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사이드는 봐줘도 기후 반칙 은 못 참아 [환경] 18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이긴 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축구 팬들이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사진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 있다. 이날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와의 승부차기 접전 끝에 승리해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2022.12.19. [산티아고 AP=연합뉴스]
축구의 원리를 국가 발전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골 넣는 골키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파라과이의 전설 호세 칠라베르트가 대권 주자가 되어 아순시온 한국 대사관에서 던진 말이다. 이 범상치 않은 통찰을 바로 국정 운영의 언어로 번역한 이가 있다. 바로 파라과이의 산티아고 페냐 대통령. 1986년 마라도나와 함께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호르헤 발다노를 자국에 초청하였다. 규칙-팀워크-집단지성에 공감하며, 틈만 나면 장관 및 의원들과 축구로 소통 행보를 한다.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 조지아의 미헤일 카베라쉬빌리 대통령 역시 피치(Pitch) 위에서 체득한 리더십을 대통령실로 가져간 케이스이다. 축구가 유희를 넘어, 리더십-국정운영-외교의 시험지가 된 셈이다.
평화라는 이름의 가장 격렬한 국가주의
지금 세계 지도는 온통 붉다. 걸프만의 화염, 러-우 전선의 포성, 레바논의 잿더미까지. 이 비극 속에서 인류는 곧 2026년 북미 대륙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한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월드컵을 두고 가장 평화로운 방식의 국가주의”라 평했다. 누군가는 연간 560억 달러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축구 시장을 보며 ‘스타는 상품이고 팬은 소비자’라며 냉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자본주의의 계산기도, 딱딱한 이념의 잣대도 멈춘다. 거기엔 오직 휴머니즘만이 출렁인다. 우루과이의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말한다. 축구공은 둥글고, 둥근 것은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 이 평등한 공 앞에서 경제력도, 핵무기도, 거래주의도 무용지물이다. 오프사이드를 막아줄 방패는 없다. 강대국도 약소국도 심판과 보편적 규칙에 복종한다. 이 무대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규칙 기반 질서’의 가장 완벽한 실험장이다.
축구 전쟁과 전쟁 속의 축구 : 양날의 칼
물론 축구가 늘 평화의 전령사였던 건 아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서 벌어진 ‘축구 전쟁’, 축구가 지닌 폭발적 국가주의가 어떻게 비극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준 서글픈 사례다. 뿌리 깊은 이민·토지 갈등이 경기장의 열기와 만나 뇌관이 터졌다. 단 100시간의 교전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사의 뒤안길에는 무솔리니,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등 축구장 함성으로 고통의 비명을 덮으려 하는 ‘스포츠워싱(Sportwashing)’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영화 를 스치게 하듯,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이 크리스마스에 총을 내려놓고 함께 공을 찼던 기적 같은 순간을. 스포츠가 치유의 힘을 발휘할 때는 인류를 숙연하게 하는 거대 서사가 회복된다.
19일 오후(현지시간) 요르단 암만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경기.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팔레스타인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갖고 있다. 2024.11.20. 연합뉴스
2026년의 청구서 : 탄소 중립인가, 탄소 위선인가
그런데 2026년 월드컵 앞에는 전쟁 못지 않은 골리앗 골키퍼가 버티고 있다. 바로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장벽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40년 넷제로(탄소 중립)를 약속했지만, 이번 대회는 역대 가장 지저분한 탄소 발자국을 남길지 모른다.
48개국으로 늘어난 경기 수와 북미 3개국을 가로지르는 광활한 항공 이동량 탓. 승용차 650만 대가 1년 내내 뿜어내는 매연과 맞먹는다는 청구서가 나왔다.
더욱이 FIFA가 세계 최대 석유기업과 손을 잡은 것은 가히 ‘기후 역설’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60억 인구의 축제 광고판을 하필 석유 자본에 넘겨준 행보에 대해 유엔 및 환경단체 등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경기장 안에서는 오프사이드 반칙에 엄격한 심판이, 경기장 밖에서는 ‘노 파울(No Foul)’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지구촌 공동의 생존 규칙에 말이다. 그나마 다행히 유럽의 빅 리그들은 온실가스 감축 데이터셋을 의무화했고, 우리 K리그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제 필요한 건 구호가 아닌 기후 행동이다.
윤찬식 인하대학교 특임교수(전 주코스타리카, 파라과이 대사)
결국 2026년을 관통하면서 월드컵은 두 개의 전선 위에 서게 될 것이다. 분쟁 속의 평화 잔치, 탄소중립 타령 속의 탄소 잔치. 두 가지 모순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사피엔스는 공동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실천할 의지가 있는가?” 경기장 안의 심판은 휘슬을 불지만, 경기장 밖 심판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에 갈라지고 기울어진 울타리는 없어야 한다.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이번 여름, 세계는 다시 한번 월드컵 도파민에 빠져들 것이다. 하지만 골망을 흔드는 흥분을 넘어, 불타오르는 지구의 건강과 평화를 다지는 소중한 전환점이 되면 좋겠다. 공은 둥글다. 굴러간다. 그리고 뜬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이란 여류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가 속삭였다. 우리는 공의 방향을 결정하는 바람과 함께 동행할 것이다. 윤찬식 인하대학교 특임교수(전 주코스타리카, 파라과이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