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반서방 연대 한 축 무너뜨린 헝가리 오르반 몰락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4월 12일 헝가리 총선에서 야당인 티사(Tisza) 당이 집권 여당 피데스(Fidesz) 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전체 199석 중 138석을 거머쥐었다. 개헌 저지선을 넘는 의석수 3분의 2를 야당이 확보한 것이다. 유럽 극우의 상징이자 우크라이나의 적, 그리고 푸틴의 애완견 으로까지 불리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16년 장기 집권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유럽 정상들은 이 결과를 크게 환영했으며 유럽 극우 세력의 최전선이었던 헝가리의 변화가 전 세계 우파 포퓰리즘 진영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무기 및 재정 지원을 가로막아온 헝가리의 정권 교체로 유럽 내 푸틴의 영향력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줄줄이 나온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페테르 마자르는 우크라이나 재정 지원을 더 이상 막지 않겠다 고 이미 선언했다.
12일(현지시간) 치러진 헝가리 총선 결과 압도적인 승리를 확정해 차기 총리가 유력한 페테르 마자르 티사(TISZA, 존중자유당) 당수가 국기를 휘저으며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26. 4.12 부다페스트 AFP 연합뉴스
2010년 집권 하자마자 장기집권 토대 구축 시작한 오르반
그러나 헝가리의 정권 교체를 유럽 언론이 그렇게나 반길 만한 일인지는 조금 더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의미를 파악하려면 헝가리의 정치적 맥락을 잠깐 되짚어봐야 한다. 2010년 4월, 오르반은 8년 간의 야당 생활 끝에 총리직에 화려하게 복귀했다(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이미 총리를 맡은 적이 있다). 2000년대 후반 좌파 정부의 잇따른 실패를 틈타 피데스 는 선거에서 사회당을 무너뜨렸고 당시 의회 전체 386석 중 263석을 차지하며 개헌 가능 의석을 확보했다.
승자들은 이 기회를 누려 장기 집권의 뼈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2011년 4월, 그들이 장악한 의회는 단 9일 만에 헝가리 기본법(Magyarország alaptörvénye)을 통과시켰다. 이 새 헌법은 지나치게 이념적일 뿐만 아니라 국가 제도를 권위주의적으로 재편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국회의원 수를 거의 절반(386명에서 199명)으로 확 줄이고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으며 사실상의 검열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행정부에 유리한 제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행보는 오르반의 16년 집권기 내내 멈추지 않았다. 그 핵심 수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실 자본주의다. 2026년 현재 헝가리에는 개인적으로 오르반에게 신세를 지지 않은 부자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건설 재벌은 총리의 소꿉친구이고 상업용 부동산의 제왕은 그의 사위이며, 광산업계 거물은 다름 아닌 그의 친아버지일 정도다.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인식지수에서 헝가리는 현재 84위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여러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낮은 수치다. 헝가리는 ‘EU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라는 모욕적인 딱지가 붙었다.
정실 자본주의, 언론 장악, 게리맨더링, 비상사태 선포…
둘째, 언론 장악이다. 당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약 500개의 지역 매체와 TV 채널을 통제 하에 두었다. 비판적인 언론사는 정부의 직접 개입으로 폐간되기도 했다. 2026년 기준 국내 언론 시장의 약 80%를 오르반의 측근이나 관계 기업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헝가리가 EU 내 언론 자유도 최하위를 기록하는 이유다.
셋째, 게리맨더링(선거구 획정 조작)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야권 성향이 강한 지역을 고립시키거나 여권 지지 지역과 통폐합해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는 방식이다. 이는 피데스의 연속적인 승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넷째, 일상화된 비상사태다. 오르반 정권은 2020년부터 반년마다 비상사태를 연장해 왔다. 처음에는 코로나19가 구실이었지만 현재는 이웃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명분이 되었다. 한국인들에게 보다 익숙한 계엄령 수준의 군사 통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총리가 의회를 패싱하고 행정 지시만으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가지게 해 준다.
물론 제도적 꼼수만으로 16년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오르반은 자신의 통치 방식을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Illiberal Democracy) 라 칭했다. 상당수 헝가리 국민이 그의 특유한 세계관에 열광하며 굳건한 지지를 보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총선 패배로 물러나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푸틴 독재 수법과 흡사한 민족주의, 외세 위협 강조
2010년대에 오르반은 국가의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에 점점 더 자주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많이 유사하다. 2011년 헌법에는 결혼은 남녀 간의 결합 ,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시작 이라는 조항과 헝가리 국가의 연속성과 민족의 통합 에 대한 문구가 포함되었다. 이는 과거 헝가리 영토였던 트란스라이타니아(Transleithania)의 분할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민족주의로 교묘하게 포장한 것이다. 오르반 정권하에서 해외 거주 헝가리인들은 본국 투표권을 부여 받았고 이들은 피데스의 든든한 콘크리트 지지층이 되었다.
이밖에도 오르반의 정치 행보는 푸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오르반은 2008~2009년 세계 경제 위기 당시 철저히 실패했던 친유럽 성향의 사회당을 밀어내고 집권했다. 2010년대 초반에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피데스는 이를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했다. 글로벌 엘리트와 세계화주의자들이 헝가리를 탄압하려 하며 정치적 반대파, 불법 이민자, 성소수자, 우크라이나 정부 등을 그들의 앞잡이로 매도하는 식이었다.
집권 16년 동안 오르반은 견고한 지지층을 구축했다. 주로 중장년층, 고졸 이하의 저소득층 지방 거주자들이다. 이들은 오르반을 정치적 올바름 및 워크(Woke) 문화로부터 헝가리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며 저렴한 에너지와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는 지도자로 여긴다.
모스크바와 워싱턴·유럽 사이에 둔 아슬아슬한 줄타기
특히 저렴한 에너지 공급이라는 마지막 성과는 크렘린궁과의 노골적인 관계 덕분에 가능했다. 오르반과 모스크바의 관계는 매우 흥미롭다. 과거 반소련 투사였던 그가 시간이 흘러 EU 내 푸틴의 대변인 으로 전락한 것은 역설적이다. 2008년 조지아 전쟁 당시 조지아와의 연대를 표명했던 오르반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위기 때는 오히려 중립을 지켰다.
우연히도 2014년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우크라이나 내 친유럽 대규모 시위)를 기점으로 오르반은 모스크바와 본격적인 밀착을 시작했다. 2014년 1월 러시아의 헝가리 원전 건설 참여에 합의했고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 수입을 대폭 늘렸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는 시장가보다 5배나 저렴한 가스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EU와 NATO의 우산 아래서 러시아로부터는 경제적 이득을 즐기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셈이다.
서방 평론가들은 이를 철저한 사리사욕의 결과로 본다. 러시아는 EU 내 트로이 목마 를 심어두는 대가로 값싼 에너지를 제공할 의향이 충분해 보였다. 최근 헝가리 외무장관이 EU 회의 내용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고스란히 유출했다는 정황까지 폭로되면서 이들의 거래는 기정사실화 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부다페스트 대표단과의 정보 공유를 꺼리고 있으며 친러 행보를 이유로 헝가리에 대한 EU의 재정 지원도 동결된 상태였다. 같은 EU 가입국끼리 이렇게 불신이 불거지는 것은 푸틴이 그렇게 원하는 형편이기도 하다. ‘분할하여 통치하라 는 원칙은 러시아 대통령이 국내에서도 잘 실천하는 신념이다.
2025년 11월 28일 모스크바 크레린궁에서 정상히담을 하고 있는 오르반과 푸틴. 2925. 11. 28 타스=연합
그렇다면 2026년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한 비결은 무엇일까. 헝가리인들이 갑자기 친유럽 연대감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동정심을 품게 된 것은 아니다. 근본 원인은 현 정부의 국정 운영 실패에 있다. 인플레이션, 경제 성장 둔화, 주택난, 지속적인 부패 스캔들이 겹쳤다. 피데스 내부에서조차 오르반의 장악력이 떨어졌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흥미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공개 지지가 오히려 역풍을 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J.D. 밴스 부통령을 헝가리에 직접 보내 유세를 지원하고 오르반이 선거에 이기면 헝가리에 막대한 자금 지원을 약속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전쟁으로 헝가리 역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던 터라 유권자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오르반 빅토르(왼쪽) 헝가리 총리가 지난 7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헝가리-미국 우호의 날’ 행사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관중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2026. 4. 7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마자르 등장에 유럽은 일단 안도의 한숨 내쉬고 있지만…
피데스를 무너뜨린 중도 정당 티사 의 페테르 마자르 대표는 오르반에게 가장 뼈아픈 사람이다. 과거 친유럽 자유주의 정당이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손쉽게 꺾어왔던 오르반에게 마자르는 완전히 결이 다른 위협이었다.
이 45세의 변호사는 인생의 절반을 피데스 당원으로 보냈고 전 법무부 장관의 전 남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2024년 자기 부인의 부패를 공개적으로 폭로하며 180도 돌변, 집권당을 탈당하고 티사 로 합류했다. 그는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작은 정당을 제1야당으로 변신시켰고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지 2년도 안 돼 총리 후보로 떠오른 정치적 성공 사례가 되었다.
마자르는 친유럽, 친우크라이나, 반러시아 성향을 뚜렷하게 하고 있다. 오르반의 거부권에 막혀 있던 약 900억 유로(약 153조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승인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친유럽 노선 복귀를 수차례 강조했다. 물론 필요시 러시아와 협상할 수 있다”거나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다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완벽한 진보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노골적인 ’친푸틴, 친트럼프‘ 노선에서 탈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지정학 전문가들은 2026년이 푸틴에게 외교적으로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를 한다. 2025년 말 시리아 친러 정권의 붕괴, 2026년 초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의 몰락, 이란의 지정학적 위기(하메네이 사망)에 이어 오르반의 선거 참패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푸틴이 공들여 온 반서방 연대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있다. 중국과 북한이라는 뒷받침이 여전하지만 이번 헝가리 선거 결과를 기점으로 유럽 내 푸틴의 영향력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