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환금융, 선언이 아니라 산업전략이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민병덕의원이 발표한 2024 한국ESG금융백서”에 의하면 한국의 ESG금융 규모가 20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우리 ESG금융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 구조 전환을 실제로 견인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제 우리는 ‘ESG금융 확대’라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 전환금융이 우리 경제를 저탄소로 전환하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 따져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전환금융의 목적은 무엇인가? 전환금융은 한 마디로 고탄소 산업을 퇴출시키는 금융이 아니라, 고탄소 산업을 저탄소 구조로 전환시키는 금융이다. 그리고 그 핵심 목적은 첫째, 기존 산업의 배출집약도를 단계적으로 감축하도록 자본을 배분하는 것이고, 둘째 질서 있는 전환(Just & Orderly Transition) 즉, 갑작스러운 자본 차단이 아니라, 고용과 지역경제를 고려한 점진적 전환을 설계하는 것이며, 셋째 탄소가격, 규제 강화, 기술 대체 등으로 발생할 자산가치 하락 위험, 즉 전환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여 이를 금융 시스템 내로 흡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환금융은 기후정책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산업정책과 금융안정정책의 교차점에 있는 전략적 도구인 것이다.
그런데 백서에 의하면 한국의 전환금융은 아직 제도적·시장적 기반이 충분히 구축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전환금융의 정의와 기준이 불명하다. 전환활동에 대한 명확한 분류체계가 분명하지 않아 LNG 등 화석연료 관련 사업이 ESG 실적으로 일부 반영되고 있고, 전환의 경로(pathway)” 기준이 미흡한 결과 그린워싱과 트랜지션워싱의 경계가 모호하다. 둘째, 성과 평가 체계가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다. 전환금융은 원칙적으로 감축 목표(KPI), 중간 이행경로, 그리고 검증 체계가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금융기관별 자율 기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경우 이에 대한 제재 방법이 불명확하고 감축 효과를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셋째, 한국 ESG금융은 여전히 대출 중심이다. 그런데 대출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안정적이지만,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리스크가 큰 대규모 투자 사업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할 지분투자, 메자닌(mezzanine), 혼합금융(blended finance) 구조 등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성 공시가 지연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사실 전환금융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질 좋은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기업의 배출 정보, 감축 경로, 자본적 지출(CAPEX) 계획이 명확해야 자금이 가야 할 곳을 찾게 된다. 그런데 지난 2월 25일 금융위원회가 지속가능성 공시(ESG 공시) 로드맵 초안 을 발표하였으나 전면적 시행 시기는 2029년 이후로 늦어져 전환 리스크 가격화(price discovery)도 늦어지고 있다. 그만큼 금융기관은 여전히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게 되고, 그 결과 전환금융은 아직도 선언에 머물 가능성이 높은 형국이다.
그렇다면 전환금융을 촉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우선 전환활동의 정의를 분명하게 내려야 한다. 허용되는 조건부 화석연료 범위, 감축 경로 기준(예: 1.5℃ 정합성), KPI 설계 원칙 등을 확실하게 설정하여야 한다. 그래야 은행과 연기금 같은 금융기관이 정책 리스크 없이 금융활동을 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전환금융이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과학 기반 기준(science-based criteria) 위에 서야 하는 이유이다.
둘째, 금융기관은 성과 기반 금융 구조를 도입하여야 한다. 목표 달성 시 금리 인하, 미달성 시 페널티 강화, 외부 검증 의무화 등의 구조를 도입하지 않으면 전환금융은 ‘저금리 대출’에 머물게 된다.
셋째,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자본의 전략적 역할이 중요하다. 전환은 민간 금융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정책금융기관의 선도적 투자, 손실흡수형 펀드 조성, 민관 공동 위험분담 구조 설계 등의 전략적 접근을 통해 공공이 주도하고 민간이 쫓아가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전환금융은 시장에만 맡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전략적 국가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넷째, 전환금융은 단일 정책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시-금융-산업정책이 통합되어야 한다. 먼저 ESG 의무공시를 법제화하고, 탄소가격제를 도입하며, 산업구조 전환 로드맵을 만들고, 금융 관행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정합성을 가지고 시행될 때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기후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글로벌 지속가능성이 위태로운 지금 전환금융은 선택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 전략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탄소집약적 산업 비중이 높은 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저탄소 경제로 전환을 차일피일 전환을 미루는 것은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경쟁력을 헤치고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문제이다.
전환금융의 목적은 단순하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자본이 더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ESG 구호가 아니라, 정교한 전환 기준, 엄격한 성과관리, 그리고 산업전략과 결합된 금융정책이다.
마지막 한 마디. 전환금융은 일시적 유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다음 30년을 좌우할 자본 배분의 방향성을 세우는 일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오는 3월 10일 전환금융을 중심으로 국제 컨퍼런스를 열 예정이다. 관심 있는 분들의 적극적 참여를 당부드린다.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국내 ESG 전문가로 꼽힌다. 양춘승 상임이사는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 석박사 출신으로 2007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설립을 주도했고 현재까지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양춘승 이사는 2008년에 국내 최초로 글로벌 금융기관 주도의 기후 관련 정보공개프로젝트인 CDP를 국내에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후 RE100, EV100(전기차 전환 캠페인), PCAF(탄소회계 금융협의체), SBTi 등 국제적인 이니셔티브를 도입하며 우리나라 금융과 기업의 지속가능성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