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사실 유포는 신속, 정정 보도는 인색한 언론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남 조폭 연루설을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18년 7월 21일자 권력과 조폭 - 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방송의 한 장면. 그것이 알고 싶다 다시 보기 화면 갈무리
MBC에서 기자로 사는 동안에 기자회장을 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때 ‘구찌백 사건’이 터졌습니다. SBS 대주주인 태영건설이 고발 프로그램에서 일하던 MBC 기자들을 ‘명품백’으로 매수하려고 했던 사건이지요. 그런 걸 ‘길들이기’라고 하는 겁니다. 그 고발 프로그램은 폐지됐습니다. 기자회가 회사에 폐지를 요청했었습니다. 신뢰를 잃은 프로그램은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길들이기는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힘으로 하기도 합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갔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하는 모금행사에 가서 1억 달러 기부를 약속하고 눈도장이라 불러야 마땅한 ‘48초짜리 면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오면서 ‘바이든 쪽팔려서’라는 실언을 했지요. 그 소리가 우연히 취재 카메라에 잡혔고, 그걸 알게 된 MBC 기자는 들리는 대로 보도했습니다.
그 보도로 인해 MBC는 윤석열 정권으로부터 혹독한 보복을 당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됐고,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방심위원장 유희림은 MBC를 겨냥한 ‘보복성 심의’를 남발했습니다. 그 당시에 용산 대통령실에 출입하던 MBC 기자는 동료 기자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했답니다.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 보복’에 기자들이 가세한 셈이지요. 정권의 눈 밖에 날까 두렵고 자기들에게도 불똥이 튈까 불안해서 그랬을 겁니다.
이재명을 ‘아수라’ 황정민처럼 연출해낸 SBS ‘그알’
2022년 대선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이른바 ‘친윤’ 언론은 ‘이재명 조폭 연루설’을 집요하게 퍼뜨렸습니다. 허위의 사실이었고 일방적인 폭로였는데, 언론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의혹을 증폭시켰습니다. 일방적인 주장이나 폭로는 독자적인 취재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보도하는 것이 보도의 기본 원칙인데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변호를 맡았던 조폭 조직원과 짜고 언론에 허위 사실을 제공한 장영하 변호사에겐 징역형의 중형이 선고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청와대는 언론중재법에 나와 있는 대로 언론사에 추후 보도를 요청했습니다.
‘조폭 연루설’의 발원지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입니다. ‘그알’은 2018년 7월에 방송한 ‘권력과 조폭-파타야 살인사건’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이 조폭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그 얘기를 시시콜콜 전하면 ‘가짜뉴스’를 다시 유포하는 게 되므로 장정일 작가가 ‘그알’을 신랄하게 비판한 칼럼으로 대신합니다. 장정일 작가는 한국일보에 기고한 칼럼 ‘부실한 보도에도 공적가치가 있다?’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SBS ‘그알’이 2018년 7월 방송한 ‘권력과 조폭-파타야 살인사건’ 화면
탐사보도물의 연출자는 자신이 캐낸 증거와 논리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과 조폭’은 자신이 갖추지 못한 증거와 논리를 영화에 의탁한다. 이 탐사보도물에 따르면, 이재명이 국제마피아파 조직의 일부이고 국제마피아파와 공생해온 증거는 고스란히 영화 ‘아수라’에 들어있다. 이렇게 해서 이재명은 황정민이 되었다. 이처럼 허술한 탐사보도가 가능한 것은 제작자들이 시청자와 대중을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고한 정치인 악마화하는 허위 보도가 언론 자유인가
엊그제 SBS ‘그알’ 제작진은 ‘확실한 근거도 없이 의혹을 제기했다’며 사과했고, SBS는 8시 뉴스에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SBS 노조는 ‘이재명 대통령이 언론 자유를 위협하며 ‘언론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며 언론 자유에 재갈 물리는 발언을 중단하라‘는 규탄 성명을 냈습니다. SBS ‘그알’ 제작진은 지난 30여 년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 위해 분투해 왔고, SBS 언론인들은 앞으로도 어떠한 정치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성역 없는 보도를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성명을 보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가짜뉴스의 피해자가 진실을 말해달라고 하는 게 왜 언론 길들이기일까? 잘못된 보도의 피해자가 대통령이 되면 그런 피해가 있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건가? 언론 길들이기라고 하는데, 윤석열 정권이 언론에 ‘바이든-날리면’의 지록위마를 강요하고 시민에겐 완력으로 ‘입틀막’을 자행할 때 SBS 노조는 비판 성명을 낸 적이 있었던가? 12.3 내란 당시 김어준의 겸공에는 무장 군인을 보냈고 MBC와 JTBC는 단전 단수의 대상이었는데 왜 SBS는 빠졌을까? SBS 기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했을까?
손혜원은 능력이 출중한 마케팅 디자이너입니다. 민주당 국회의원도 지냈지요. 역사와 전통에 관심이 유난한 손혜원은 오래전부터 헐고 다시 짓는 재개발이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죽어가는 지방도시를 살리자고 설파했고, 직접 실행에 옮기기도 했습니다. 목포 구도심에 있는 적산가옥을 사서 리모델링으로 재생하는 구도심 보존 프로젝트도 그런 작업의 하나였습니다.
SBS 8시 뉴스가 2019년 1월 보도한 손혜원 당시 민주당 의원의 투기 의혹은 법원 판결로 사실이 아니라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추후 보도는 없었다.
‘길들이기’ 거부한다는 방송의 처참한 보도 리스트
SBS는 그런 손혜원에게 ‘부동산 투기꾼’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개발을 좋아하는 기득권 언론이 일제히 달려들어 손혜원을 물고 뜯었습니다. 부동산 투기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SBS는 당신 국회의원이던 손혜원에게 ‘이해 충돌’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일종의 ‘별건 수사’라고 할 수 있지요. 검찰은 SBS의 하청업체가 되어 손혜원을 기소했는데, 무죄나 마찬가지인 판결이 나왔습니다. SBS의 보도는 사실상의 명예 살인이었는데, SBS가 손혜원에게 사과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이 전임 대통령 노무현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을 때 SBS는 ‘논두렁 시계’ 보도를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치욕이었을 겁니다. 그 보도가 있고 열흘 뒤에 노 전 대통령은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 보도는 국정원과 유착된 산물이라는 게 정설로 통하고 있지만, SBS가 사과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의 검찰이 ‘조국 법무장관 사냥’에 나섰을 때, SBS는 조국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교수가 동양대에서 사용했던 PC를 검찰이 압수해 가기도 전에 그 PC에 ‘총장 직인’이 있다는 보도를 했었습니다. 보도가 아니라 ‘예언’이라 해야 마땅한 그 보도에 대해 SBS가 해명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전임 대통령 노무현 수사에 고삐를 조이던 무렵에 나온 SBS의 ‘논두렁 시계’ 보도 화면
정정 보도나 추후 보도는 언론사의 시혜 아닌 의무
기자들이 잘 모르는 게 있습니다. 정정 보도는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 즉각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잘못이 있다는 게 확인되면 즉시 정정 보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보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 윤리에도 그러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건 윤리 이전에 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정정 보도를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만합니다. 겸손을 모릅니다.
추후 보도는 정정 보도를 안 하고 버티다가 법원의 판결 등으로 허위라는 것이 확인되면 늦게라도 그런 사실이 있다는 걸 독자·시청자에게 알려주라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 피해 복구는 어렵더라도 명예는 회복시켜 주라는 겁니다. 추후 보도를 규정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17조의 2항에는 피해자의 명예나 권리 회복에 필요한 설명 또는 해명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그렇게 안 합니다.
‘잘못 보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던 조선일보 약속은 어디로?
조선일보는 2020년 6월 1일자 신문에서 ‘창간 100년을 맞는 조선일보의 역사는 거짓에 맞서 팩트를 추구하고 진실을 수호해온 역사’라고 자화자찬을 하며 오직 팩트, ‘잘못된 보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라는 사고(社告)를 1면에 게재했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거짓 뉴스가 범람하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철저한 사실 보도만이 언론의 존재 가치입니다. 조선일보는 거짓에 맞서 팩트를 추구하고 진실을 수호하면서 100년을 이어왔습니다. 언론은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을 때 이를 신속히 바로잡을 의무가 있습니다. 오보로 현실을 중대하게 왜곡하거나 타인의 명예에 상처를 입힌 경우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보를 낸 경위까지 밝히겠습니다. 보도 후 오래 지난 시점에 정정 보도를 게재하는 경우 이유를 밝히겠습니다.”
조선일보 창간 100년이 되던 2020년 6월 조선일보 1면에 게재된 ‘오직 팩트’ 사고(社告)
그리고 불과 1년이 지난 2021년 10월, 조선일보는 ‘이재명 조폭 연루설’을 집요하게 악의적으로 반복하여 보도했습니다. 대선이 불과 다섯 달도 채 남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 ‘조폭 연루설’을 언론에 제공한 장영하 변호사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선거판을 어지럽힌 죄로 징역형의 중형이 선고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조폭 연루설 은 이재명 후보의 정치생명을 좌우할 중요한 사안이었고,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대선에서 유권자들에게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당선자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판사는 범죄라고 판결문에 썼습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이재명 조폭 연루설’ 보도의 하나. 조선일보는 장영하 변호사가 전하는 조폭 조직원의 일방적 주장을 검증도 없이 그대로 보도하며 확대재생산하였다.
조선일보가 퍼뜨리는 노무현 바이러스, 이재명 혐오
조선일보는 1면에 게재했던 ‘오직 팩트’ 사고(社告)에서 오보로 현실을 중대하게 왜곡하거나 타인의 명예에 상처를 입히면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보를 낸 경위까지 밝히겠다는 ‘신속하고 적극적인 정정 보도’를 약속했고, 보도 후 오래 지난 시점에 정정 보도를 게재하는 경우 그 이유까지 밝히겠다고 ‘자세하고 친절한 추후 보도’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송요훈 편집위원(전 MBC 기자)
유권자들을 오도하여 대통령 당선자가 바뀌게 했을 수도 있는 ‘이재명 조폭 연루설’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행한 매체는 단연 조선일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정 보도는커녕 추후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만합니다. 대신 오늘도 적극적이고 반복적으로 ‘기승전 이재명 혐오’를 지면에 채우고 있습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며 노무현 혐오 바이러스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던 그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