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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이스라엘-레바논 직접 협상…헤즈볼라 빠져 맹탕

이스라엘-레바논 직접 협상…헤즈볼라 빠져 맹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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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포(나크바)하고 유혈 충돌이 빚어지자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주한 곳이 지금의 레바논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무장조직 헤즈볼라를 만들었고, 시아파 맹주 이란은 그들의 무장과 정치적 단결을 배후에서 지원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충돌을 빚게 됐고, 이란의 지원을 등에 업은 헤즈볼라가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지금은 레바논 의회에 상당수 의석을 확보하고  정부를 능가하는 정부 의 위력을 갖춘 무장정파로 성장했다.     마이클 니들험(왼쪽부터) 미 국무부 고문과 마이크 월츠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미셸 아이사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 나다 하마데 모아와드 미국 주재 레바논 대사, 예키엘 라이터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을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 4. 14 워싱턴DC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사실상 전쟁 상태를 이어온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주미 대사들이 14일(현지시간) 미국의 중재로 워싱턴DC에서 회담을 갖고 두 나라가 직접 협상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이란은 미국과의 종전협상에 레바논 휴전 논의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번 이스라엘-미국-레바논 회담에서는 레바논 휴전과 관련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나다 하마데 모아와드 주미 레바논 대사와 예키엘 라이터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이날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과 함께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했다. 외교관계가 없는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고위급 회담이 연 것은 1993년 이후 처음이다. 2시간 정도의 회담 후 미 국무부는 성명을 내고 상호 합의된 시기와 장소에서 직접 협상을 개시하는 데 모든 당사자가 합의했다 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두 나라의 역사적 이정표를 축하하고 향후 논의를 지지한다 면서 포괄적인 평화협정이 도출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적대행위 중단에 대한 어떤 합의도 반드시 미국의 중재를 통해 두 나라 정부 간에 도출돼야 하며 별도의 경로를 통해 이뤄져서는 안된다 고 지적했다. 별도의 경로란 이란이나 헤즈볼라가 끼어들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미국의 입장은 레바논 휴전이 미국과 이란의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이란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해석했다. 라이터 대사는 회담을 마친 뒤 취재진을 만나 오늘 우리는 같은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모아와드 대사도 건설적 논의를 했다며 회담에서 휴전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루비오 장관은 회담에 앞서 역사적 기회 라며 20∼30년간 이어진 헤즈볼라의 영향력을 영구히 종식시키는 문제이며 진전을 기대한다 고 밝혔다. 헤즈볼라의 수장 나임 카셈은 전날 TV 연설을 통해 우리는 찬탈자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거부한다 면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계속 맞설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레바논 정부를 향해 이번 협상을 취소함으로써 역사적이고 영웅적인 결단을 내리라 고 촉구했다. 하지만 카셈의 바람과 달리 이날 회담에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휴전과 헤즈볼라의 장기적 무장해제, 양국 간 평화협정 체결이 중점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교전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규군 간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교전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과 앞으로의 협상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의 모든 협상이나 회담에 반대해 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합의가 이뤄져도 이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 빤하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휴전은 미국과 이란 간 협상에도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7일 이뤄진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 합의에도 레바논은 합의 대상이 아니라며 공격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란은 레바논에서의 휴전 수용을 미국에 압박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11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나 협상을 벌였으나 이란 핵포기와 호르무즈 해협 통제 등의 사안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21일로 2주 휴전이 끝나는 가운데 이르면 16일 양측이 다시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슬라마바드나 스위스 제네바 둘 중 한 곳이 유력한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에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 대표들이 회담을 가진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레바논 남부의 한 동네에서 포연이 치솟는 것이 이스라엘 북부 국경 근처에서 촬영됐다. 2026. 4. 14 이스라엘 북부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 간 협상의 의미와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려면 왜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헤즈볼라를 자꾸만 공격하고 헤즈볼라는 저항과 통치라는 두 측면을 통해 이스라엘에 맞서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레바논이란 나라의 탄생, 그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의미와 함께 헤즈볼라가 탄생하고 지금처럼 득세하는 과정,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벌여 온 충돌의 역사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레바논의 탄생과 내전은 이스라엘의 책임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로 면적이 1만 452㎢로 경기도보다 약간 작다. 인구는 500만 명 밖에 안 된다. ​ 고대부터 동서 문명이 만나는 교차점이었으며,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 남쪽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토 중앙을 남북으로 가르는 레바논 산맥은 고대 이래 피난처로 다양한 종파가 은신하는 곳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동의 파리 로 불리던 베이루트는 아랍권 최고의 금융·문화·관광도시로 화려한 시절을 누렸는데 이스라엘과의 끊임없는 유혈, 내전 등으로 얼룩졌다. 동서가 만나는 교차로라 십자군 원정의 거점 역할을 했으며, 오스만 투르크의 점령과 지배를 겪었고,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프랑스령이 됐다. 프랑스가 1932년 인구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근거로 종파별 권력 분배 제도(Confessionalism)가 만들어졌다.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 나눠 맡기로 했다.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종파 간 국민 협약 (National Pact)으로 공식화한 권력 배분 구조가 헌법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5년 뒤 이스라엘 건국에 밀려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은 레바논 시민권을 받지 못하고 난민촌에 갇혔는데 훗날 내전의 도화선이 된다. 1958년 아랍 민족주의(나세리즘) 물결 속에 무슬림과 기독교 갈등이 폭발해 미국 해병대가 개입했다. 1970년 요르단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레바논 남부를 근거지로 삼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바논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중동 현대사에서 가장 복잡하고 처참한 내전이 지속된다. 마론파 민병대(팔랑헤)가 팔레스타인 버스를 습격한 사건이 내전으로 번진 것이 1975년 4월이었다. 마론파 기독교 민병대와 팔레스타인+수니파 좌파 연합이 충돌했는데 이듬해 처음엔 기독교 편을 들어 개입한 시리아군이 나중엔 팔레스타인+수니파 좌파 연합 편을 들어 개입했다.  이 때다 싶었는지 이스라엘이 1978년 레바논 남부를 침공했다. 드루즈파·시아파·수니파 간 세부 갈등까지 복잡하게 얽혔다. 1982년 이스라엘이 PLO를 몰아낸다며 베이루트까지 진격했고, PLO는 튀니지로 쫓겨났다. 당시 사브라·샤틸라 학살이 일어난다. 이스라엘군의 묵인 하에 마론파 민병대가 베이루트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수백~수천 명을 학살해 국제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레바논 남부 티레의 한 남성이 14일(현지시간)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깃발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2026. 4. 14 티레 로이터 연합뉴스 헤즈볼라의 탄생과 득세도 이스라엘 책임 1982년 이스라엘의 침공에 저항하기 위해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으로 헤즈볼라(신의 당)가 창설됐다.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 타이프에서 협정을 맺어 15년 내전이 공식 종결됐다. 타이프 협정은 레바논 의회 의석을 기독교와 무슬림이 50:50 점유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시리아군은 2005년까지 레바논에 주둔하며 협정 준수를 감독했다. 헤즈볼라는 시아파를 중심으로 빠르게 세력을 키웠다. 그들의 게릴라전 전략에 지칠 대로 지친 이스라엘이 18년 만에 레바논 남부에서 철군했다. 당연히 헤즈볼라는 신의 승리 라고 선전하며 레바논 전체를 구한 영웅인 듯 행세했다.  2005년 수니파 총리 라피크 하리리가 차량폭탄 테러로 암살되는 일이 일어났다. 시리아와 헤즈볼라가 배후에 있다는 의심이 확산돼 대규모 반시리아 시위 삼나무 혁명 이 일어났고, 시리아군은 철수했다.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은 2006년 자국 병사가 납치됐다는 핑계를 들어 레바논 전쟁(7월 전쟁)을 시작했다. 대규모 공습과 지상전을 감행,  34일 동안 레바논 민간인 1200명 이상 희생됐다. 헤즈볼라는 버텨내며 또다시 신의 승리 라고 외쳤다. 이 무렵 헤즈볼라는 무장조직을 넘어 학교와 병원, 복지 서비스를 운영해  국가 속의 국가 로 불린다. 레바논 시아파들의 사실상 정부 역할과 함께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 2011년 시리아 내전의 파급 효과로 15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이 레바논으로 유입됐다. 인구 500만의 나라에 난민 150만 명 이상이 밀고 들어오니 경제가 망가졌다. 2019년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가 95% 이상 폭락. 은행들이 예금 인출을 막았고, 실업률이 폭등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세계 역사에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 중 하나 로 평가할 정도였다. 2020년 8월 4일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6년간 방치된 2750 톤의 질산암모늄이 폭발. 200여 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 다쳤고, 30만 명 이상 집을 잃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2023년 가자 전쟁 발발 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과 드론 공격을 이어갔고, 이스라엘 역시 레바논 남부를 이듬해까지 공습으로 두들겼다. 2024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포함한 핵심 지도부를 연달아 제거하는 데 성공, 창설 이래 최대의 타격을 받았다.   레바논 남부 티레의 한 피난민 보호소에서 지내는 한 소년이 지난 1일(현지시간) 집을 잃은 어린이들을 심리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생후 3개월 된 남동생을 보듬어 안으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2026. 4.1 티레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왜 헤즈볼라를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나 ① 헤즈볼라의 존재 자체가 이유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소멸 을 공식 목표로 천명한다. 이스라엘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미사일과 로켓 등을 보유해 이스라엘에게 헤즈볼라는 단순한 무장 단체가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협이다.​ ② 이란의 전진 기지 이기에 미리 쳐야 한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창설하고 지금도 자금·무기·훈련을 지원하는 이란의 대리 세력(PROXY)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레바논과 헤즈볼라는 이란을 직접 치지 않고 그들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가자 전쟁 때는 우리가 가자에서 싸우는 동안 북쪽(헤즈볼라)이 뒤를 치면 안 된다 며 선제 공격하기도 했고, 이번 이란 전쟁 때는 이란과 휴전을 합의하고도 논의 대상이 아니며 미래의 후환을 제거한다는 이유를 들어 레바논을 타격했다.  ③ 역사적으로 안보 트라우마가 깊이 작동한다. 1982년 PLO가 레바논으로 이동해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레바논 전역을 침공한 전례가 있다. 2006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둘을 납치했다고 전면전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이런 도발에 극도로 강하게 반응하는 억지력(Deterrence) 원칙 을 고수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다. 세 번째로 어쩌면 가장 피부에 와닿는 이유일 수도 있는데 북부 주민의 안전한 귀환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헤즈볼라의 로켓 위협 때문에 이스라엘 북부 주민 수만명이 피신했다. 이들을 귀환시킬 안전장치를 만들라는 국내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 ④ 레바논 정부의 무력함​이 이 모든 요소들을 거든다. 레바논 정규군과 정부는 헤즈볼라를 통제할 능력이 없으니 이스라엘로선 우리가 직접 막겠다 고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물론 국제사회는 레바논 민간인 피해를 이유로 이스라엘을 비판하지만 그들은 속도 모른다 고 답할 것이다.  ⑤ 선제 타격 독트린을 맹신하기 때문이다. 메나헴 베긴 총리의 독트린이다. 가상 적국이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무기를 보유할 능력에 관해 이스라엘 정부가 반확산 정책으로서 하는 예방 타격을 가리킨다.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핵 원자로에 대한 공격이 왜 필요했는지 베긴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설명하며 이렇게 마무리 발언을 한다.   더 나중은 어쩌면 영원히 너무 늦으니, 우리는 더 나중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합니다. 우리가 두세 해, 기껏해야 네 해 동안 빈둥거리며 서 있으면 사담 후세인이 폭탄 두세네 개를 생산할 법합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와 국민은 유대인 대학살을 따라 아마 쓰러져 가 버릴 것입니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다른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날 것입니다. 다시 그리하지 않겠어요, 다시는요! 그러니 당신이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친구에게, 우리는 우리의 처분에서 기어이 우리 국민을 지키리라고 말해 주십시오. 우리는 적국이 우리를 거스르는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대로 결코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베긴은 별도의 TV 인터뷰를 통해 이 공격은 이스라엘의 모든 미래 정부의 선례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미래 총리는 유사한 상황에서 같은 방법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라고 더욱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사실 구약 창세기 가운데 야곱의 딸 디나가 다른 부족에게 겁탈 당하자 야곱 아들들이 혼례를 올리자며 그 부족 남자들을 모두 할례를 하도록 꼬드긴 뒤 이들이 불편한 틈을 타 모조리 도륙한 일을 미래의 화근을 제거한 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봐도 유대교 교리에 선제 타격 이 내재된 것인지 모른다. 베긴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것도 새삼 어이없다.  헤즈볼라의 정밀 미사일 생산 시설, 무기 이전 루트, 지휘부를 미리 제거하는 것이 이스라엘 전략의 핵심이 된 지 오래다. 네타냐후가 물러나도, 어떤 이스라엘 총리가 와도 이런 생각의 밑바탕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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