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바클레이스·ING, 제각각 계산법…은행권 흔드는 ‘기후 충당금’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 주요 은행들이 기후 리스크의 대손충당금 반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HSBC 런던 본사에 모였다. / 출처 = Unsplash
기후 리스크가 은행권 충당금 체계를 흔들기 시작했다.
1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HSBC(LSE: HSBA) 런던 카나리워프 본사에서 바클레이스(LSE: BARC), 산탄데르(NYSE: SAN), NatWest(LSE: NWG), 로이즈(LSE: LLOY) 등 영국 주요 은행의 회계·리스크 전문가들이 참여한 비공개 회동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기후 리스크가 이제 회계와 자본건전성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의미다.
감독당국 기후 리스크, 충당금에 더 직접 반영해야”
이번 회동 배경에는 영국 건전성감독청(PRA)의 압박이 있다. PRA는 지난해 9월 일부 규제 대상 예금취급기관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 보낸 IFRS 9(국제회계기준 금융상품 회계 기준) 예상신용손실(ECL)·기후리스크 회계 피드백 서한에서 일부 은행이 기후 리스크를 ECL 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CL은 미래 경기 전망과 부실 가능성까지 반영해 대손충당금을 미리 적립하는 IFRS 9 기반 회계 체계다. PRA는 특히 기후변화에 취약한 차주·산업군을 식별하는 역량과 기후 리스크를 회계 모델에 반영하는 체계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영국 은행·보험업권은 다음 달까지 지난해 강화된 기후 리스크 감독 기준 준수 여부를 자체 점검해 제출해야 한다.
이번 회의에는 투자자들과 잉글랜드·웨일스 공인회계사협회(ICAEW)도 참석했다. ICAEW는 참석 사실만 확인하고 추가 언급은 하지 않았다. 회동은 HSBC 주주총회를 앞두고 열렸다. HSBC는 최근 화석연료 기업 금융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면서 투자자 반발을 받아왔다.
홍수·산불·해수면 상승 같은 물리적 충격이 가계·기업 대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는 중앙은행권에서 수년째 반복돼 왔다. 최근 들어서는 감독당국이 이를 단순 기후 리스크가 아니라 실제 충당금과 자본건전성 문제로 연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다.
NatWest·바클레이스 영향 제한적”…ING는 추가 충당금 적립
은행별 대응은 크게 엇갈렸다. NatWest는 물리적·전환 리스크를 ECL 산정 체계에 제한적으로만 반영하고 있으며, 기후변화가 현재로서는 재무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클레이스도 2024년 연차보고서에서 기후 리스크를 재무 계획에 통합 검토했지만 현 시점에서 실질적 수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독립 감사인 KPMG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중대한 재무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HSBC는 올해 기후 관련 대출 손상이 5000만달러(약 730억원) 미만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당 수치는 감사 재무제표 밖에서 별도로 공개됐다. HSBC는 3년 연속 단기·중기 기준에서 기후변화의 중대한 재무 영향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네덜란드 ING는 국제회계기준(IFRS 9)이 기후변화의 ‘새로운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뒤 4700만유로(약 830억원)를 경영진 재량으로 추가 적립했다.
같은 IFRS 9 체계 아래에서도 은행별 충당금 판단은 극명하게 갈렸다
투자자 기후는 핵심 리스크라면서 재무제표엔 빠져 있다”
투자자들은 은행권의 이런 접근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사라신앤파트너스(Sarasin & Partners), 덴마크 아카데미커펜션(AkademikerPension), 영국 직장연금 넷(NEST) 등 복수의 기관투자자들은 영국 금융보고위원회(FRC)에 서한을 보내 HSBC의 회계 처리와 감사법인 PwC의 감사 결과를 함께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라신은 서한에서 HSBC가 기후변화를 ‘핵심 리스크’로 분류하면서도 재무제표에는 사실상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두 입장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HSBC 대출 포트폴리오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부동산 담보 대출이 지구 평균기온 4도 상승 시나리오에서도 최소 손실”에 그친다는 내부 평가에 대해 신중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회의 참석자 가운데 한 명도 FT에 투자자들이 인식하는 기후 리스크 수준과 은행 손실모형 사이에 뚜렷한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최근 같은 문제의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ECB 집행이사 프랑크 엘더슨은 최근 발표한 기후·자연 리스크 관리 모범사례 지침 에서 물리적 리스크와 자연 관련 리스크 측정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은행들이 이를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