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파우치 처럼 쪼그라든 KBS, 정상화될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KBS 이사 5인이 박장범 사장 임명 취소 안건을 이사회에 제출했다. 안건은 오는 29일 정기이사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인 방통위 체제에서 위법 임명한 13기 이사 7명의 업무가 법원 결정으로 정지된 지 1년 6개월 만이다.
이로써 ‘파우치 사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으로 불리는 박 사장에 대한 해임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메인뉴스 앵커 시절에 대통령이던 윤석열과 특집 대담을 하면서 대통령 윤석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받은 명품 가방을 ‘외국회사의 조그마한 백’이라고 해 국민적 지탄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사장 발탁의 발판이 됐다는 비아냥을 산 박 사장의 1년 반간의 사장직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한편으로 박장범 사장 체제에서 공영방송으로서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던 KBS는 정상화의 기회를 맞게 됐다.
이사회에서 임명 제청 취소가 의결되면 의결 결과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통보돼 대통령에 의해 임명 취소 결정이 내려진다. 그러나 임명 취소 안건이 올라가긴 했지만 의결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현재의 이사 구성 분포상 이번에 임명취소 안건을 제출한 여권 이사들의 숫자가 야권 이사들의 숫자에 비해 열세이기 때문이다.
박장범 뉴스9 앵커와 윤석열 대담 화면 캡쳐
현 이사회는 여권 5명, 야권 6명 구도다. 법원이 13기 이사 7명의 임명 효력을 정지하면서 12기 이사 5명이 복귀했고, 12·13기 연임인 서기석·권순범 이사는 이사직을 유지하면서 지금의 구성이 만들어졌다. 안건 의결을 위해서는 야권 이사 중 최소 1명이 찬성에 가담해야 한다.
가능성의 근거로 거론되는 것은 지난 3월 4일 임시이사회의 결과다. 당시 야권의 서기석 이사장이 불신임을 받아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야권이 6명으로 다수임에도 불신임안이 가결됐다는 것은 야권 내에서 이탈표가 나왔다는 의미다. 서 이사장은 2023년 박민 사장 임명과 2024년 박장범 사장 임명을 모두 주도한 인사다. 그의 불신임 때 이탈표가 나온 것처럼 박 사장 임명 취소 안건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임명 취소 안건을 제출한 5인의 이사들은 박장범 사장 임명제청을 의결한 이사 7인의 임명 자체가 무효로 판정됐으므로, 그 이사들이 행한 임명제청 의결도 효력을 잃는다고 주장한다. 2024년 10월 23일 임시이사회는 방통위 이진숙·김태규 2인 상임위원이 추천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 7인만으로 구성됐다. 이 이사회에서 박장범 후보자에 대한 사장 임명제청이 이루어졌고, 같은 해 11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했다. 이후 법원이 해당 이사 7인에 대한 임명 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이들의 의결 행위 전체의 법적 효력이 문제가 됐다. 5인의 이사는 박장범 사장 임명제청은 이사회 재적 인원 11인 중 과반수 찬성이 없는 무효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장범 사장을 둘러싼 논란은 단지 임명 절차의 법적 하자에 그치지 않는다. 애초부터 부적격-반적격자 비판은 물론 12·3 내란 사태 직후 사장직에 취임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처음부터 제기해 왔다.
박장범 한국방송공사 사장후보자가 18일 오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던 중 자료를 살피고 있다. 2024.11.18. 연합뉴스
박장범 사장이 KBS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12·3 내란 사태 발발 일주일 뒤인 2024년 12월 10일이었다. 자신을 사장으로 임명한 내란 수괴 윤석열이 국회에서 탄핵되기 이틀 전이었다. 이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출근 저지에 나선 가운데 박 사장은 조합원들을 피해 새벽 4시에 출근했고, 본관 6층 사장실에 들어간 뒤 오전 내내 나오지 못했다. 박 사장은 취임사에서 지난주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로 민주주의 질서와 헌법 가치는 위협받았다 고 언급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장 임명이 그 위협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은 취임사 어디에도 없었다.
취임 이후에는 권력 편향 보도와 전파 사유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12·3 불법 비상계엄 당일 계엄 생방송 논란의 당사자로도 지목됐다. 12·3 내란 당일 KBS의 보도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모든 언론사가 국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할 때 KBS는 대통령 담화를 반복 방영하거나 스튜디오 해설로 시간을 채웠고, 스포츠 중계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비상계엄 선포 약 2시간 전 보도국장이 대통령실로부터 계엄방송을 준비하라 는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KBS 라디오 전격시사 진행자 고성국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12·3 내란 사태에 대해 비상계엄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법률을 위반한 것도 없고 헌법을 위반한 것은 더구나 없다 고 주장하는 등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사내 최대 노동조합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박장범 사장에 대해93.7%의 불신임이 나왔다. 이미 사내에서 해임 판단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29일 이사회에서 그 같은 압도적 불신임 판정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그렇게 된다면 박장범 사장 체제에서 ‘조그마하게’ 쪼그라든 KBS가 국가기간 공영방송으로서의 면모를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