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사라진 AI 디스토피아 … 기본사회 가 희망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평범한 시민 유만수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
영화 는 한 개인의 비극적 추락을 통해 오늘날의 한국 사회, 더 나아가 다가오는 AI 시대가 초래할 위험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유만수(이병헌 분)는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반대했던 착한 관리자였고 가족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들을 책임지려 애쓰던 성실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해고를 당한 이후 그의 삶은 급속도로 붕괴된다. 재취업은 번번이 실패하고, 생활고는 점점 심해지며, 결국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집, 아주 어렵게 마련한 집마저 처분해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른다.
이 영화가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은, 실업과 동시에 곧바로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생존까지 위태로워지는 한국 사회의 잔혹함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재취업의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전가되고 이와 관련된 사회안전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자기소개서를 수십, 수백 장씩 써야 하고 열심히 면접을 보러 다녀야만 한다. 그 누구도 이들의 재취업을 도와주거나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를 악인으로 만든 것 아닌가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개인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 나아가 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의 생존은 단결과 협력의 방식이 아니라 치열한 개인 간 경쟁, 개인 간 혈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만수는 재취업을 위한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것에 비례해 정신적으로 더 피폐해지고 취업 경쟁자들에 대한 분노를 키워나간다. 마침내 그는 재취업을 위해 자기가 차지해야만 할 일자리와 관련된 경쟁자들을 다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유만수는 자신이 취업하려는 회사의 관리자를 죽이기 전에, 그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될 경쟁자들부터 먼저 제거한다. 이 장면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에게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악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이렇게 묻는다. 이런 사회에서 선한 인간이 끝까지 선할 수 있는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생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
유만수의 살인은 개인의 타락인 동시에 병든 사회의 산물이다. 고립된 채로 살아가는 삶, 개인 간 경쟁에 익숙해져 있는 – 이것은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된 이후부터 일반화되었다 - 한국인들은 각자가 각자의 생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그 과정에서 고립적 생존불안으로 고통받는다. 이로부터 그들은 자신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웃들과 연대하거나 단결하려 하지 않으며 그런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문턱은 너무 높고, 실패의 비용은 치명적인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인 유만수는 어쩔 수 없이 악인이 되기로 결심했고 어쩔 수 없이 악인이 된다.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극적 무게를 얻는다.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는 폭력이 사실은 부조리한 사회의 압박 속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가난한 집에 음악적 재능을 타고 태어난 아이의 운명
이 비극은 그의 딸 이아라의 서사에서 또 다른 형태로 확장된다. 이아라는 자폐로 짐작되는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지만, 동시에 첼로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아이로 그려진다. 유만수 부부는 딸의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음악학원에 보내고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에게 딸의 음악적 성공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딸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절박한 생존 문제이다. 만약 딸이 첼로로 성공하지 못하면 장차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날 딸을 가르치고 있던 음악학원 선생은 말한다. 딸의 첼로 실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대학교수에게 레슨을 받아야 할 텐데, 그럴 경우 교습비가 수천만 원대로 치솟게 될 거라고. 이런 말을 듣는 순간 실업자가 된 유만수와 아내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하얘진다. 이 장면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식 교육의 책임이 부모에게 거의 전적으로 떠넘겨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의 재력이 곧 아이의 미래를 좌우한다.
재능은 공평하게 분배될지 모르나 기회는 공평하지 않은 세상
재능은 공평하게 분배되지만, 기회는 그렇지 않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이 오직 부잣집에만 집중적으로 태어날 리는 없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더 많은 아이들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그들의 재능과 잠재력은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한 채 사그러든다. 일부 아이들은 부모가 돈이 없어 꿈을 포기하고, 일부 아이들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물론 한국은 장한나 같은 뛰어난 첼로 연주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이다. 그러나 만일 한국이 부모의 재력과 무관하게, 음악적 재능이 있는 모든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였다면 훨씬 더 많은 뛰어난 첼로 연주자들을 배출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묻는다. 부모가 돈이 없으면 자식들의 재능을 박탈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가? 부모에게 재력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 구성원들의 잠재력과 역량을 사장시키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절대다수의 재능과 잠재력을 계발하지 못하고 그 가능성을 봉쇄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불행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승리한 유만수 눈앞에 펼쳐진 인적 없는 공장 작업장
영화의 후반부, 유만수는 결국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일자리를 얻는다. 그러나 그가 들어선 공장의 거대한 작업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든 공정은 기계가 담당하고 있다. 이 장면은 앞으로 다가올 AI시대를 상징적으로 예고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그 결과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노동을 AI나 로봇이 대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이고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AI나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은 인간을 힘든 노동에서 해방시켜주고 인간이 더 창의적인 노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진보 혹은 발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AI혁명의 과실이 극소수의 독점자본가에게 집중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는 극소수의 상층에만 고이게 되고, 절대다수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불평등의 문제만이 아니다. 절대다수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수요가 줄어들어 결국 자본주의 자체가 작동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멸망할 수 있다.
전례없이 높아진 생산력, 사라진 일자리
일찍이 마르크스는 특정한 사회제도가 발전된 생산력에 조응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새로운 사회제도로 교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이 사회제도의 교체로 이어진다는 역사적 유물론의 요지이다.
AI혁명은 인류의 생산력을 전례 없이 끌어올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생산수단 나아가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의 과실을 극소수의 자본가가 독점하는 낡은 사회제도에 기초하고 있다. AI시대의 자본주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AI혁명과 사회제도 사이의 모순이 극대화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존의 사회제도 안에서는 생존 문제를 비롯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영화 속 텅 빈 공장은 바로 그런 미래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극소수는 AI혁명의 과실을 독차지해 슈퍼리치가 되지만 절대다수는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세상에서는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극단적인 개인 경쟁이 벌어지는 현대판 지옥일 뿐이다.
AI시대는 어떤 사회제도를 요구하는가
인류는 어떤 사회제도를 선택해야 할까? 서로를 적으로 대하며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우고 죽이는 끔찍한 사회일까? 아니면 과학기술 발전의 혜택을 모두가 골고루 나누며 화목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사회일까? 후자의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바로 ‘기본사회’다. 국가가 기본적인 소득, 교육, 의료, 주거 등을 보장해주는 기본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생존 공포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고, 서로를 사랑하고 위해주면서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라면 유만수는 일자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착한 사람으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