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가방 신고했다 누명 쓰고 인생 결딴 난 남자 [사람들] 새벽 1시, 배낭 하나
1996년 7월 27일 새벽,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공원. 경비원 리처드 앨런스워스 주얼(Richard Allensworth Jewell, 1962~2007)은 벤치 아래 놓인 낡은 초록색 배낭 하나를 발견한다. 주인 없는 가방, 이상했다. 그는 즉시 신고하고 주변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몇 분 뒤 가방 속 사제폭탄이 터졌다. 한 명이 숨지고 백 명 넘게 다쳤지만, 주얼이 사람들을 미리 대피시킨 덕에 피해는 그나마 그 정도였다. 언론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다. 하지만 박수도 잠깐이었다.
리처드 주얼(위키피디아)
영웅에서 사흘 만에 용의자로
사건 사흘 뒤,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이 이런 헤드라인을 뽑았다.
FBI, 영웅 경비원이 폭탄을 직접 설치했을 가능성 의심
근거는 별것 없었다. 미혼으로 어머니 바바라 주얼(Barbara Jewell, 1937~ )과 함께 살고, 경찰이 되고 싶어 했고, 사건 현장에 너무 빨리 나타났다는 것. 수사기관은 대중의 관심을 받으려고 범행을 조작하는 외로운 영웅심리 단독범 이라는 가상의 틀을 짜두고 주얼을 억지로 끼워 맞췄다. 수사기관이 이렇게 슬쩍 흘린 한마디가 미국 전역의 방송을 타는 순간, 주얼의 삶은 멈췄다. 기자들이 그의 집 앞에 텐트를 쳤다. 법무부장관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 정작 그를 기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06년 7월의 리처드 주얼(Former security guard Richard Jewell dies – The Denver Post)
검찰과 언론이 손을 잡으면
석 달이 흘러 1996년 10월, 검찰은 짧은 편지 한 장으로 주얼이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통보했다. 사과는 아니었다. 현재까지의 증거로 볼 때 라는 단서가 붙은, 면죄부치고는 인색한 문장이었다. 이듬해에야 법무부장관 재닛 리노(Janet Reno, 1938~2016)가 공개 사과를 했다. 일 년 넘게 누명을 쓰고 산 사람에게 뒤늦은 한마디였다.
정작 진범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낙태 반대를 명분으로 여러 차례 폭탄테러를 저지른 에릭 로버트 루돌프(Eric Robert Rudolph, 1966~ )는 한참 뒤인 2003년에야 잡혔고, 2005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검찰과 언론이 합심해서 죄 없는 사람을 10년 가까이 옭아맨 동안, 진짜 범인은 산속에 숨어 있었던 셈이다.
세계사에서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 대위도 마찬가지였다. 군 기밀 유출 혐의로 몰린 그는 증거조작과 반유대주의 여론에 떠밀려 유배형까지 살았다. 진범이 페르디낭 발쟁 에스테라지(Ferdinand Walsin Esterhazy, 1847~1923) 소령으로 밝혀지고 명예를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국가기관이 일단 결론을 정해놓고 증거를 거기에 끼워 맞추는 습성은 시대와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1894년 경의 알프레드 드레퓌스(위키피디아)
명예는 돌아왔지만 몸은 망가졌다
주얼은 끝내 명예를 되찾았다. 여러 방송사와 신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대부분 합의로 끝냈다. 그 돈으로 어머니와 자신의 집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도 보안관보로 계속 일했다. 2006년 올림픽 개최 10주년에는 소니 퍼듀(Sonny Perdue, 1946~ ) 주지사가 그의 공로를 공개적으로 치하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2007년 초 당뇨병 진단을 받았고, 합병증으로 신장까지 나빠지더니 그해 8월 29일, 마흔넷의 나이로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진실은 결국 이겼지만, 그 진실이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이 그의 건강을 다 갉아먹은 뒤였다.
2007년 3월의 퍼듀 주지사(위키피디아)
한국이 곱씹어볼 대목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1960~ )의 계엄을 막아선 군인들이 있었다. 명령에 따르지 않고 국회로 향하는 발걸음을 늦춘 이들, 상황을 외부에 알린 이들. 처음엔 칭송받았지만 곧 누군가는 왜 그 자리에 있었느냐 ,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 는 식의 의심 섞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 위에서 흘린 말 한마디가 그날의 행동을 통째로 의심하게 만드는 구조, 이건 1996년 애틀랜타나 2024년 서울이나 똑같다.
주얼 사건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도 언론과 수사기관이고, 같은 사람을 하루아침에 흉악범 취급하는 것도 그들이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습관, 그리고 당시엔 합리적 의심이었다 는 말로 책임을 피해 가는 뒷마무리까지.
한국사회가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도 바로 이 부분 아닐까. 누가 그날 밤 진짜로 헌법을 지켰는지, 그 판단을 내리는 데 석 달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적어도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인생을 미리 결론지어 망쳐놓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주얼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나는 올림픽 공원 폭파범이 아니다(I am not the Olympic Park bomber).
죽어서도 해명해야 했던 한 남자의 마지막 항변이다.
1996년 10월 28일, 용의자 혐의를 벗은 후 기자회견에서 미소 짓는 리처드 주얼(Richard Jewell | Olympic Park Bombing, Biography, Death & Movie, Book | Britannica)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