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도 끝도 없이…중국 기업인들의 불길한 실종사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장차림의 중국 기업인이 흐릿한 불빛속 조사관들 앞에서 심문당하는 모습의 이미지 그림. 이코노미스트 10월 8일
중국의 군사용 첨단 반도체 전문 기업인으로 널리 알려진 과학자이자 기업가 위파신(郁发新)이 지난 9월 22일 부패방지기관에 구속됐다. 지난 8일의 보도(‘중국 기업인들의 불길한 실종’The sinister disppearances of China’s bosses)에 따르면,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그레이트 마이크로웨이브 테크놀로지(진뢰과기[臻镭科技]주식유한공사) 회장인 그의 구속을 중국 언론들도 크게 다뤘다. 위파신은 지금 사법절차 없이 구금되는 ‘류지’(留置 유치)상태에 있다.
중국 최대 검색 사이트 바이두에 실려 있는 저장대 교수 위파신. 일개 대학교수가 무려 31억(위안)이나 되는 자산! 이란 제목이 달려 있다.
법원 승인 없이 구금하고 변호사 도움도 막는 ‘류지’
일반적인 치안유지 활동과 함께 운영되는 류지 제도는 공안 당국이 법원의 승인 없이 범죄 혐의자를 구금할 수 있게 돼 있으며, 구금자들은 변호사의 기본적인 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 상당기간 변호사를 만날 수 없고 가족 면회도 되지 않고 구체적인 혐의내용도 모른다면 구금당한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이나 관계자들도 불안할 것이다. 어쩌면 이 끝모를 불안이야말로 단속자들이 노리는 중요한 부수효과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안이지만, 2023년 6월에 중국 슈퍼 리그의 산둥 타이산 소속이었던 한국인 축구 선수가 현지에서 구속돼 장기 억류당했을 때, 그의 유무죄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사회가 느꼈던 불안감도 중국 류지의 그런 특성 내지 ‘제도적 결함’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끔 일본언론에 등장하는 중국 체류 일본 기업인들이 ‘반간첩죄’ 혐의 등으로 구금당한 사건 뉴스가 전하는 그 가족이나 일본사회가 불안해 하는 모습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절대권력의 영문 모를 인신구속은 공포를 부른다.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한국인들도 경험했다.
24시간 감시 구금 최대 8개월, 연장도 가능
2018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그 5년 전에 시작된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단속 작업의 일환이었다. 2017년 11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18차 대회에서 총서기가 된 시진핑은 2013년 3월 당과 정부, 국가 최고권력자로서의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반부패 캠페인은 그가 권력투쟁에서 승자가 되고 그 자신의 체제를 다지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류지는 당시에는 주로 공산당원과 정부관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기업인들도 자주 그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6월에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단속 요원들은 범죄 혐의자들을 최대 8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고, 새로운 범죄혐의가 발견될(또는 발견됐다고 판단할) 경우 구금기간을 재설정(연장)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무제한 구금해서 심문을 할 수 있다. 구금시설(감방)에는 일반적으로 창문이나 시계가 없고, 항상 불이 켜져 있다. 수감자는 그런 상태에서 24시간 감시당하며,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10월 8일)
기업인들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제도적 결함’
에 따르면, 지금 중국 기업인들이 맞서 싸워야 할 걱정거리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 19 팬데믹에서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경제문제다. 부동산 붕괴와 함께 얼어붙은 소비 심리는 중국정부의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닥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잉생산과 무자비한 경쟁 속에 기업들의 손실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계 엘리트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더 심각한 걱정거리는 류지 같은 중국의 ‘제도적 결함’(institutional shortcomings)이다. 기업 경영진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공식 조사가 늘고 있고, 국내 여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원 판결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잇따랐던 기업 경영인들의 자살 사건은 그로 인한 압박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중앙기율검사위원회(CCDI)에 의해 류지 (구금)당한 사람들 수 추이. 단위:1000묭 이코노미스트 10월 8일
올해 기업인 39명 실종, 비상장 기업은 확인 불가
이런 제도적 결함 속에 올해 중국 상장기업 경영진들이 놀라울 정도(staggering rate)로 사라지고 있다. 가 9월 말까지 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집계한 바에 따르면 류지 등으로 사라진 기업인들 사례는 39건으로, 매주 한 건꼴이었다. 이는 이미 지난해의 최고기록을 넘어선 수치다. 그러나 이렇게 확인된 것은 전체 실종사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기사에 따르면 류지 대상 기업들은 대부분 비상장 기업이고, 그럴 경우 투자자들에게 그들이 투자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실종되더라도 사유를 설명해 줄 의무가 없다.”
올해 접수된 부패사건 100만 건으로 사상최대
중국 중앙기율검사위원회(CCDI)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공무원과 기업인을 포함한 총 구금 건수는 2024년에 약 50% 증가해 약 3만 8천 건이나 됐다. CCDI는 지난해 제약업계에서 6만 명 이상, 금융업계에서 1만 7천 명 이상을 상대로 류지를 포함한 일종의 징계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많은 기업 경영자들이 구금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시진핑 주석의 부패단속이 급속도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홍콩에 본사를 둔 금융건설팅회사 가베칼(Gavekal)은 올해 접수된 부패사건 수가 사상최대인 100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공무원이 조사를 받으면 그의 사업 네트워크 전체가 조사대상이 될 수 있고, 이는 기업과도 연계돼 조사 건수가 급증할 수 있다. 홍콩대의 주장난(朱江南) 부교수는 컴퓨팅 하드웨어와 친환경 기술 등 심회되는 부패방지 수사에 직면한 일부 산업은 조달 및 계약을 통해 지방정부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럴 경우 기업 임원들이 무더기로 연루될 수 있다.
가혹한 구금환경으로 자백 유도, 자산까지 압류
경제성장의 둔화도 구금 사태 증가에 영향을 끼친다. 경제난에 처한 지방정부는 현금이 부족해 많은 지방정부들이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일부 CCDI의 조사는 심해 어업” 탐사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조사관들이 류지의 가혹한 환경이 불법행위를 자백하게 하거나 다른 부유층(비리)을 고발하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구금자들을 고통스런 상태로 두는 것이다. 권력자들의 행태는 세상 어디에서나 비슷한 모양이다.
게다가 중국의 조사관들은 조사대상 기업이나 기업 간부의 자산을 압류할 수도 있다.
올해 체포돼 구금당한 상장기업 임원 39명 중 절반 이상이 본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CCDI에 의해 적발됐는데, 이런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그런 경우는 한 지방정부가 다른 지방정부의 관할 구역에서 자금을 노리고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그 변호사는 익명 처리를 요구했다.)
법원으로부터 높은 소비 제한 명령을 받은 사람들 수 추이. 2025년은 9월 30일까지 집계한 것. 단위:1000명 이코노미스트 10월 8일
기업주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신용 블랙리스트’
기업주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들 중에 ‘신용 블랙리스트’도 악명이 높다. 최근 이 (신용불량)블랙리스트에 중국 최고 부호들 이름이 추가됐는데, 파산법 같은 제도적 보완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중국에서 법원은 채무자에게 채무상환을 압박하기 위해 종종 임시방편을 동원한다. 예컨대 채무자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명단에 올려 망신을 주고 높은 소비”(high consumption)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주들은 비행기나 고속열차를 탈 수 없고, 고급 호텔에 묵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원래 신용 블랙리스트는 소액 채무상환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최근에는 경제난을 겪는 기업인들 다수가 거기에 포함되고 있다. 법원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그런 사람들이 약 20만 명이나 추가됐다. 이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경제적 파탄이 확산되기 전인 2019년 한 해 동안 그 수가 약 1만 7400명이었던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올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의 약 46%는 계약 분쟁 때문이었는데, 이는 사업 관련 활동이 법적 소송으로 이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어쨌든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는 두려움은 매우 현실적이어서, 기업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 수 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산하 중국분석센터의 리지 리는 그것이 기업 심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했다. 지금 시스템은 실패하면 단순히 사업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삶의) 기본적인 기능마저 잃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정부는 지난 2월 시 주석이 중국 대기업 CEO들을 만나 격려하고 성장 촉진을 위한 ‘민간부문 육성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인들의 사기는 개선되지 않았다.
다롄 완다그룹 왕젠린 회장.
잇따르는 기업인들 구금과 자살
9월 28일 중국 최고부자였던 부동산 재벌 완다그룹(万达集团)의 창업자 왕젠린(王健林)이 계약 분쟁으로 채무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것은 하루만에 해제됐지만 주요 재계 인사들마저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위파신의 구금도 비슷한 효과를 냈다. 유명한 고위급 군사 과학자요 기업인조차 류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부패수사 기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자살 사건은 상황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올해 4월과 7월 사이에 적어도 5명의 저명한 기입인들이 고층 빌딩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그 중에서 성공적이었던 백화점 체인 주란지자(居然之家, Easyhome)의 설립자요 CEO였던 왕린펑(汪林朋)의 자살은 특히 큰 충격을 안겼다. 한때 고향 후베이 성에서 가장 부자였던 그는 4월에 류지당한 뒤 7월 말에 석방됐으나 여전히 감시대상이었다. 석방 며칠 뒤 그는 자살했다. 변호사는 그의 자살은 표면에 떠오른”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일 뿐이라며, 아무도 모르는 (유사)사건들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