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가를 얼마나 아는가…민주주의의 근력 검사 [뉴스] 좋은 땅 제공
우리는 매일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국가란 무엇인가 를 제대로 묻고 가르침을 받은 적은 드물다.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고, 복지를 경험하고, 법과 행정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어떤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 누가 막았어야 하는가 ,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 를 뒤늦게 묻게 된다.
얼마 전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팟캐스트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민족주의(Nationalism, 또는 국가주의)는 우리가 평생 만날 일이 없는 낯선 이들을 보살피도록 스스로를 설득하는 이야기다.”
황광선 가천대 행정학과 교수의 신간 『시민을 위한 국가 수업』(좋은땅 320쪽)은 바로 그 질문들을 미리, 그리고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쓰인 시민 교양서다.
국가 를 다시 묻는 이유
국가는 멀리 있는 추상 개념이 아니다. 국제뉴스 한 줄에 삶의 조건이 흔들리고, 행정 하나의 실패가 수십만의 생계를 위협하는 시대다. 저자는 이처럼 국가가 일상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데도 정작 시민들이 국가의 작동 원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기획했다고 밝힌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앎은 얕아질 수 있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과 시민의 판단 역량 약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오늘, 공적 논의는 쉽게 자극적인 주장과 얕은 확신에 휘둘린다. 저자는 이런 시대일수록 시민이 국가와 정부, 권력과 제도, 정당성과 주권의 문제를 더 깊고 책임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익숙한 개념일수록 더 자주 다시 물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메시지다.
국가를 입체적으로 보는 시각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를 단순한 제도 설명이나 교과서식 정의로 축소하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국가를 정부와 동일시하는 익숙한 통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국가는 정부이기도 하고, 법체계이기도 하며, 법인격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세 얼굴을 동시에 볼 때에야 비로소 국가가 무엇인지, 왜 법치주의가 중요한지, 국가가 시민에게 무엇을 약속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자연법 사유에서 로크의 국가관, 국가 형성 이론, 권력과 정당성, 주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서로 분절되어 각기 다뤄지기 쉬운 개념들을 하나의 흐름 속에 엮어 냄으로써, 독자가 국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이 책의 구성적 강점이다. 특히 국가의 기원을 둘러싼 두 갈래의 해석—강자가 폭력을 앞세워 국가를 세웠다는 약탈론 과, 사람들이 생존과 질서를 위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았다는 협력·계약론 —을 균형 있게 제시하며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시민적 근력 이란 무엇인가
글쓴이는 민주주의가 제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시민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힘이 일정 수준 이상일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이 책이 말하는 시민적 근력 이란 국가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막연하게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언어와 권력의 작동 방식을 읽어 내고 필요한 곳에서는 동의하고 필요한 곳에서는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다.
황 교수에 따르면, 국가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행정학이나 헌법 지식을 더하는 일이 아니다. 익숙한 개념들을 다시 분류하고, 다시 연결하고, 다시 해석하는 일이며, 결국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국민은 단지 헌법 아래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필요할 경우 새로운 헌정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궁극적 주체 라는 책의 명제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주권 개념에 새롭게 눈 뜬 독자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6부 29장으로 구성된 교양서
『시민을 위한 국가 수업』은 6부 29장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왜 지금 국가를 다시 알아야 하는가를 묻고, 2부에서는 국가의 개념과 생각의 틀을 세운다. 3부에서는 농업 생산 잉여, 곡물 저장성, 환경 조건, 중세 교회와 국가의 관계 등 국가 형성의 역사적·이론적 맥락을 살피며, 4부에서는 권력과 정당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룬다. 5부는 주권의 개념과 변화를 정리하고, 마지막 6부에서는 국가 지식을 갖춘 시민의 힘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 독자는 이 여정을 마칠 즈음 더 단단한 시민의 눈, 면역된 체질, 흔들리지 않는 심지, 한층 성숙한 국가 지식 에 다가가게 된다.
국가를 움직이려는 사람이 먼저 읽어야
시민언론 민들레의 시민기자이기도 한 황 교수는 이 책이 정치·행정·역사·철학을 공부하는 학생, 국회와 정부·지역 운영에 관심을 가진 실무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살아가는 국가를 제대로 알고 싶은 모든 시민을 위한 책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특히 그가 중점을 둔 것은 국가를 움직이거나 움직이려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국가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의 문제제기가 오늘의 공론장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