼굴일 뿐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1947년 매사추세츠의 마운트헤르몬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오벌린대학(Oberlin College)에 입학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평생의 반려자이자 동지인 조앤 핀리(Joann Finley, 1929~2022)를 만나 1951년 결혼했고, 학문적 기초를 닦았다. 1959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학문적 열정은 안락한 연구실에 머물지 않았다.
1956년부터 2년간, 그는 박사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아내와 갓난아이 둘을 데리고 인도 북부 마을의 망고 숲 옆 천막에서 살았다.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현지인들과 밥을 나눠 먹는 ‘현장연구’는 훗날 그가 분쟁지역의 밑바닥 정서를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1961년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 부임한 그는 2014년 은퇴할 때까지 무려 53년간 사회학과 남아시아 연구를 가르치며 수천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조앤 핀리 엘더(Joann Elder Obituary August 25, 2022 - Cress Funeral and Cremation Services)
나는 감옥에 가겠다”, 퀘이커 신앙과 평화원칙
엘더 인생의 가장 강력한 엔진은 퀘이커 신앙이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초, 징병위원회 앞에 선 20대 청년 엘더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나는 무기를 들고 군에 입대하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겠습니다.
냉전의 광기가 몰아치던 시절, 국가의 명령에 정면으로 맞선 이 선택은 그를 퀘이커의 길로 인도했다.
퀘이커교는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기독교 분파다. 이들에게는 화려한 예배당도, 권위 있는 신부도, 장엄한 성가대도 없다. 그저 고요한 방에 모여 앉아 ‘내면의 빛’이 임하기를 기다리며 침묵한다. 그러나 이 정적인 침묵은 세상을 향할 때 가장 역동적인 파괴력을 가졌다. 노예제 반대, 여성참정권, 반전운동의 최전선에는 늘 이 ‘침묵의 사람들’이 있었다.
엘더는 이 신앙을 바탕으로 학문적 식견을 결합해 세계의 화약고로 달려갔다. 1966년 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분쟁 화해사절단을 시작으로, 1969년에는 북베트남을 방문해 미군 전쟁포로 문제를 논의했다. 1985년 스리랑카 내전 당시에는 정부군과 타밀 반군 사이를 오가는 유일한 메신저였다.
조셉 엘더.(Joseph Elder Obituary (1930~2025) - Madison, WI - Madison.com)
힘없는 자의 힘”, 퀘이커 외교의 역설적 지혜
엘더가 현장에서 고수했던 중재원칙은 지독할 정도로 겸손했다.
철저한 비공개: 퀘이커의 역할을 절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조건 없는 철수: 당사자가 더 이상 도움을 원치 않으면 즉시 사라진다.
오늘날의 외교가 ‘성과’와 ‘생색’에 목매는 것과 정반대의 행보다. 엘더는 이를 힘없는 자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 이라 불렀다. 퀘이커는 군대도, 경제 제재 수단도, 정치적 야심도 없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독재자도, 반군지도자도 그들을 신뢰했다.
우리에겐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경험한 가장 신비로운 기적입니다.
그는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이 주창한 이론을 현실 정치의 한복판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증명해 보였다.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위키피디아)
한국과의 인연, 평양과 워싱턴 사이의 이름 없는 다리
엘더와 한국의 인연은 각별하다 못해 운명적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징집을 거부했던 그는, 수십 년 뒤인 1989년 그 전쟁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사이의 비공식 메신저가 되어 평양 땅을 밟았다.
당시 미국 퀘이커회는 남북한 모두와 접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민간 통로였다. 퀘이커는 전쟁 직후 전북 군산을 거점으로 의료와 교육 지원 사업을 펼쳤고, 그 정신적 토양 위에서 한국의 사상가 함석헌(1901~1989)이 1967년 퀘이커 교도가 되었다. 함석헌이 ‘씨알 사상’으로 민중의 내면적 각성을 촉구했다면, 엘더는 그 씨알들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평화의 연대를 맺을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엘더는 평양에서 받은 메시지를 워싱턴에 전달하고, 다시 워싱턴의 기류를 북측에 전하며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를 통해 흐른 것은 정보가 아니라 ‘신뢰의 가능성’이었다.
함석헌.(위키피디아)
오늘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
엘더가 세상을 떠난 2025년 초, 한국사회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웠다. 윤석열-김건희 정권에서 이어진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갈등은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엘더의 삶은 우리에게 세 가지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첫째, 우리에게는 ‘자기 비움’의 중재자가 있는가? 한국의 모든 갈등구조 속 행위자들은 ‘내 편의 승리’만을 목적으로 한다. 공로를 상대에게 돌리고 자신은 이름 없이 사라지겠다는 엘더식 중재자가 우리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둘째, 우리는 대화의 방법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엘더는 상대가 적일지라도 그들 내면의 ‘빛’을 믿었다. 상대를 악마화 하거나 무조건적인 굴종을 요구하는 극단적 양극화 속에서, 엘더가 보여준 ‘힘없는 신뢰’의 외교는 우리가 잃어버린 제3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
셋째,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가? 53년의 교수 생활 동안 엘더는 안락한 강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인도 마을의 흙먼지 속에서, 스리랑카의 포성을 뚫고 사회학을 실천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서재 안에서 말의 성채를 쌓는 동안, 현장에서 갈등을 몸으로 막아내는 활동가는 고립되고 있다.
조지프 엘더.(Elder, Joseph W. – Asian Languages and Cultures – UW–Madison)
침묵이 가장 시끄러운 말이 될 때
조지프 엘더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명확하다. 그는 1985년 매디슨 연구소를 창립하고, 미국 인도 연구소(AIIS) 회장을 지내며 학문적 성과에 몰두하는 한편, 죽기 전까지 봉사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부고에는 가족들의 짧은 당부가 적혀 있었다. 꽃 대신 평화와 진보적 명분을 위해 당신의 시간과 기부를 나누어 주십시오. 더 친절한 세상을 위해.
우리사회는 지금 너무 시끄럽다. 모두가 마이크를 잡으려 하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 소란의 틈바구니에서 조지프 엘더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기려 하지 말고, 이어라(Don t try to win, try to connect).
총 한 발 쏘지 않고, 예산 한 푼 요구하지 않고, 신문 1면에 이름 석 자 올리지 않으면서도 세계의 균열을 메웠던 한 노병의 퇴장. 그의 묘비엔 아무런 수식어가 없어도 좋을 것이다. 그가 놓은 무수한 다리 위로 오늘도 평화의 씨알들이 걷히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엘더.(Elder, Joe – Center for South Asia – UW–Mad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