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언론의 날 제정해 언론 개혁 불씨 지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이 길을 잃다 못해 민주주의의 걸림돌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당시 언론은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자 헌정 수호의 주춧돌이 돼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균형 보도’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었습니다. 내란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을 대등한 갈등 당사자로 취급하며 사실상 내란을 방조하고 동조했습니다. 사실과 거짓에 기계적 등가성을 부여하는 ‘가짜 중립’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방관적 공범 행위입니다.
뉴욕타임스·아사히신문과 너무 다른 전쟁 보도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보도는 한국 언론의 이러한 퇴행적 민낯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전쟁은 생명과 인간성의 파괴를 수반하는 비극이 본질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다수 언론은 이를 마치 게임이나 전쟁영화처럼 소비했습니다. 공영방송 KBS는 이란 공습 중 추락한 미군의 구출 작전을 인공지능으로 가공해 전쟁영화처럼 다뤘고, 조선일보는 식의 영웅 서사로 본질을 흐렸습니다. 전쟁의 참상은 온데간데없고, 미군은 한 병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쓴다는 미담만 두드러졌습니다.
KBS 화면 캡쳐
한국 언론이 전쟁을 기술적 화려함과 영웅 서사로 소비할 때, 미국과 일본의 주요 언론은 트럼프가 전쟁을 결정하는 과정의 불투명성과 그런 통치자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준엄한 경고를 보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4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습 결정 과정을 심층 취재해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를 감언이설로 꼬드기고 백악관 참모들이 눈치만 보는 사이, 트럼프가 자기 직감만 믿고 공습을 단행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독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공습의 배경과 진상을 파헤친 탐사 저널리즘의 진수라는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아사히신문은 미국의 이란 공습 초기인 3월 2일, 1면에 국제법을 무시한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한 폭거’라는 요지로 트럼프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논설 칼럼을 실었습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권력 감시에 충실한 자세였습니다.
SBS 노조가 보여준 한국 언론의 역주행
오래전부터 ‘기레기’, ‘재래식 언론’이라는 조롱을 들어온 한국 언론이 갑자기 뉴욕타임스나 아사히신문처럼 분발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왜 그런 비아냥을 받는지 성찰하고 반성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아직 그럴 태세조차 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근 SBS 노조의 태도가 그 단적인 사례입니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8년, 이재명 대통령과 조폭의 연루설을 영화 장면과 교차 편집해 대중에게 강한 부정적 인상을 심었습니다. 국민의힘은 그 방송을 빌미로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조폭으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은 것처럼 공격했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그 주장이 허위이며 대선 결과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재명 조폴 연루설’의 발원지가 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조폭과 권력 방송 화면
이에 이 대통령이 사회연결망(SNS)에 ‘그것이 알고 싶다’로부터 사과의 말을 듣고 싶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누구보다 진실 보도를 옹호해야 할 SBS 노조가 상식 밖의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오히려 해당 방송이 권력 감시였다”고 옹호하고, 이 대통령의 요구를 ‘언론 길들이기’라고 비판했습니다. 오보와 왜곡에 대한 책임조차 ‘언론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어 성역화하려는 태도는, 자신을 무소불위의 특권기관으로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SBS 노조의 태도가 그들만의 인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데 한국 언론의 더 큰 심각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언론 현업단체인 한국기자협회는 이 중요한 논란에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고,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추후 보도와 언론윤리에 관한 언론노조의 입장”이라는 뜨뜻미지근한 제목의 양비론 성명을 내는 데 그쳤습니다. 침묵이라는 이름의 동조이자 직무 유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언론계 스스로 못하면 시민이 나설 수밖에
무너진 한국 언론을 바로 세우는 길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즉 진실 보도·공정 보도·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언론계 내부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외부에서라도 그 힘을 불어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 동아투위·조선투위 소속 원로 언론인들이 생전의 마지막 과제로 ‘자유언론의 날’ 제정 운동에 나섰습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의 폭압이 한창이던 50여 년 전, 해고를 불사하고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한 ‘자유언론 실천 선언’을 발표했던 날인 1974년 10월 24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는 것입니다.
1975년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자유언론 수호 결의를 하는 모습. 사진 동아투위 제공
현재 200개가 넘는 법정 국가기념일 중에 체육의 날, 문화의 날은 있어도 민주주의의 공기인 언론을 기념하는 날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언론의 공적 가치에 관해 한 번도 국가적 차원에서 성찰한 적이 없다는 방증입니다.
‘자유언론의 날’ 제정으로 언론 개혁의 불씨를
청원에 나선 언론·사회 단체들은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자유”라면서, 정부가 10월 24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언론자유를 위해 싸워온 수많은 언론인을 기억하고 그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 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촛불과 응원봉 혁명으로 탄생한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는 이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론자유야말로 국민주권을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10월 24일을 자유언론의 날로 지정하는 것은, 한국 언론이 나아갈 푯대를 세우는 일이자 못다 한 언론 개혁의 추동력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51년 전 동아일보에서 자유언론 실천 선언을 했던 원로 언론인들이 14일 프레스센터에서 동아투위 조선투위 부당해고 헌법소원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언론이 스스로 자정하고 교정할 능력을 잃었을 때, 언론 개혁의 추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뿐입니다. 청원 마감은 4월 22일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청원 24 사이트(https://www.cheongwon.go.kr/portal)에서 회원등록 후 자유언론 을 검색해 소중한 의견을 보태 주십시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만이 권력과 자본, 그리고 기계적 중립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언론을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반세기 전 원로 언론인들이 모든 것을 걸고 밝혔던 자유언론의 횃불을 이제 깨어 있는 시민이 다시 높이 들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