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장인 감독의 귀환, ‘베를린’에서 ‘블라지’까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여전히 한국의 액션 키드로 불리는 감독 류승완의 신작 에 관한 한 입장은 두 가지로 갈린다. 그의 액션 감각이 여전히 출중한지, 다소 퇴색했는지 ‘따위’가 아니다. 류승완의 액션 연출은 이제 한 경지를 넘어서고 있는 느낌이다. 류승완 자신이 540도 발차기를 한다. 영화 에 직접 출연해 연기하던 도중 십자인대를 다친 이후에는 540도 회전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고 나이가 많아져서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가 머릿속에서 생각해 내는 액션의 디자인만큼은 너무도 출중해서 이제 확고한 그의 브랜드가 됐다. 류승완은 한때 존 르 카레 원작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같은 작품들을 영화화한 작가주의 감독이 되고 싶어 했으나 이제는 명백히 한국의 마이클 만이 되어 가는 상태이다. 마이클 만은 그 유명한 를 찍은 할리우드 명장이다. 마이클 만이나 류승완이나 다 어깨로 전해지는 격발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감독들이다.
는 에서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한 것일까?
에 대한 호불호는 이것이다. 13년 전의 전작 을 본 세대인가 아니면 그 전설의 작품을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인가. 전자라면 다소 실망할 것이다. 후자라면 열광할 것이다. 류승완은 으로 인한 엇갈린 반응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건 의도된 것일까? 일부 저널과의 인터뷰를 보면 발 반응은 아마도 사전에 계획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옳았던 것일까? 아니면 패착일까? 그 의도는 결과적으로 흥행적으로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는 의 속편 혹은 2편으로 기획됐을 것이다. 속편 혹은 2편 더 나아가 시리즈 3편, 4편의 핵심은 진화이다.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컨대 폴 그린그래스의 역작 ‘제이슨 본’ 시리즈 3편은 적어도 그랬다. 이다. 이 시리즈는 4편인 이후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는데 4편에서 마침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동어반복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에 대해 못내 불만인 점을 말한다면 바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서사 구조 때문이다. 분명하게 반복해서 강조하자면 ‘서사 자체’에 있다, 가 아니라 ‘서사 구조’에 있다는 점이다. 의 이야기가 (2013)의 다음인 건 맞다. 의 표종성(하정우)은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의 영웅으로 독일 베를린에 파견돼있는 첩보요원이었지만 김정일-김정은 정권 이양기에 벌어진 권력다툼, 실세들의 비(秘)자금 쟁탈전에 끼여 사랑하는 아내 련정희(전지현)를 잃는다. 표종성이 자신의 조국을 상대로, 무엇보다 간악한 보위성 간부이자 후배인 동명수(류승범)에 맞서 분투하는 과정을 남한 요원 정진수(한석규)가 돕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진수는 표종성을 남한으로 전향시키려 하다가 그의 탈출을 방조한다. 표종성은 베를린 중앙역에서 표를 산다. ‘블라디보스토크. 원웨이’가 영화 의 마지막 대사였다.
블라지에서 벌어지는 남북한 ‘센 놈들’ 간의 혈투
영화 는 러시아식 발음대로 블라지바스또끄, 혹은 ‘블라지’에서 벌어지는 활극을 그린다. 표종성은 차가운 블라지의 얼음 밑에 수장됐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북한 대사 황치성(박해준)은 이곳으로 막 파견 나온 보위성 요원 박건(박정민)에게 자신의 치적 아닌 치적을 자랑한다. 베를린에서 말야. 공화국 영웅이었던 표종성이 있었디. 근데 이 자가 말이디. 아내가 남조선으로 망명하려다 발각되자 함께 도망쳤었어. 그 과정에서 애미나이가 죽었거던. 그래서 눈깔이 뒤집혀선 공화국에 복수하겠다고 유럽부터 치고 올라 온 거야. 센 놈이었디. 그러나 뭐 어쩌갔어. 지금은 여기 차가운 물 밑에 있어.” 보위성 조사 요원 박건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빙두(얼음 마약) 거래와 여성 인신매매 건을 수사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는 이 사건의 배후에 황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한의 국정원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애초 동남아를 거점으로 삼고 북한 출신 정보원=휴민트를 이용해 광범위한 첩보 활동을 벌이는 인물이다. 그의 휴민트 중 한 명이 김리화(김홍경)이다. 그녀는 베트남의 집창촌에서 비참한 생활을 해 오다 살해당한다. 조 과장의 원래 목적은 북한산 마약 빙두의 유통망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 과장은 김리화가 살해당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마피아와 북한이 연계된 인신매매 시장의 실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거점이 블라디보스토크임을 알게 되고 현장으로 파견된다. 황치성 – 박건 – 조 과장의 접점은 그렇게 마련된다.
그 사이에 박건의 전 약혼자 채선화(신세경)가 끼어 있다. 그녀는 평양음악대학 출신이지만 외화벌이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와 당이 운영하는 식당 ‘아리랑’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아간다. 그녀는 식당 매니저(박명신)의 허락 하에 러시아 재계인사 세르게이(피어스 콘란)를 상대로 에스코트 활동(성접대)도 한다. 그녀의 진짜 외화벌이는 여기에 있다. 돈을 모으는 이유는 북에 있는 엄마의 암 치료를 위한 것이다. 조 과장은 그런 그녀를 휴민트로 포섭한다. 황치성은 채선화를 러시아 마피아 알렉세이(로베르트 마서) 파에게 팔아넘긴다. 박건은 자신의 옛 여자를 구하기 위해, 조 과장은 자신의 휴민트를 구하기 위해 알렉세이와 황치성을 상대로 혈투를 벌인다. 다들 진짜 ‘센 놈’이다.
강고한 이데올로기도 사랑으로 녹여내는 ‘류승완 월드’
이야기는 진전됐다. 그러나 에 불만인 사람들은 이 이야기 구조가 과 너무 똑같다는 점을 지적한다. 북한 대사관을 배경으로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비리가 깔린 상태에서 최정예 보위성 요원과 남한의 베테랑 첩보원이 맞붙고, 무엇보다 짙은 로맨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인물 구도의 마름모꼴, 사각의 꼭짓점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영화 에서 련정희는 표종성의 품 안에서 죽어 가면서 말한다. 당신 마음 다 압네다.” 련정희는 표종성의 등을 마지막으로 힘겹게 안는다. 에서 보위성의 전설 박건은 북한으로 압송되는 채선화를 돌려세우며 말한다. 이번에는 절대 실망시키지 않갔어.”
언제부턴가 류승완은 신파 멜로 액션에 치중한다. 에서 남자는 여자를 위해 싸우고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다 희생당한다. 류승완의 첩보 액션은 상당히 할리우드적이다. 멜로가 짙게 배어 있다. 그가 만드는 액션영화, 곧 ‘류승완 월드’의 주제는 결국 사랑이다. 북한식의 강고한 이데올로기도 사랑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남한식의 국가관도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남한식 인간주의는 오히려 냉혹한 블랙요원의 마음도 움직인다. 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의 행동 동기는 역설적으로 조 과장이다. 조 과장은 왜 그렇게도 자신의 휴민트를 구하려 애쓰는가. 조 과장의 직속상관(장현성)은 말한다. ‘일하면서 정보원을 잃는 게 어디 한두 번이야? 우리가 어디 적응하면서 일해? 일하면서 적응하는 거지. 왜 이래?”
영화 는 이라는 걸작을 만든 액션 장인이, 다소 안이하게 만든 속편이다. 흥행을 노린 영리한 선택이지만 여자를 둘러싼 멜로와 상호 반목의 서사 구조를 똑같이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 모두 류승완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 마음 잘 압네다.” 그러면 류승완은 또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이번에(도) 당신(들)을 실망시키지 않갔어.” 영화 는 그렇게, 지지와 실망 사이를 오 간다.
즐기면서 만든 영화 같은데 대중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러-우 전쟁(2022년 발발)이 한참 격화된 2024년 10월에 촬영이 시작된 터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프로덕션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촬영은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이루어졌다. 요즘의 라트비아는 세계 영화계 현지 촬영 유치에 힘을 쏟고 있으며 나홍진의 도 여기서 진행됐다. 감독 류승완의 이번 성과 중 하나로 눈부신 것은 ‘헌팅’이다. 그는 라트비아에 6개월을 오가며 도심 거리, 항구, 폐쇄된 공항 등을 적극 활용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조차 마치 ‘블라디보스토크’를 연상케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류승완은 전작인 를 만들 즈음, 자신 역시 이제는 영화를 즐기면서 만들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이제 너무 깊은 생각에 잠기고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짜느라 고통받지 않으면서 액션 키드 출신답게, 그리고 상업영화 감독답게 적당한 흥행력을 뒷받침으로 자신과 대중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류승완은 이미 과 로 정점을 찍었다. 이번 가 다소 의 동어반복처럼 느껴지긴 해도 젊은 세대 관객들은 크게 만족할 것이다. 11일 전국 개봉 후 13일까지 이틀간 21만 명 정도를 모았다. 설 연휴 관객몰이를 할 것이다. 류승완은 액션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