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좀비떼, 집단지성이냐 우민화된 대중이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상호가 정교해졌다. 그의 새 영화 (5월 21일 개봉) 는 ‘연상호식 좀비 영화’의 결정판이다. 흔히들 좀비 영화의 완성은 특수효과에 있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번 연상호의 아트워크는 철저한 아날로그식 액션 플랜에 의한 것이었다. 그 점이야말로 이제 그가 ‘좀비 미학’에 있어 일가견을 지닌 감독으로 등극했다는 얘기가 된다. 올해의 칸영화제가 를 미드나잇 섹션에 초청한 데는 그런 의미가 있는 셈이다.
지독하게 정치적인 알맹이를 흐릿하게 만드는 연상호 작품들
인상적인 것은 좀비를 세 유형으로 나누어 모두 인간 출연자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일단 꺾기와 비틀기 전문가인 스턴트맨 그룹을 기본으로 (처음에 이들은 빌딩 바닥에 손발을 붙이고 빠르게 기어 다닌다) 무용수 그룹과 연기자 그룹을 두었다. 연기자들은 좀비의 표정 컷이나 몸짓 컷에 필요했을 것이다. 이들 중 최고봉은 무용수들인데 좀비들이 개미처럼 군집을 이루되 하나를 중심에 두고 원을 그리며 도는 행위예술을 만들어 냈다. 이 무용수들이 만들어 낸 군무는 이 영화 의 핵심 콘셉트인 ‘앤트밀’(시력이 거의 없는 군대개미가 앞선 개미의 페로몬을 따라 거대한 원형 고리에 갇혀 결국 지쳐 죽고 굶어 죽는 현상)과 연관이 있다. 앤트밀 장면은 이번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연상호는 전작 의 이른바 ‘좀비 카펫’(기차 마지막 칸에 좀비떼가 주렁주렁 매달려 가는 장면)에 이어 대단한 시각 예술을 완성했다. 이런 씬은 할리우드 대작 도 표현하지 못한 섬뜩한 정서의 정치학이다. 연상호가 대가가 되어 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연상호는 위험해졌다. 연상호 영화의 핵심은 모호함이다. 그의 정치‘주의’는 사회정치적 이슈나 아젠다를 희석하기도 한다. 저예산영화였지만 의외로 대중들에게 큰 환영을 받고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이 (2025)이다. 이 영화는 청계천 피복공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당시 사회를 흔들었던 청계 피복 노동자들의 고혈이 담겨 있지는 않다. 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개개인의 주체성이나 정체성에 어떤 왜곡이 일어나는지,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미스터리 심리극으로 보여주려 한다. 에는 그래서 현대사의 에피소드와 그 정치적 맥락이 실종돼 있다. 대히트작 이나 문제작 도 사실 배경과 설정은 지독하게 정치적인 면이 강한 것임에도 알맹이를 그릴 때는 의도적으로 그걸 흐릿하게 만든 면이 있다.
좀비떼로 아수라장 된 빌딩,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새 영화 는 미친 과학자로 보이는 어떤 남자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서울 일원에 생물학적 테러를 감행할 것이라는 자진 신고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서영철(구교환)이다. 서영철은 곧 자신과 함께 연구를 공유했던 체인스 바이오 대표 강우철(김종태)이란 사람의 바이오테크 컨퍼런스장에 나타난다. 강우철은 개미의 군집 원리(집단지성)를 바이오테크에 이용하면 사람과 사람 간의 정보 전달을 고도의 정보 시스템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발표를 한다. 컨퍼런스장에는 교수재임용에서 탈락해 전 남편 한규성(고수)의 강권에 따라 억지로 인사 청탁을 넣으러 온 권세정(전지현)이 강 대표의 발표를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사건은 발표를 끝내고 대기실에 있던 강 대표에게 서영철이 찾아가 자신의 연구를 통째로 훔쳐 갔다며 윽박지르는 데서 시작된다. 서영철은 여기서 자신의 본심(이 영화의 핵심)을 토로한다. 강우철 대표는 서영철에게 ‘너의 생각은 처음부터 미친 것’이었다고 말한다. 서영철은 완전한 인간, 오류 없는 인간들의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며 신인류를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해서(현재의 인간들을 파괴해서라도) 새로운 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서영철은 강 대표를 물어 그를 제1 감염자로 만든다. 서영철은 자기가 개발한 좀비균을 이미 자신에게 투여한 상태이다.
강우철이 좀비가 되면서 빌딩 안은 급속도로 아수라장이 된다. 경찰이 방어막을 치고 빌딩 ‘동우리’를 록다운(COVID19 때처럼) 시킨다. ‘동우리’ 내 사람들은 거의 모두 좀비떼로 변한다. 빌딩 안에는 권세정과 그녀의 전 남편 한규성, 그리고 빌딩의 보안요원 최현석(지창욱)과 그녀의 하반신 불구 누나 최현희(김신록) 그리고 경찰청 대테러팀장 이봉석(이중옥)이 살아남아 있다. 전직 육상 선수이자 코치였던 60대 노인(김재록)도 있다. 일진 학생 두 명과 왕따 학생이 있다. 그중 피해자인 이소은(이담희)은 그래도 거의 끝까지 살아남는다. 처음 생존 인원은 10명이었으나 이들은 거의 살아남지 못한다.
세뇌된 좀비떼… 촛불시민일까, ‘탱크 데이’ 극우세력일까
서영철로 인해 감염된 좀비들은 집단지성으로 조금씩 진화한다. 더욱이 다른 좀비들과 달리 이번 의 좀비들은 누군가의 명령 체계를 이행한다. 서영철이 개발한 시약이 어떤 것인지, 감염의 정도와 속도가 어떤지, 왜 서영철만 인간의 외모와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상호는 ‘거두절미’ 기법을 쓴다. 불친절할 만큼 그에 대한 설명이 없다. 사전 설명이나 사전 설정을 과도하게 생략해 낸 결과 영화에서는 좀비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의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결과, 그렇게 우민화(愚民化)된 집단(지성)이 특정 인간(구교환)이나 특정 세력에 의해 조종당하는 모습을 두고 이상하게 해석될 소지를 준다. 게다가 연상호는 그 조종자(혹은 세력)를 모호한 동시에 양가성을 띤 존재로 풀어내는 영악함을 보인다. 예컨대 극우 이데올로기를 지닌 자들이 이 영화를 보면, 12.3 불법 계엄이 내란 사태라며 응원봉을 들고 시위를 벌였던 소위 집단지성의 대중들이 사실은 특정 정치권의 사주를 받는, 우민일 뿐이라는 논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서영철 감염균의 정체’를 의도적으로 가려 놓은 것은 같은 장면을 두고 위의 말을 거꾸로 해석할 여지도 준다. 진보주의자들이 봤을 때는 ‘윤 어게인’이나 ‘반중’ ‘반공’ ‘탱크 데이’를 외치는 극우 세력들이야 말로 ‘누군가(가짜뉴스)’에 의해 철저히 세뇌당하고 있는 집단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연상호의 이데올로기가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과 원인을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듦으로써 영화에 대해 중의적이면서도 양가적으로 해석하도록 했다는 점에 있다. 극 중 서영철은 결국 신인류의 탄생을 위해서는 집단지성의 인간들이나, 우민화된 대중들이나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담론을 꺼내 든 셈이 된다. 서영철은 연상호의 ‘얼터 에고(또 다른 자아)’로 그 대사는 연상호의 머릿속과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런 본심을 숨기려는 듯 연상호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척한다. 서영철이 드러내는 아나키즘조차 한 미치광이 과학자, 곧 ‘외로운 늑대’의 ‘묻지 마’ 테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그려낸다.
파편화되고 획일화된 개인들이 갇힌 무한 루프
연상호의 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야만성을 숨긴 이기주의 지식인이나, 정치적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식의, 극도의 ‘엘리트주의’에 입각한 시선으로 채워져 있는 영화이다. 감독 연상호가 걱정된다고 말하는 건 그의 이 위험한 엘리트주의 때문이다. 소통과 연대 의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대사회의 파편화된 개인들이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획일화된 (좀비) 집단들 모두 앤트밀 같은 무한 루프에 갇혀 결국은 소멸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이 둘을 다 없애고 새로운 종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에 자유롭게 맡겨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하느냐의 논쟁으로 귀결된다.
연상호
로 연상호의 정치성은 더욱 모호해졌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냉소주의는 최고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느 쪽으로든) 우매한 대중을 믿지 않는다. 또한 (어느 쪽으로든 치우친) 정치 집단이나 정치적 행동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힘은 영화에서 권세정 교수와 공설희 박사(신현빈)가 서영철의 의도를 간파하고 앤트밀을 역이용해 그를 파괴하듯, 일군의 지식인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 추수주의(大衆追隨主義: 인기를 이용해 대중들을 동원,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경향)도 문제지만 반(反)대중주의도 문제이다. 그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엘리트주의가 대안은 아닐 것이다. 는 한국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내세우고 있기에 그걸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어떤 쪽의 선전 구호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동원되지 않을까 두렵다. 영화는 때로 입장과 태도를 명확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 는 정치의식이 채 정비되지 않은 세대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이 어느 쪽으로든.
한국 영화계에서 연상호는 가장 불온한 인물이 됐다. 는 개봉 하루 만에 21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제작비 200억 원이 들었다. BEP는 400만이다. 해외 시장에서 ‘완판’됐다는 걸로 보아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오동진 ohdjin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