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수첩 실체 규명에 2차종합특검 사활 걸렸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모의했다는 의혹을 받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속행 공판에서 증언을 거부하고 있다. 2025.12.8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이 수사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거나 실체에 다가가지 못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2차종합특검(권창영 특별검사)이 25일 경기 과천시 우리은행 과천금융센터 건물에서 현판식을 갖고 최장 150일의 수사에 착수했다. 2차종합특검은 17개 의혹을 파헤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사활이 걸린 것이 노상원 수첩 의 실체 규명이다. 특검의 사활이 걸렸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권창영 특별검사는 이날 현판식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오로지 법률과 증거가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성역 없이 철저히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다짐했다.
2차종합특검은 ‘노상원 수첩’과 방첩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및 블랙리스트 작성, 대북심리전에 따른 북한 공격 유도 등 12·3 내란·외환 사건과 ‘김건희 여사 봐주기 수사’ 및 관저 이전 의혹 등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관련 사건 등이다.
당연하게도 권 특검은 일찌감치 내란 사건에 가장 많은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입을 열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8일 변론 과정에 귀찮아서 답변 안하겠다 고 발언해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내란 준비사항 등을 꼼꼼하게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는 ‘노상원 수첩’은 노 전 사령관이 내란 특검 수사 과정에 제대로 진술하지 않아 충분히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동안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보좌해 수거대상 처리, 부정선거 수사 등 구체적인 계엄 실행 계획을 수립한 ‘비선 핵심’으로 지목됐다. 수첩에는 헌법 개정(재선~3선)” 등 계엄 성공 이후의 구상을 적은 것으로 의심되는 문구나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 등 수거대상으로 체포한 정치인의 처리 계획을 기획한 흔적도 나왔다.
이 수첩을 근거로 조은석 내란 특검은 불법계엄의 모의 시기가 최소한 계엄 선포 시점으로부터 1년 전이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공소장에 기재했다.
노상원 수첩 일부. SBS 화면 갈무리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1133쪽의 판결문에 검사는 윤석열이 약 1년 전부터 국회를 제압해 장기독재를 하려는 의도를 갖고 내외적 여건을 조성하다가 여의치 않자 이 사건 비상계엄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장기간 준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보기에는 준비가 지나치게 허술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국민담화 및 포고령 내용, 각종 진술을 종합하면 적어도 12월 1일 무렵 ‘더는 참을 수 없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이 사건 실체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또 ‘여의도 봉쇄’ ‘수거팀 구성’ 등 문구가 기재된 ‘계엄 책사’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이 계엄 선포 1년 전인 2023년 10월 이전에 작성됐다는 주장도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며 배척했다. 공소를 책임진 내란 특검은 그의 수첩에 기재된 ‘박안수’ ‘여인형’이 2023년 10월쯤 장군 인사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점을 감안할 때 수첩이 그 전에 작성됐고,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에까지 개입한 정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슷한 시점에) 곽종근, 이진우도 육군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으로 보직됐는데 이들에 대해 아무런 기재가 없는 점에 관해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노 전 사령관의 행적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계엄 한 달 전인 2024년 11월 8일 서울 방배동에서 딸이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는 방배동으로 가지 않고 경기 안산시 봉오동으로 갔다. 손에는 수첩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노 전 사령관은 같은 해 8월부터 계엄 당일까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관을 무려 21차례나 들락거렸다. 보안 손님 으로 방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이렇게 수상쩍은 노 전 사령관의 행적 역시 지귀연 재판부는 모두 외면해 버렸다.
수첩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선 내란 특검의 기소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안이한 역사인식과 정보기관의 생리에 대한 몰이해도 문제지만, 내란 특검의 기소 내용에 허술한 점이 없었는지를 정밀하게 해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노 전 사령관의 굳게 다문 입을 열게 할 비책을 다각도로 찾아야 한다.
여인형 리스트 일부. SBS 화면 갈무리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지시로 국민의힘 강선영 의원 등 군 출신 의원들의 성향을 파악해 문건을 작성했다는 정치인 사찰 의혹이 있다고 JTBC의 이날 보도가 눈길을 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해당 문건을 입수해 내란특검으로 넘겼고, 내란특검은 수사를 미처 마치지 못했지만 의미있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나승민 전 방첩사 신원보안실장은 지난해 2월 4일 재판 증언에 나서 12·3 계엄 당일까지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군판사 4명의 동향을 파악했다 고 진술했다.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방첩사가 작성해 지난해 4월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했다는 의혹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일도 있었다. 이런 일 모두 계엄에 대비해 차근차근 진행된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2차종합특검의 수사 대상에 방첩사 블랙리스트가 포함된 만큼 특검은 해당 문건들이 왜 만들어졌는지, 윤 전 대통령에까지 보고된 과정에 다른 인물이 개입됐는지 등을 규명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 특검이란 특성 때문에라도 여러 갈래의 수사를 제한된 시간 안에 마무리해야 하기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사활이 걸린 노상원 수첩 에 모든 역량을 투입해 돌파구를 찾는 노력이 더욱 강조될 수 있다. 수첩 을 가리려는 이들과 그 세력을 찾아내야 한다. 모든 수사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겠다는 욕심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일부 언론은 앞선 특검 수사에 미진했거나 기소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사건, 예를 들어 조희대 대법원장과 심우정 전 검찰총장 사건 등에 우선하는 것도 좋겠다고 주문하고 있다. 조은석 특검팀은 12·3 내란 당시 대법원 수뇌부가 진행한 심야 긴급회의에 대한 수사를 벌여왔다.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졸속 심리하고 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결정에 관여했다는 혐의 등도 수사했으나 한 차례도 소환 조사하지 않고 불기소로 처분했다.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하지 않은 심 전 총장에 대한 수사는 종결하지 않았다. 심 전 총장은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명품백 수사를 부실하게 한 의혹으로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언론들은 이미 3대 특검 수사로 핵심 피의자들이 구속돼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종합특검이 중복수사 우려를 안고 출범하는 점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새로운 수사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기존 특검이 규명하지 못한 사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위 두 가지 주문과 조언에 대해선 2차종합특검도 충분히 인식하고 유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