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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협조 없인 북핵도, 세계핵 도 관리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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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협조를 끌어내지 않는 한 세계와 한반도 핵문제를 관리할 방도가 없다. 평화적, 외교적 해결은 언감생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새삼 러시아의 무게를 확인시키는 게 핵무기 문제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배제된다면 세계와 한반도 핵문제는 막다른 골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1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밀 문건 온라인 유출 의혹에 관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앞서 지난 6일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매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된 기밀 문건이 온라인상에서 유출되면서 국방부가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2023.04.11. EPA 연합뉴스 2일 백악관이 러시아의 대북 정제유 공급 제한 위반을 비난한 것은 그 일단일 뿐이다. 미국의 비난과 러시아의 무시, 또는 상호비방이 무한 반복되면서 타협의 희망이 소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 전쟁에서 비롯됐지만, 전쟁보다 더 근본적인 파국을 예고한다. 연합뉴스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 보좌관은 이날 "러시아가 3월에만 북한에 16만 5000배럴의 정제유를 북한에 공급, 안보리 제재 결의가 규정한 한도를 넘었다"고 밝혔다. 이동 경로는 러시아 연해주 보스토치니~청진이다. 커비 보좌관은 "항구 간 근접성을 감안할 때 러시아는 이러한 수송을 무한정 지속할 수 있다"면서 "북러 간 무기와 정제유 이전을 촉진하는 모든 활동에 맞서 미국은 제재를 부과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비가 언급한 안보리 결의는 2017년 9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시험발사 뒤에 만장일치로 채택한 2397호로 북한이 수입할 수 있는 정제유(경유, 등유 포함)의 연간 한도를 50만 배럴로 묶었다. 올해 들어 러북 간 정제유 이전량이 이미 한도를 넘었다는 게 백악관의 주장이다. 모든 유엔 회원국은 90일 단위로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보고해야 한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연합서비스연구원(RUSI)이 지난 3월 26일 공개한 사진. 백양산1호와 천마산호 등 북한 선박들이 러시아 보스토치니 항구에서 정제유를 선적, 청진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표시하고 있다. RUSI 누리집 백악관의 발표는 영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왕립연합서비스연구원(RUSI)이 지난 3월 26일 발표한 내용에 살을 붙인 것이다. RUSI는 북한 선적 백양산1호와 천마산호 등이 보스토치니 항구에서 정제유를 선적하는 위성사진을 공개하며 러시아의 제재 위반 가능성을 제기했다. 결의 2397호가 금지한 것은 정제유뿐이 아니다. 북한의 식량, 기계류, 전기장비, 토석, 목재도 포함했다. 또 모든 유엔 회원국은 자국 영해 내에서 모든 선박을 압수, 검색, 동결할 수 있다. 그러나 커비가 지적한 대로 보스토치니~청진 간에는 다른 나라의 영해가 포함돼 있지 않기에 사실상 차단할 방안이 없다.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위반 여부를 감시, 보고할 전문가 패널이 종료된 만큼 안보리 차원에서 공신력을 확보할 방안이 없다. 미국과 서방국들이 자체적으로 위반 사례를 조사, 제재를 부과해도 안보리 차원이 아닌 개별 제재가 될 수밖에 없다. 2006년 이후 안보리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채택한 21개의 결의가 죄다 무력화된 것을 의미한다. 모든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의 정신은 '제재를 위한 제재'가 아니다. 북핵 문제의 외교적, 평화적 해결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어떠한 외교적 노력도 진행되지 않았지만, 북한 경제에 전례 없는 불편을 줌으로써 언젠가 대화의 장이 마련될 것이라는 희망의 근거이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비난 속에서도 제재를 해제하지 않아 온 이유다. 러시아와 중국은 우크라 전쟁 전부터 제재의 정신이 실종되고 고통을 주는 장치로만 작용하는 대북 제재 시스템의 개선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중 갈등과 거울 대치 속에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어떠한 수단도, 논의도 사라졌다.   린다 토마스-그림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1일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위 전문가 패널 종료와 관련한 49개국+유럽연합(EU)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토마스-그린필드 대사 왼쪽에서 황준국 대사가 원고를 바라보고 있다. 2024.5.1. 유엔 누리집 동영상 캡처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비난과 규탄, 또는 개별 제재밖에 없다. 전문가 패널이 종료된 1일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발표한 49개국+유럽연합의 비난 성명이나 2일 커비의 비난이 그렇다. 유일한 희망은 결국 미·러의 타협뿐이지만, 우크라 전쟁 이후 미국은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러시아를 배제하는 한편 군비 강화에 전념하고 있다.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가 5일 미국이 추진하는 새로운 대북 제재 감시 메커니즘에 대해 "제2, 제3의 전문가 그루빠(그룹)를 조직한다고 해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체 사멸되는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통렬하게 비난한 이유다. 김 대사는 안보리가 아닌, 조선중앙통신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언론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험권에 놓인 한국은 당사국이면서 미·러 간 대치 속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힘에 의한 평화' 타령을 하고 있다. 역시 당사국인 일본 역시 '미국의 망토' 안에서 되레 동아시아 군사주의 확대에 몰두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러시아 없는 세계'에서는 미·러 간 냉전시대에도 유지했던 전략무기 감축 체계의 효력이 중단된 상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21일 국정연설에서 신전략핵무기감축협정(START2)의 핵심 요소인 미국 측의 러시아 핵시설 사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핵무기 감축 체계가 위기에 처한 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에서 일방 철회한 뒤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INF에 중국이 포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면서 철회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을 포함할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다. 되레 신무기를 개발하면서 중거리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위치한 하와이 캠프 스미스에서 리처드 마를 호주 국방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0.1. 미 국방부 누리집 이후 유일하게 남은 핵무기 감축 체계인 START2는 2026년 2월 5일 종료된다. 우크라 전쟁의 평화적 종결 또는 미·러 간 극적인 화해가 있기 전에는 연장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러시아의 주요 외교적 결정은 여지를 남긴다. 미국이 전략무기감축협정2(SLAT2, 1980년 지미 카터),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 제한(ABM, 2002년 조지 부시)에 이어 INF를 일방 철회한 것과 달리 대화와 타협 가능성을 열어놓는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START2를 폐기하는 대신 핵심 요소를 잠정 중단함으로써 연장 여지를 남긴 것처럼, 지난 3월 28일 '1718 위원회'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뒤 대북 제재 시스템 개선 뒤 임기 연장을 대안으로 내세운 점(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경우 모두 잠정적 결정으로, 미국이 대화와 타협에 나선다면 복원을 논의할 가능성을 남겼다. '공'을 미국 측에 넘긴 셈이다.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의 복원(또는 제재 성격 재규정)이나 START2 연장은 미국이 러시아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가능하다. 러시아를 비난, 규탄하는 데 그친다면 요원한 일이다. 2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회동한 미국과 일본, 호주 3국 국방장관 공동성명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탄도미사일 연쇄 발사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납치자 문제의 즉각 해결과 인권침해 중단도 재차 촉구했다. 미국의 행동 양태는 비슷하다. 이번에도 군비를 더 강화하는 게 유일한 선택지였다. 일본의 반격 능력 도입과 호주의 장거리 타격 능력 투자를 평가했다. 한반도도, 세계도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에앞서 악수하고 있다. 2023.9.13.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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