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수출 진흥법 , 적자 수출을 진흥하겠다는 건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부가 5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원전수출진흥법’은 한국 원전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 주도의 수출 교섭, 금융지원, 정부 출연, 전문인력 양성, 원전수출 총괄기관 지정 등을 포함한 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세계의 원전 건설 시장은 우리 정부가 진흥법까지 제정해 수출을 독려할 만큼 전망이 밝은 시장일까? 불행하게도 사정은 정반대다.
14일 중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한전-한수원 간 원전수출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 및 중재지 변경 협약 체결식’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가운데)이 협약서에 서명한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왼쪽), 김회천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2026.5.14. 연합뉴스
원전 시장은 초고위험 도사린 ‘수요국 우위 시장’
우리가 원전 수출로 안정적 흑자를 낸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UAE 바라카 원전과 이집트 엘다바 원전 사업은 이미 수조 원대 적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웨스팅하우스는 해외 원전사업 과정에서 여러 번 파산을 겪었고, 프랑스 아레바 역시 대규모 손실 끝에 EDF 체제로 재편되었다. 결국 원전수출은 대부분 막대한 적자 구조로 귀결되어왔다. 도대체 정부가 국민에게 돌아갈 부담까지 떠안으며 ‘원전수출진흥법’을 제정해 원전수출을 진흥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원전수출은 일반 제조업 수출과 다르다. 수십조 원 규모의 장기 금융, 금리·환율 리스크, 공기 지연 위험, 장기 운영 책임, 외교·규제 변수까지 결합된 초고위험 사업이다. 더욱이 오늘날 세계 원전시장은 공급자가 아니라 발주국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금융지원, 기술이전, 현지화, 장기 전력가격 보장까지 요구하는 ‘수요국 우위 시장’인 것이다.
즉 원전수출은 단순 기술수출이 아니라 금융과 국가보증이 결합된 정치·외교 사업에 가깝다.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경제성이 충분하다면 참여 기업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며 수출에 참여하고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공기업 보증, 정책금융,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정부 간 협약 등이 결합되며 사실상 국가가 위험을 떠안는 구조로 가고 있다. 정부가 수출을 주도한다는 것은 공공책임구조로 가겠다는 의미와 다름 아니다.
이 구조는 이명박 정부에서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본격화됐다. 당시 정부와 원자력계는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독자 수출 기반 마련을 목표로 ‘3대 핵심기술 자립’에 수천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했다. 이후 원자력계는 이제 독자수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UAE 바라카 원전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독자 수출’ 호언장담 대신 등장한 미국 투자형 원전사업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체코원전 수출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협상 과정에서 공개된 내용은 독자수출 가능” 주장과 달리 미국과의 협력 없이는 수출이 어려운 구조임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지금 다시 MANUGA(Make American Nuclear Great Again)라는 이름으로 미국 투자형 원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은 신규 원전 건설의 금융 리스크와 적자 구조로 인해 프로젝트 금융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자국 원자력산업을 살리기 위해 동맹국 자본과 공기업 금융을 활용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MANUGA의 본질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먼 국내 원자력산업계는 이를 대미 투자 기회”와 원전 르네상스”로만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빠져 있다. 만약 실패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업을 제안한 산업계가 책임지는가. 아니면 결국 한전과 한수원 적자로 남고, 다시 전기요금과 공공부채로 사회화되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 국회 MANUGA 세미나가 보여준 상징성이다. 지난 5월 7일 국회 세미나는 단순 산업 토론회가 아니었다. 과거 독자수출 가능성을 강조했던 전직 한수원 고위직은 어느새 말을 바꿔 MANUGA 협력 필요성을 주장했고, 2014년 원전비리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전직 고위 인사도 핵심적으로 참여했다. 그런데도 여야 중진이 포함된 정치권 인사들은 원전수출 확대와 대미 원전투자 필요성만 강조했을 뿐, 세미나 참여자의 적정성과 적자 발생 시 책임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수익이 나면 기업이 차지하고, 손실이 나면 공공이 부담하는 구조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이나 책임의식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원전비리 사태를 통해 폐쇄적 산업 네트워크와 정경 유착의 위험성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다시 MANUGA를 빌미로 원전비리 시즌2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원전수출진흥법’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원전수출기본법’이다. 적자를 감수하며 수출을 확대하는 법이 아니라, ▲적자 수출 제한 ▲정부보증 제한 ▲공기업 부채 위험 공개 ▲민간 책임 원칙 ▲손실 발생 시 책임 구조 ▲국민 부담 제한 원칙 등을 명확히 규정하는 법이어야 한다.
정부는 특정 산업집단 아닌 전체 국민 위한 정책 펼쳐야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원전수출이 정말 경제성이 있다면 민간이 스스로 위험을 부담하고 투자하면 된다. 반대로 정부 보증과 공기업 부채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운 사업이라면, 그것은 이미 시장 경쟁력을 잃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정부는 특정 산업집단의 이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안전과 국가 재정, 미래 세대 부담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공공정책을 위해 존재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원전수출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외교·통상적 지원에 머물며 수출에 따른 책임구조를 명확히 해 국민 피해를 막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전수출진흥법’을 통한 무조건적인 ‘진흥’이 아니라, 국민 부담과 정책 실패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는 ‘원전수출기본법’을 통한 ‘책임구조의 회복’이다.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immjy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