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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교권보호국 의 유혹과 위험…공권력 확대가 해법인가

교권보호국 의 유혹과 위험…공권력 확대가 해법인가
[뉴스]
드라마 참교육 포스터 드라마가 학교를 보이게 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불러온 열광은 우연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학교폭력, 악성 민원, 교사의 생활지도 위축, 학부모의 법적 대응, 학교장의 무력감이 뒤엉킨 오늘의 학교를 대중문화의 장면으로 번역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활동 보호와 교권 회복은 이미 사회적 의제가 되었지만, 많은 시민에게 그것은 여전히 교사 집단의 특수한 호소처럼 들리기도 했다. 드라마는 그 거리를 좁혔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더 이상 교실 안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 점은 분명한 드라마의 성과이다. 교육현장의 고통은 오랫동안 문서, 공문, 집회, 호소문, 국회 토론회 속에서 말해졌다. 그러나 대중은 정책 문서를 통해 학교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는다. 장면과 서사를 통해 이해한다. 이점에서 〈참교육〉은 교사들이 왜 생활지도를 주저하는지, 학교가 왜 민원 앞에서 방어적으로 움직이는지, 교실의 질서가 왜 쉽게 무너지는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했다. 그 결과 교육활동 보호의 문제가 더 넓은 사회적 언어를 얻었다. 그러나 인식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곧 좋은 방식의 이해를 뜻하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학교의 구조적 문제를 강한 외부 권력의 개입과 폭력적 응징의 장면으로 해결한다.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끼지만, 그 통쾌함은 학교가 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는지에 대한 제도적 질문을 가릴 수 있다. 학교의 위기는 교사가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학교의 교육적 판단이 더 이상 공적으로 승인되지 않는 구조, 그리고 교육적 갈등이 점차 법적 분쟁으로 번역되는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17일 오후 서울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4.2.17. 연합뉴스 또한 드라마가 보여주는 해결 방식은 현실 정책 논의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민들은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강한 권한과 더 강한 처벌을 가진 조직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교육은 본질적으로 관계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영역이다. 학교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응징 권력이 아니라 교육적 판단을 지지하는 공적 제도와 사회적 신뢰의 회복이다. 따라서 〈참교육〉이 불러낸 것은 단순히 교권보호국이 아니다. 그것은 학교의 공적 권위 부재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다. 학교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는 갈등을 외부의 강력한 권력이 대신 정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증상이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교권보호국이라는 상상의 조직이 아니라, 왜 그런 조직을 상상하게 되었는가 하는 사회적 배경이다. 서이초 이후, 문제는 법의 부재가 아니라 체감의 실패였다 서이초 사건 이후 법과 제도는 분명히 움직였다. 교권 회복, 교육활동 보호, 정당한 생활지도, 아동학대 신고 대응, 지역교권보호위원회 이관, 기관 중심 민원 대응 등이 정책 언어로 등장했다. 과거보다 법적 장치는 촘촘해졌다.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교사가 혼자 모든 위험을 감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현장의 체감은 낮았다. 교사는 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민원이 들어오는 순간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학교장은 기관 대응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알지만, 반복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 학교폭력 사안과 언론 대응이 얽히면 여전히 학교 차원의 임기응변에 기대게 된다. 교육지원청은 지원을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원이 사안이 커진 뒤에야 도착한다고 느낀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제도가 있는가”가 아니다. 왜 있는 제도가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는가”이다. 제도는 문서 속에 존재하지만, 교사의 하루 속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정책은 발표되었지만, 교실의 전화기와 상담실의 긴장, 교무실의 침묵을 바꾸지 못할 수 있다. 바로 이 간극이 〈참교육〉의 인기를 만들었고, 교육활동보호국 논의가 부상한 배경이다. 정책의 성공은 법률 개정 건수나 조직 신설 여부가 아니라 현장의 체감 변화로 평가되어야 한다. 교사가 실제로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는가, 학교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가, 학부모가 공식 절차를 신뢰하는가가 중요하다. 체감 없는 제도는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제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서이초 이후의 과제는 법을 더 많이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마련된 제도를 학교의 시간표와 업무 흐름, 학부모 소통 구조, 교육지원청의 현장 대응, 교사의 회복지원 체계 속에 연결해야 한다. 문제는 법의 부재가 아니라 연결의 실패이다. 제도는 있는데 교사가 여전히 혼자라면, 그것은 보호체계가 아니라 보호체계의 그림자일 뿐이다. 교육활동보호국 논의의 위험 민주연구원이 제안한 교육활동보호국은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을 그대로 모방하자는 취지라기보다, 교사 개인에게 집중된 민원과 분쟁 부담을 국가와 교육청이 나누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악성 민원, 반복적 협박성 민원, 허위사실 유포,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위협적 신고를 교사 개인이 감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방향은 타당하다. 교사가 민원의 직접 상대가 되는 순간 교육활동은 전문적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적 방어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이 제안에는 중요한 설계상의 혼선이 있다. 하나는 교사를 민원과 분쟁의 직접 상대에서 분리하는 기관책임제이고, 다른 하나는 교권보호위원회, 교육활동보호센터, 학교민원 대응체계, 학생생활지도 고시, 아동학대 신고 대응, 학교폭력 조사체계를 통합 조정하는 거버넌스 개편이다. 여기에 교육지원청 현장지원팀이라는 즉각 개입 체계까지 결합되어 있다. 이 세 과제는 연결되어야 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기관책임제는 학교 현장의 미시적 위험을 줄이는 장치이다. 통합 조정은 행정체계의 분절성을 해결하는 거시적 설계이다. 현장지원팀은 사안 발생 시 학교에 들어가 초기 판단과 대응을 돕는 실행 단위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교육활동보호국이라는 하나의 조직 신설 논리로 묶이면, 조직은 생기지만 현장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새 부서의 이름은 강해지지만, 교사의 전화기는 계속 울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교육활동 보호를 지나치게 법률지원과 제재 중심으로 상상하는 경향이다. 실제로 학교 갈등이 법률적 절차를 통해 해결될수록 학교 내부의 교육적 조정 능력이 약화되는 학교 사법화 현상이 나타난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시절부터 축적된 현장의 경험도 이 점을 보여 준다. 갈등이 교육적 해결보다 법률대리인, 행정심판, 소송 중심으로 이동하면 학교 구성원 간 신뢰는 약화되고 갈등은 장기화된다. 따라서 교육활동보호국이 단순히 더 강한 법률 대응 조직으로 설계된다면, 교사를 보호하기보다 학교 사법화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교육활동보호국의 성패는 얼마나 강한 권한을 갖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교육적 해결을 지원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학교를 대신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교육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다.   1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한 대한민국 비폭력 캠페인 행사장에서 한 시민이 학폭 관련 설문에 답하고 있다. 2023.5.13 연합뉴스 이미 학교는 민원의 주체가 아니다 정책설계에서 더 근본적으로 짚어야 할 점은 민원의 법적 구조이다. 민원은 본래 행정기관을 상대로 제기되는 요구이다. 교사 개인은 행정기관 전체가 아니며, 담임교사의 개인 휴대전화나 교실 앞 대면 압박이 민원의 정상 통로가 될 수 없다. 이미 법의 구조만 놓고 보면 민원의 공식 상대는 교사 개인이 아니다. 더 나아가 대법원 판례는 학교 그 자체도 독립된 법률주체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해 왔다. 대법원은 학교를 법인이나 법인격 없는 사단·재단이 아니라 교육시설의 명칭으로 보아, 원칙적으로 민사소송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례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학교라는 이름 자체가 모든 분쟁과 민원의 독립적 책임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법적 책임과 행정적 응답은 학교라는 시설명칭이 아니라 법령상 권한과 책임을 가진 행정기관, 학교장, 교육청, 교육감, 또는 해당 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을 통해 조직되어야 한다. 물론 학교장은 법령에 따라 일정한 교육행정 권한을 행사하고, 학교는 학부모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학교를 고객 응대 기관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대법원은 학부모 등 보호자가 자녀의 교육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의견 제시는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이어야 하며,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반복적이고 부당한 간섭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판례는 학교가 학부모의 의견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의견 제시와 부당 간섭 사이에 법적·교육적 경계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는 단순한 행정서비스 제공이 아니다. 학생 지도, 생활교육, 평가, 학급 운영은 교육전문성에 기초한 판단의 영역이다. 학부모의 문제 제기는 설명과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고객의 요구를 즉시 충족해야 하는 서비스 청구권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의 판단은 책임 있게 설명되어야 하지만, 고객 만족의 기준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학교 현실은 법의 구조와 다르게 작동해 왔다. 학부모의 불만은 담임교사의 개인 연락망으로 들어오고, 반복적 항의는 교감과 교장을 거쳐 다시 담임에게 돌아가며, 허위사실 유포와 온라인 비난은 교사 개인의 명예와 심리적 안전을 직접 훼손한다. 법적으로는 기관이 처리해야 할 일이 생활세계에서는 교사의 친절, 인내, 설득, 침묵으로 흘러간다. 이것은 법의 부재가 아니라 행정 설계의 실패이다. 이 실패는 두 가지 혼동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학부모의 의견 제시권을 민원권처럼 운영해 온 혼동이다. 다른 하나는 학교라는 교육공동체를 민원처리기관처럼 다루어 온 혼동이다. 학부모는 학교에 질문할 수 있고, 학교는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교사 개인을 직접 압박하는 사적 통로가 아니라 공식적이고 공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교육적 소통과 민원행정의 경계이다. 따라서 기관책임제의 핵심은 원칙의 재선언이 아니다. 교사 개인에게 흘러드는 비공식 민원을 공식 창구로 되돌리는 구체적 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개인 연락 차단, 공식 민원창구 일원화, 반복 민원 이관 기준, 협박성 민원 통화 중단 기준, 허위사실 유포 대응 절차, 교육청 법률지원 착수 시점이 명확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기관책임제는 다시 학교장 책임제로 축소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를 민원 처리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으로 재정의하는 일이다. 학교는 모든 요구를 즉시 수용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절차에 따라 듣고, 교육적으로 판단하고, 공적으로 설명하며, 공동체의 규칙을 세우는 곳이다. 교사는 민원의 직접 상대가 아니라 교육활동의 전문적 주체이다. 학부모는 고객이 아니라 교육적 공동책임의 주체이다. 이 원칙이 확립될 때 비로소 교육적 전문성과 학교공공성이 함께 보호될 수 있다. 제도설계의 허점은 책임의 이동이다 국가책임형 보호체계는 학교책임제가 아니다. 학교는 초기 사실 확인과 교육적 조정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반복·협박·허위·법적 위협이 포함된 사안은 교육지원청과 시도교육청이 공식적으로 인수해야 한다. 교육부는 국가 기준과 예산, 법령과 데이터 체계를 책임져야 한다. 시도교육청은 전문인력과 법률대응, 회복지원 예산을 책임져야 한다. 교육지원청은 현장에 즉시 들어가 사례관리를 해야 한다. 학교는 교육적 관계 회복과 학생의 학습환경 안정에 집중해야 한다. 이 책임 분배가 없으면 교육활동보호국은 또 하나의 보고 체계가 된다. 학교는 더 많은 서식을 작성하고, 교육지원청은 더 많은 회의를 열며, 교육부는 더 많은 통계를 요구한다. 그러나 교사는 여전히 불안하고, 학생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학부모는 여전히 학교를 신뢰하지 못한다. 조직 신설이 체감으로 이어지려면, 책임이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넘어가는지 분명해야 한다. 책임의 이동이 아니라 책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국가와 교육청이 실제 책임을 분담하지 않는다면 보호체계는 이름만 바뀐 채 현장의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교육활동보호국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학교장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장이 교육적 판단과 공동체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교육청이 실제 부담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응징형 교권보호가 아니라 국가책임형 교육활동보호체계이다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은 빠르고 강력하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즉시 찾아내고 단호하게 제압한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교육행정은 드라마처럼 설계될 수 없다. 교육활동 보호는 통쾌함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의 문제이며, 응징보다 책임의 문제이다. 국가책임형 교육활동보호체계란 교사가 민원과 신고, 소송의 직접 상대가 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많은 갈등이 교사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학부모의 항의도, 온라인 비난도, 법적 분쟁도 교사가 직접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책임형 체계는 이러한 부담을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 나누어 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국가는 교사를 대신해 복수하는 기관이 아니다. 대신 교사가 교육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절차와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법률 지원, 심리 상담, 갈등 조정, 회복 프로그램, 데이터 관리, 전문 인력 배치 등이 모두 국가책임의 영역이다. 교육활동 보호는 처벌보다 지원의 체계를 구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서는 역할 분담도 명확해야 한다. 교육부는 기준과 재정을 책임지고, 시도교육청은 전문 지원 체계를 구축하며, 교육지원청은 현장 대응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학교는 교육적 사실을 확인하고 공동체 회복을 추진하는 역할을 맡고, 상급 기관은 법률과 행정 지원을 담당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정리하면 교사를 지키는 국가는 교사를 대신해 때리는 국가가 아니다. 교사가 홀로 맞지 않도록 뒤에 서는 국가이다. 교육활동 보호의 핵심은 강한 처벌이 아니라 책임의 분산과 지원의 조직화에 있다. 이것이 응징형 교권보호와 국가책임형 교육활동보호체계의 가장 중요한 차이이다. 합법적 국가폭력의 유혹을 넘어 학교공동체 회복으로 가야 한다 교육활동보호국 논의에는 한 가지 위험이 존재한다. 그것은 학교 문제를 모두 국가의 강제력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이다. 교사의 고통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강한 권한과 더 빠른 처벌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그대로 제도화될 경우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관리기관으로 변질될 수 있다. 특히 학교폭력, 생활지도, 아동학대 신고, 학부모 민원 문제를 모두 처벌의 언어로만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갈등의 원인과 맥락을 살피기보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먼저 따지는 문화가 강화되면 학교는 더욱 사법화된다. 교육적 판단보다 법적 방어가 우선되는 환경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자유롭게 성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활동보호국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응징기관이 아니라 보호·조정·회복기관이어야 한다. 악성 민원과 협박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정당한 문제 제기까지 차단해서는 안 된다. 학부모의 참여권과 교사의 교육권은 서로 대립하는 권리가 아니라 함께 조정되어야 할 권리이다. 아동학대 신고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고권 자체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대신 정당한 교육활동이 조사와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신고를 막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강한 국가와 책임지는 국가는 다르다. 강한 국가는 개입하고 제압한다. 반면 책임지는 국가는 기준을 만들고 위험을 분담하며 회복을 지원한다. 교육활동 보호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국가 권력의 확대가 아니라 학교공동체의 회복이다.정용주 서울천왕초교장 jyj@mind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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