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안의 정직을 지키기 [칼럼]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 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짬짜미
그림 속, 해 질 녘 도심의 빌딩 숲 위로 보랏빛과 주황빛 노을이 짙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환하게 불을 밝힌 회의실 안에는 많은 사람이 커다란 탁자에 둘러앉아 공개 회의 를 열고 있네요. 하지만 스크린을 바라보며 나침반을 맞추듯 이야기를 나누는 화려한 조명 뒤편, 다른 방에 네 사람이 따로 모여 서 있습니다. 사방을 슬금슬금 살피며 서류를 주고받는 이들의 굳어진 눈빛과 조마조마한 동작을 보고 있으면,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할 투명한 햇살을 가로막고 어둠 속에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차가운 그림자가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 짬짜미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주요 정유사들이 산업용 윤활기유 가격을 짜고 올렸다는 의혹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다는 기별이 들려옵니다. 거래 규모가 무려 2조 원대에 이르러 산업계 안팎의 눈길이 쏠리고 있지요. 만약 뒤에서 몰래 손을 잡은 사실이 밝혀지면 거액의 과징금과 함께 무거운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고 합니다. 시장의 공정한 질서를 깨뜨리고 평범한 이웃과 거래 업체에 고스란히 피해를 떠넘기는 이러한 부정한 무늬를 보며, 오늘 우리가 가슴에 바르게 세워볼 토박이말은 짬짜미 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 이라고 뜻풀이합니다. 움직씨꼴(동사형)로 짬짜미하다 라고도 부려 쓰며, 소설 《남생이》의 아내의 밤늦게 돌아오는 그 일에 분명 노파의 짬짜미가 있으리라 는 문장이나 영수가 동네 불량배들과 짬짜미를 하여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이 분명했다 같은 보기월처럼 잘 쓰여왔지요. 저는 이를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뒤에서 몰래 뜻을 맞추는 일 이라고 쉽게 풀이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어려운 한자말인 담합 (談合)이나 야합 (野合)을 갈음하여 쓸 수 있는, 아주 직관적이고 매서운 울림을 가진 우리말입니다.
세상의 요란한 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안의 정직을 지키는 시간
함께 힘을 모으는 협력 은 참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것이 몇몇 사람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몸짓이 될 때는 협력이 아닌 짬짜미 로 얼룩지고 맙니다. 그림 속 다른 방의 사람들처럼, 겉으로는 공정하게 경쟁하는 척하면서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 자기들끼리 수작을 부리는 행위는 결국 맑은 사회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의 믿음을 짓밟는 일이지요.
우리의 나날살이 속에서도 가끔은 이런 씁쓸한 모습을 마주하곤 합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노력하기보다 뒤에서 꾀를 부리며 손쉽게 성과를 가로채는 이들을 볼 때면, 어쩐지 곧게 걸어가는 내 걸음이 미련해 보이고 자존감이 확 가라앉기도 하지요. 나도 저들처럼 적당히 눈을 감고 살아야 하나 하는 외로운 고민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어둠 속의 짬짜미가 당장 달콤한 열매를 줄지 몰라도,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부끄러운 얼룩이 될 뿐입니다. 비록 화려한 불빛 아래 도드라져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이 지켜온 정직과 양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대라는 존재를 가장 빛나고 단단하게 키워내고 있습니다. 눈앞의 유혹과 요란한 편법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결을 가꾸어가는 여러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마음 나누기]
그림 속 다른 방에 숨어 귓속말을 나누는 이들과 달리, 여러분은 편법이나 뒤로 짠 짬짜미대신 정직함을 선택해 마음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혹은 담합 이라는 딱딱한 한자말 대신 짬짜미 라는 우리말을 나날살이에서 더 널리 부려 쓰기 위해 어떤 작은 실천을 하면 좋을지 여러분의 고운 생각을 댓글로 다정하게 나누어 주세요.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투명한 진심들이 모여, 서로의 내일을 더 맑고 든든하게 지켜주는 가장 커다란 믿음의 울타리가 됩니다.
[한 줄 생각]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은 아름답지만, 남몰래 짬짜미를 해 이익을 챙기는 것은 모두의 믿음을 잃게 만듭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짬짜미
뜻: 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쉬운 풀이: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뒤에서 몰래 뜻을 맞추는 일)
보기: 닭고기 값을 짬짜미하는 바람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았다.
[토박이말 길잡이] 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