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둥글게~ 즉흥의 만다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임미성 재즈가수
언어 이전에 춤이 있었다. 고고학에 따르면 언어를 사용하기 전 인간은 신체 언어 ‘몸짓’을 통해 의사를 소통했다고 한다. 공동체의 관계는 언어가 아닌 춤으로 시작되었으며 리듬감있는 몸의 움직임은 의식을 치르기 위한 춤, 사냥을 하기 위해 동물의 움직임을 모방한 춤, 구애를 하기 위한 춤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원시 음악은 춤과 분리되지 않고, 의식의 도구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인간의 초기 문화는 춤-의식-공동체가 결합된 형태로 발달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음악학자 쿠르트 작스의 서술처럼 음악, 춤, 연극이 하나의 ‘몸짓 예술’이었던 것이다.
30년대 춤과 음악으로 히틀러에 저항한 ‘스윙 유겐트’
원시 사회에서의 춤은 개인의 자유를 표현하는 핵심적인 언어였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눈부신 언어의 세계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시대에 저항하기 위해 ‘언어’ 대신 ‘춤과 음악’을 선택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윙 댄스(Swing Dance)’다. 1920년에서 30년대까지 스윙재즈(Swing Jazz)가 유행하면서 스윙 댄스가 발전했는데 이는 흑인 차별이라는 사회적 억압 속에서 흑인들이 자유의 표현을 분출한 공간(할렘의 아폴로 극장 등)을 찾기 위해 춘 춤이었다. 리듬의 해방과 즉흥성,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춤인 린디 합(Lindy Hop), 찰스턴(Charleston), 발보아(Balboa)는 모두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었다.
1930년대 초까지 베를린에서는 재즈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나 나치당이 들어서면서부터 ‘퇴폐적인 음악’이라는 구실을 붙여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그리고 이들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 재즈 뮤지션들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화 스윙 키즈 한 장면
그러나 스윙 댄스에 심취한 독일의 중산층 청소년들은 서로를 스윙 유겐트(Swing-Jugend;스윙을 좋아하는 젊은이들)라고 부르며 낮에는 나치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밤이 되면 은밀히 클럽에 모여 LP판을 틀고 스윙 댄스를 추었다. 남학생들은 영국식 정장, 롱헤어에 중절모 등을, 그리고 여학생들은 짧은 치마에 웨이브 머리, 진한 립스틱을 발랐다. 모두 금지된 스타일이었으나 1941년에서 1년동안 대대적인 검거가 있기 전까지 이들은 그들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스윙 댄스를 멈추지 않았다. 나치당은 스윙 유겐트를 ‘완전히 근절해야 할 악’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거나 강제노동을 시켰다. 스윙을 춰라, 행진하지 마라.” 우리는 살 수 있는 한 살아가고 싶다. 그것도 음악과 함께 자유롭게.” 지금 이 리듬을 즐기는 나는 히틀러의 미래에 속하지 않는다.” 등의 수많은 외침은 춤이라는 자유를 박해당한 그들의 슬로건이자 선언이었다. 스윙 유겐트는 토드 필드 감독의 (1993)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윙 유겐트의 격렬한 스탭이 퍼트린 세계적 유대감
이렇게 스윙 댄스가 독일 청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던 것은 그들의 춤이 보다 더 근원적인 인간의 삶, 몸의 고통, 공동체의 연대와 감정의 진동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 이념에 춤으로 저항한 유겐트의 격렬한 스텝은 노예제, 강제 이주, 분리 정책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 흑인들의 춤(노동가 Work Song, Field- Holler, 블루스, 재즈, 스윙)에 기인함으로써 국경과 인종, 이념을 초월한 일종의 세계적 유대감으로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스윙 키즈 한 장면
루이 암스트롱은 춤이 없다면 재즈는 몸을 잃는다”고 했다. 즉흥연주를 하면서 연주자들이 실은 연주가 끝날 때까지 각자의 스타일로 미세한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스윙 댄스에 대해 스윙은 마음이 웃는 소리다. 춤은 그 웃음을 번역하는 일이다”라고 한 듀크 엘링턴의 놀라운 표현은 전쟁과 함께 전파된 스윙 댄스가 나치 체제 아래서는 단순한 춤이 아닌 ‘턴(turn)과 스텝으로 번역된 자유의 몸짓’이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또 데이비드 르페브르는 말했다. 춤은 공동체의 심장박동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에서조차 스윙 댄스는 전시 분위기에 맞지 않는 외래 향락문화”라는 이유로 엄격히 규제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모임은 계속되었다. 이외에 러시아(1930-1950), 일본(1930-40), 중국(1966-1976)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정신을 해치는 부르주아 문화”로 간주되어 재즈와 스윙 댄스를 금지하고, 이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다. 이렇게 전쟁을 전후로 아시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시기를 달리 하며 ‘재즈 자체’를 금지시켰다. 이것은 미국에서 있었던 흑인 재즈 뮤지션들에 대한 차별과는 차원이 다른 박해였다.
춤으로 자신의 몸 해방시킨 50년대 한국 사회 『자유부인』
영화 자유뷰인 포스터
1950년대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대표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것 또한 스윙 댄스였다. 자신의 존재감을 춤으로 드러낸 여성의 서사를 다룬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서는 ‘스윙 댄스’를 직접 묘사한 장면이 있는데 이는 문화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소설 『자유부인』은 출간 후 4만 부가 팔려나갔을 만큼 인기가 있었으나 교수 부인의 일탈을 다룬 내용으로 비판을 받았다. 비판에 그친 것이 아니라 테러 협박까지 당했으며 금서가 되기도 했다. 전후 무차별로 들어온 미국 문화에 대한 반감이기도 했지만 문제는 문학을 예술로써 받아들이지 못한 왜곡된 시선이었다. 소설 『자유부인』 속에 묘사된 교수 부인의 일탈이란, 오선영이 동창회에 나갔다가 사교춤을 알게 되고, 춤에 빠져 연인(남편의 제자)과 춤을 추러 다닌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위기일발의 순간에 주인공이 잘못을 뉘우치고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자유부인’ 오선영은 자신의 ‘몸’이 춤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빠져 든 것은 연인이 아니라 몸의 해방을 가져온 춤, 춤이었다.
문자와 언어, 음악이 독립된 개념을 가지기 전까지 춤은 사냥을 하거나, 전쟁할 때, 노동할 때, 그리고 축복과 애도를 표할 때 그 모든 삶의 감정을 아우르는 ‘생의 흔적’(이사도라 던컨)이었다. 자유를 꿈꾸는 세계 젊은이들이 스윙 댄스에 열광한 것은 그것이 현란하고 박진감 넘치는 유흥으로서의 춤이 아닌 몸과 마음의 즉흥적인 소통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줄 아는 ‘정신적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자유부인 한 장면
스윙 댄스는 기본 스텝은 있으나 리드와 팔로우는 순간의 감각으로 반응해야 하며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수용하는(마치 즉흥연주를 하듯)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적 개방성’이다. ‘판단 받지 않기 위해 움츠러든 몸’을 활짝 펴야 하는 것이다.
춤을 출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턴(turn)은 매번 제자리로 돌아오면서도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이 원과 즉흥이 만나는 지점이다. 턴(turn)을 잘 하려면 자신의 중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턴(turn)은 리드와 팔로우의 회전언어로서 상호보완하며 관계가 순환된다. 리드가 팔로우에게 턴을 제안할 뿐이다. 제안을 받아들인 팔로우는 자기만의 궤도로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스윙댄스는 파트너 간의 회전과 돌고 도는 동작을 통해 에너지를 원으로 풀어낸다. 그 안에는 리드와 팔로우 간의 신뢰와 소통, 즉흥성, 유대감이 함께 숨쉬고 있다.
도형 중에서 가장 완전한 형상이며 가장 근원적인 상징인 원
동양, 아프리카, 고대 라틴 아메리카 문화에서는 시간이 원형(Circular)이라고 한다. 이 원형적 시간 감각은 민속춤에 나타나는 반복적 회귀와도 맞닿아 있다. ‘세마(sema)’는 끝없이 빙빙 돌며 무아지경이 된 순간 신과 만나는 터키의 전통춤이다. 라이겐(Reigen)’은 크게 원을 만든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파트너를 바꾸어가며 도는 오스트리아의 전통춤이다. 스코틀랜드의 ‘케일리(Ceilidh), 라오스의 전통춤 람봉(춤과 원이라는 뜻) 역시 회전 춤 또는 원형 춤이다. 돌고 돌면서 원을 그려나가는 것은 인간이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고통을 정화하는 무의식적 의례라고 전해진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인 ‘강강수월래’도 원형을 이루며 계속 돈다. 여러가지 기원설이 있는 ‘강강수월래’는 보름달이 뜰 때 여인들이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만들어 회전하면서 추는 민속춤인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속이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지시로) 남장을 한 여성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윤무를 추었는데 이에 속은 왜군들이 물러났다는 이야기다. ‘강강수월래’는 전쟁 중에는 ‘방어의 춤’으로, 추석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의 춤’으로, 때로는 여성들이 서로의 고충을 나누며 연대하는 ‘소통의 춤’으로 공동체의 화합을 보여주고 있다. ‘강강수월래’의 노래는 반복되는 선율과 구절 위에 상황에 따라 즉석에서 가사를 바꾸거나 이어붙이는 전통이 있고, 리더가 선창을 하면 사람들이 ‘강강수월래’하고 답가를 부르는데 이는 블루스의 부르고 답하기의 형식인 ‘콜 앤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와 닮아 있다.
강강수월래
스윙댄스의 파트너 사이에서 이뤄지는 즉흥 소통이나 재즈의 즉흥연주, 원형으로 돌며 서로의 손을 잡고 공동의 리듬 속에서 움직이는 ‘강강수월래’는 모두 동시에 함께 만든 틀 안에서 주고 받는, 그리고 즉흥성과 변주를 허용하는 관계의 예술이다. 금지된 춤을 통해 자유를 표현한 스윙 댄스, 달빛 아래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원무를 펼치는 것은 모두 ‘저항’의 언어이다.
스윙 댄스의 턴(turn), ‘강강수월래’의 원무, 되풀이되는 상념들, 계절의 순환까지 그 모든 회전은 ‘즉흥의 만다라’다. 끝없이 도는 것은 본래의 나 자신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날이 서 있던 것들(생각, 마음, 판단)이 부드러워지고 어제를 되돌아보며 내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재즈 연주를 들으면서 리듬감 있게 몸을 움직여보고, 평소에 듣지 않는 장르의 음악도 편견 없이 들어보면서, 걸을 때는 어깨에 힘을 주지 않고 경쾌하게 걷는 것, 이런 작은 움직임들을 통해 좀 더 열린 마음이 될 때, 낯설게 느껴지던 스윙 댄스의 스텝이, 즉흥연주의 선율이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지금은 춤을 추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