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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천국까지, 700년 전 단테가 보고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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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시인, 펜으로 복수하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 이 중세 이탈리아 시인은 평생을 정치 난민 으로 살다 갔다. 고향 피렌체에서 쫓겨나 20년 가까이 타향을 떠돌다 객사한 그가 어쩌다 서양문학사에서 호메로스(기원 전 8세기경)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이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는 자신을 추방한 권력자들을 지옥 에 처넣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디테일하게, 층층이 나눠진 지옥의 각 단계에 정확히 배치하면서 말이다.  자신을 괴롭힌 상사를 소설 속 악역으로 등장시켜 혼쭐 내는 격이랄까. 단, 그 소설이 700년이 지나도록 읽히는 고전이 됐다는 게 차이점이지만.   산드로 보티첼리가 1495년에 그린 단테 초상화 (위키피디아) 신곡 , 중세판 고발 프로그램 단테의 대표작 신곡 (La Divina Commedia, 1308~1320년 집필)은 제목부터 재미있다. 신성한 희극 이라니. 당시 기준으로 희극 은 해피엔드 이야기를 뜻했다. 지옥에서 시작해 연옥을 거쳐 천국에 도달하니 확실히 그렇다. 3부작인 이 작품에서 단테는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기원 전 70~기원 전 19)를 안내자로 삼아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고, 젊은 시절 사랑했던 베아트리체(Beatrice Portinari, 1266~1290)의 안내로 천국에 오른다. 특히 지옥 편은 가히 중세판 고발 프로그램 이다. 아홉 층으로 나뉜 지옥의 각 단계에는 각기 다른 죄인들이 그에 걸맞은 벌을 받는다. 탐욕스러운 성직자들, 부패한 정치인들, 배신자들… 단테는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을 지옥에 집어넣었다. 요즘 같으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했을 법하지만, 다행히(?) 중세에는 그런 게 없었다.   피렌체에 있는 단테의 집 박물관 (위키피디아) 라틴어 대신 사투리로 쓴 혁명 단테의 진짜 혁신은 따로 있다. 당시 모든 제대로 된 문학 작품은 라틴어로 쓰였다. 하지만 단테는 과감히 토스카나 방언, 즉 고향 사투리로 신곡 을 집필했다. 조선 시대에 양반들이 한문으로 글을 쓸 때, 누군가 한글로 대하소설을 써서 대박을 낸 것과 비슷하다. 허균(1569~1618)이 홍길동전 을 한글로 쓴 것과 한 맥락이다. 단테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이탈리아어를 하나의 문학어 로 격상시켰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와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문학의 황금기는 단테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꽃피웠다.   피렌체의 바르젤로 궁전 예배당에 있는 조토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단테 초상화. 이 그림은 1335년경 그려졌으며 복원되었다. (위키피디아) 정치인 단테, 너무 정직해서 망하다 단테는 시인이기 전에 정치인이었다. 피렌체 공화국의 집정관까지 지낸 그는 교황청의 간섭을 거부하는 백당파 에 속해 있었다. 문제는 그가 너무 원칙주의자였다는 것. 교황 보니파치오 8세(Bonifatius VIII, 재위 1294~1303)의 정치 개입에 맞서다가 결국 1302년, 서른일곱 나이에 추방령을 받는다. 죄목은 부패와 정치적 음모.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다. 게다가 피렌체로 돌아오면 화형에 처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 야당 정치인이 정권의 눈밖에 나 망명을 떠난 격이다.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겪었던 상황과 묘하게 겹친다.   피렌체의 우피치에 있는 단테의 벽화,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1450년 경 (위키피디아) 추방이 만든 걸작 아이러니하게도 이 추방 경험이 신곡 을 탄생시켰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떠돌던 단테는 분노와 슬픔, 그리움을 글로 승화시켰다. 지옥에 처넣은 정적들은 대부분 자신을 추방시킨 흑당파 인사들이었고, 천국에 올린 이들은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들이었다. 신곡  지옥 편에서 단테는 피렌체를 향해 네 이름이 지옥과 땅과 바다에 퍼져 있구나! 라고 외친다. 조국을 사랑하면서도 그 부패에 절망하는 지식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헨리 홀리데이가 새로운 삶 (La Vita Nuova)에 영감을 받아 그린 단테와 베아트리체 (1883년) (위키피디아) 단테가 한국에 주는 메시지 700년 전 이탈리아 시인이 오늘날 한국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첫째, 부패한 권력에 대한 기록의 중요성. 단테는 자신을 탄압한 권력자들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그들의 죄악을 문학 작품에 영원히 새겨 넣었다. 한홍구 교수의 ‘반헌법행위자열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기록한 이들, 세월호 참사(2014)의 진상을 밝히려는 이들이 하는 일이 바로 단테가 했던 일이다. 둘째, 모국어로 글쓰기의 힘. 단테가 라틴어 대신 이탈리아어를 택한 것처럼, 한국도 한글로 된 문학과 학문이 꽃피우면서 진정한 문화 독립을 이뤘다. 세종대왕(1397~1450)이 한글을 창제하고, 주시경(1876~1914)이 한글 문법을 정리한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한글로 생각하고 꿈꾼다. 셋째, 추방당한 자의 저항. 단테는 피렌체를 떠났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독재정권에 쫓겨난 수많은 지식인이 글과 예술로 저항했다. 함석헌(1901~1989)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 신영복(1941~2016)의 감옥 편지, 황석영(1943~ )의 소설들이 그 예다.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단테 동상 (위키피디아) 지금 한국이 단테에게 배울 점 한국 사회는 진영 논리와 증오의 정치로 갈라져 있다. 단테가 살던 피렌체도 백당과 흑당으로 나뉘어 서로를 증오했다. 그 결과는? 도시의 분열과 수많은 인재들의 추방이었다. 단테는 신곡 에서 지옥의 가장 깊은 곳, 제9옥에 배신자들 을 배치했다. 특히 가족과 조국을 배신한 자들에게 가장 무거운 벌을 내렸다. 오늘날 한국에서 공익을 팔아 사익을 챙기는 이들, 국민을 배신하고 권력에 빌붙는 이들을 보면 단테가 지옥의 어느 층에 배치할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신곡 의 진짜 메시지는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있다. 단테는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연옥 편의 마지막 구절, 별들을 다시 보기 위해 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정신의 승리를 상징한다. 함석헌이 독재 시절 감옥에서도 씨알의 소리 를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피렌체 산타 크로체 광장의 단테 동상, 엔리코 파치, 1865년 (위키피디아) 살아서는 추방, 죽어서는 기념 단테는 끝내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했다. 1321년 9월 14일, 객지인 라벤나에서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병으로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피렌체 정부는 여러 차례 그의 유해 반환을 요구했지만, 라벤나 시민들은 살아서는 받아주지 않더니 죽어서 데려가려 하느냐 며 거부했다. 지금도 단테의 무덤은 라벤나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피렌체는 이후 단테를 도시 최고의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거대한 동상을 세우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광장을 만들었다. 살아서는 추방하고 죽어서는 기념하는 이 이중성이야말로 권력의 위선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베로나의 단테, 안토니오 코티, 1879년 (위키피디아) 펜은 칼보다 강하다 단테는 증명했다. 권력은 일시적이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것을. 그를 추방한 정치인들의 이름은 신곡  지옥의 죄인으로만 기억되지만, 단테 스스로는 시인들의 시인 으로 불리며 7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숨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박정희(1917~1979), 전두환(1931~2021) 같은 독재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지만, 그들에 저항한 김수영(1921~1968), 신동엽(1930~1969) 같은 시인들의 작품은 영원히 빛난다. 결국 단테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이것이다. 정의는 언젠가 승리한다. 비록 당대에는 아니더라도, 역사가 기억하고 후세가 평가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남기는 것, 진실을 말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과 언론의 소명이라는 것. 지옥에서 천국까지, 단테의 여정은 계속된다. 한국에서도, 세계 어디에서든.   단테 알리기에리, 오르비에토 대성당 산 브리치오 예배당에 있는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의 프레스코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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