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이스라엘 발언 이 탈선?…언론이 만든 족쇄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SNS 글들에 대해 언론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다수 언론들은 13일자 지면에서 불필요한 시비를 일으켜 외교적 분쟁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의 자성이 먼저라고 한 한겨레와 경향의 논조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이같이 큰 논란을 낳는 것은 무엇보다 한국의 대외적 발언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수 언론의 비판은 이를 지금까지의 ‘표준’에서 벗어난 탈선 으로 보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례적인 것을 단지 이례적인 것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그 이례를 새로운 역할에 대한 모색으로 볼 것이냐는 것에 대한 냉철한 시각이다. 무엇보다 이를 국제사회의 새로운 ‘강(强) 중견국(강중국)’이 된 한국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찾는 새로운 실험대에 올라섰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 언론에게도 강중국의 언론으로서 그에 걸맞는 시각과 깊이를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의 13일자 사설.
이 대통령의 발언에 가장 비판적인 곳은 조선일보였다. 13일자 사설은 제목부터 ‘평지풍파 외교 파장’이라고 제목을 달아 이 대통령의 발언이 큰 물의를 빚고 있다고 규정한다. 전쟁 중인 국가를 상대로 소셜 미디어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인용하며 홀로코스트까지 언급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했다. 또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23년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라고 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외교 참사’라고 한 것과 같은 사례로도 들었다.
중앙일보의 사설은 이스라엘 외무부가 강력 항의해 옴으로써 외교 마찰로까지 비화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한겨레의 사설 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권이 홀로코스트를 면죄부 삼아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상대로 반인권적 범죄를 저질러왔다”며 이 대통령의 발언은 평화를 염원하는 전세계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외교적으로 민감한 주제와 관련한 사견을 SNS에 올리는 게 적절한가를 두고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단서를 달면서도 그러나 분명한 건 이 대통령 글이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한국인의 평균적 상식과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 가치에 부합한다는 점이다”고 했고 이스라엘에 대해 자국의 반인도적·반인권적 행태부터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겨레와 경향의 논조는 대다수 신문들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조선일보처럼 맹공을 퍼붓지는 않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논평들이다. 한국일보가 이를 대별한다. 사설에서 ‘보편 인권’ 주장은 타당하다고 전제했지만 개별국가와의 외교 충돌은 위태하다”고 해 사실상 비판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인권 문제를 놓고 특정 국가와 충돌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다른 문명 국가들이 국제형사재판소, 유엔 등 국제사회를 통한 해결을 모색하는 건 그것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는 질책성 조언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스라엘 외무부 측의 반발을 겨냥해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 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이 대통령 엑스 게시글 갈무리
다른 신문들도 등의 기사로 거의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의 보도들이 놓치고 있거나 미흡한 것은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지도자가 어떤 입지를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특히 미국과 관련된 사안에서 미국의 시각의 추종자, 미국의 언어의 수동적 소비자에 머물렀다. 미국의 시각에서 안보와 국익을 말하고, 미국의 언어로 국제 갈등을 해석했다. 미국이 발언할 때 그대로 말하고 미국이 침묵할 때 함께 침묵하는 식이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들은 이 수동적인 동조와 침묵을 깬 것이랄 수 있다. 그것이 과감한 도전인지 외교 마찰을 빚는 불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찬반이 교차하고 득실에 대한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국제질서가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에 맞춰 한국의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 석기 시대로 돌려보내겠다 고 했다. 그러나 그 협박 발언은 상대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그 자신의 의도를 따르자면-석기시대의 반문명인으로 폭로한 것에 가까운 말이었다. 폭격으로 학교와 병원과 상하수도를 파괴하겠다는 것, 돌을 들어 상대를 치겠다는 자야말로 스스로가 석기인임을 드러낸 것이었다. 법과 규범 이전의 전 문명적 사고를 보여준 것이었다. 규범과 윤리를 무시하겠다는 이 말로써 트럼프는 이란을 모욕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 자신과 미국을 비하시키고 말았다.
이번에 트럼프는 드러내놓고 전쟁범죄를 협박했다 -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국제사회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는 트럼프와 이스라엘의 네타나후로 대변되는 반문명화의 시도를 견제하고 저지하는 것이다. 상대를 치려고 들어올린 그 돌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는 국제법을 기초한 나라인 미국이 국제법의 가장 노골적인 위반국이 된 현실에서 미국 스스로가 기초한 규범의 언어를 미국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강대국이 만든 기준으로 강대국을 평가하고 그 기준의 준수를 요구하는 것, 이것이 중견국이 강대국에 대해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다.
한국은 강대국의 규칙을 그대로 수입해 소비하는 나라에 머물지 않는, 강대국이 훼손하는 규칙을 수호하는 나라로의 전환을 모색해 볼 시점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전자의 역할에 안주함으로써 동맹이 아닌 사대의 추종에 머물렀던 처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한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이 역할에 대한 실험과 시도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접근해 있다. 경제적 위상에서도 민주주의의 경험에서도 그렇고 분단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서도 그렇다. ‘강 중국’ 한국에는 그 같은 위상에 맞는 발언권의 무게와 정당성, 그에 부응해야 할 필요가 부여돼 있다.
조선일보 사설은 ‘사실과 다른 동영상’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이스라엘 정부가 반박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아이를 고문한 뒤 지붕에서 떨어뜨렸다”는 글과 동영상이 2년 전 영상이었고, 아이 고문도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비판했다. ‘틀린 사실’을 앞세워 ‘우호적 국가’를 공개 비난한 것은 외교 상식에 어긋난다고 했다.
애초에 올린 영상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았던 것은 맞다. 그러나 하나의 구체적 사실에서 틀리다고 해서 곧 그 사실을 포함한 진실 전체로부터 벗어난 것이랄 수는 없다. 단 하나의 사실만이 아닌 여러 개의 사실들을 함께 볼 때, 여러 사실들로 구성되는 것으로서의 진실에 더욱 가까워진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한국 언론들에 지금 요청되는 것은 복잡한 국제 상황에서 하나의 사실에만 갇히지 않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주장하는 사실에만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것을 따라 말하는 것이 외교였던 시대의 관성이 지금까지 한국 지도자들의 언어를 제약해 왔다. 그 제약은 누구보다도 한국의 언론이 만들어놓은 족쇄이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실렸던 칼럼 는 식의 주장은 극단적인 사례지만 한국 언론 대다수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끊임없이 반복해온 논리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여전히 한국이 그 족쇄와 벽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질문을 던진 것이랄 수 있다.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관성에서 벗어나 다시 생각해보자는 제안인 것이다. 그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를 단순하게 위험한 탈선으로 보는 단순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 중견국가인 한국의 언론에 필요한 중강국 언론 으로서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