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법정다툼 끝 고문 기술자 송환 판결 받아낸 칠레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권운동가들은 몇 년 동안 피노체트 독재 시절 비밀경찰의 고문기술자로 악행을 저지른 아드리아노 리바스의 본국 송환을 요구해 왔다. 이들의 손에 들린 포스터는 나치는 추방돼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아드리아노 리바스 사례는 왜 다른가? 묻고 있다. Alamy BBC 홈페이지 갈무리
칠레 여성 아드리아나 리바스(72)는 1978년 호주로 이주, 시드니의 유명한 본다이 해변 근처에서 보모와 청소원 일을 하며 살았다. 평범한 것처럼 보이던 그녀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가족과 친척을 만나러 갔던 고국 방문 중 체포되면서였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군사 통치하던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칠레의 악명 높은 비밀경찰 수장 마누엘 콘트레라스의 개인 비서로 일했던 그녀의 과거가 뒤늦게 드러났다. 나중에 그녀는 아예 고문기술자로 변신, 반체제 인사들의 납치와 고문에 관여했다는 것이 그녀의 송환을 요구한 인권운동가들의 주장이다.
리바스는 곡절 끝에 보석을 받고 풀려났는데 달아나 호주로 돌아왔다. 칠레 당국은 계속 호주 정부에 송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2014년 그녀의 송환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적어도 일곱 명의 공산당 당원들을 납치해 끔찍한 고문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 리바스는 2021년 호주 법원의 송환 명령이 떨어지자 항소했다. 그 뒤 5년 동안 끈질긴 법정 다툼을 벌였으나 전날 연방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고 영국 BBC가 7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녀의 변호인단은 칠레의 인도 요청이 법적인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치 전범 처벌하듯 끝까지 추적해엄벌을 받게 하겠다 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될 법하다.
호주 언론에 따르면 리바스는 연방법원 전원합의체에 다시 항소를 시도할 수 있는데 항소 사유를 충족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BBC는 전했다. 항소하는 데 실패한다면, 리바스는 고국 칠레로 송환돼 가중 납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피노체트 정권에 희생된 가족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뻐한다 고 전했다.
1973년 9월 11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철모를 쓰고 소총을 든 채 대통령궁을 지키던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한 피노체트 장군의 군사독재는 그 해부터 1990년까지 4만 명 이상을 정치적으로 박해했고, 이 과정에 3000명 넘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피노체트 독재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비밀경찰 조직인 국가정보국(DINA)를 창설했는데 수장으로 임명된 인물이 바로 콘트레라스였다. DINA 요원들은 암울했던 시절 한국의 안전기획부처럼 수천 명을 납치, 고문, 살해했다. 나중에 마찬가지로 잔혹했던 군 정보대대인 CNI로 대체됐다. 콘트레라스는 인권 침해로 500년이 넘는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5년에 86년 삶을 접었다.
호주 SBS 방송 인터뷰를 통해 내 인생 최고의 시간 이라고 밝혔던 피노체트 치하 비밀경찰 수장의 비서로 일하던 때의 아드리아노 리바스. 스토리보드 미디어 BBC 홈페이지 갈무리
리바스는 2013년 호주 방송국 SBS 인터뷰를 통해 DINA에서의 시간을 내 인생 최고의 시간 이라고 표현했다. 고급 옷을 사라고 용돈을 챙겨주기도 했고, 화려한 무도회에 초대받았으며 고급 자동차와 호텔 여행을 즐겼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DINA 요원들이 자행한 고문에 대해 묻자 그녀는 그들은 사람들을 무너뜨려야 했다. 칠레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 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러나 칠레 검찰은 리바스가 1976년 칠레 공산당 사무총장 빅토르 디아스를 비롯해 모두 일곱 명의 실종에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일곱 명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이는 임신 중이었던 스물아홉 살의 레이날다 델 카르멘 페레이라 플라자였다. 이들은 모두 어딘가로 끌려가 구금 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칠레가 인도를 요청하며 호주 법원에 제출한 문서를 보면 리바스는 경비와 다른 작전 임무를 수행하면서 피해자들을 구금하는 데 가담했다 고 적시돼 있다. 목격자들은 리바스의 조카이며 다큐멘터리 감독인 리셋 오로스코와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DINA의 가장 잔인한 고문관 중 한 명이었으며, 칠레 지하 공산당 지도부를 암살하는 임무를 맡은 엘리트 라우타로 여단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바스는 고문하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오로스코는 5년 동안 이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201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됐다고 전했는데 제목을 알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