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가 노동자 의식을 바꾼다는 비관의 함정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번 이란 침략 전쟁 직전까지 대한민국 주식 시장은 유례없이 급상승해 왔다. 최근 급등락을 반복 중이지만 주가지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주가지수의 상승이 곧바로 사회 전체의 행복 지수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급격한 팽창 뒤에는 필연적으로 명암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우선 빚내서 투자 하는 레버리지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자산 가격의 우상향에 매몰되어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를 끌어다 쓴 이들은, 시장의 작은 변동성에도 삶의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가 급등락에 일희일비하며 스마트폰 화면에 24시간 매달리면 삶은 불안정해지기 쉽고, 이는 공동체적 유대나 개인의 내면적 평화를 잠식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주식 시장의 구조적 경향인 부익부 빈익빈 의 우려도 간과할 수 없다. 더욱이 일부 언론은 최근 발생한 이란 침략 전쟁이라는 인류사적 비극 앞에서조차 인명 살상에 대한 인도주의적 걱정보다는, 주가에 미칠 파장과 방산주 투자의 기회만을 강조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자본의 논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압도하는 씁쓸한 단면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들만 강조하며 주식 시장과 주식 투자자의 확대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의 기계적 접근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주로 진보 언론의 기자나 지식인 필자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태도는, 대부분이 청년과 노동자라는 1400만의 주식 투자자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9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 서초구·강남구 유세에서 코스피 5000 시대 를 들어 보이며 경제회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5.5.29 연합뉴스
이들은 투기적 욕망에 빠져 노동자 정체성보다 투자자 정체성을 앞세우며 금융자본의 포로가 되는 신자유주의적 인간형이 많아지면, 사회 진보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줄어들 것 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낸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 성과가 못마땅한 일부 보수 언론까지 가세하여 거품 경제 혹은 도박판 사회 라는 딱지를 붙이며 맞장구를 친다.
이러한 주장이 도식적인 이유는 인간의 정체성을 단일하고 고정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노동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투철한 노동계급 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듯, 소액 주식 투자를 한다고 해서 곧바로 자산가 의식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인간은 노동자이자 소비자이며, 시민이고, 동시에 소액 투자자일 수 있는 다중적 정체성을 지닌 존재다.
이러한 정체성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복잡하게 중첩되며 개인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더구나 계급은 주식 보유 여부보다는 생산관계 속에서의 위치나 생산수단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 능력에 의해 규정된다. 어떤 노동자가 여유 자금 몇백만 원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고 해서 그가 자산가 계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식 투자 수익만으로 노동 소득을 거뜬히 대체하게 되지 않는 한, 그는 여전히 임금 수준, 고용 안정, 노동 조건, 장바구니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오히려 주가 상승보다 물가 상승률이 더 높거나, 고용 불안으로 소득 자체가 끊길 위험에 처한다면 그는 투자자로서의 이익보다 노동자로서의 생존권을 우선시할 것이다.
따라서, 힘겹게 여유 자금을 마련한 노동자가 노후를 위해 주식 투자를 하거나, 낮은 예금 금리에 실망한 노동자가 연금을 주식형 펀드로 돌려 수익을 얻는 행위를 투기적 욕망 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치게 도덕주의적이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과 낮은 소득에서 벗어나게 되면 단결과 투쟁에서 멀어진다는 기계적 태도는 과거부터 반복됐지만, 그 소재는 계속 바뀌었다.
이란 사태 전후 코스피 추이, 자료 : 연합인포맥스, 한국거래소
먼 과거에는 노동자가 컬러 TV와 냉장고를 가지게 되면 혁명성을 잃을 것 이라 걱정했고, 이후에는 자가용과 자기 소유의 아파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역사는 자가용을 끌고 다니고 아파트를 소유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권익 찾기가 멈추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노동자의 삶의 조건과 욕구의 대상과 수준이 달라진 것일 뿐, 그들의 본질적인 위치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속에 자가용과 자기 집을 가지고 주식 투자도 하는 노동자들도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일부 진보 좌파 지식인들은 이것을 걱정의 눈으로 봤다. 정반대로 보수 우파나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을 환영의 눈으로 봤다. 1980년대 영국 신자유주의의 선봉이었던 마거릿 대처 총리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며 그 주식을 노동자들에게 우선 배정하면서 모두가 자산가인 민중 자본주의 시대가 왔고 더 이상 계급투쟁은 낡은 것이 됐다 고 주장했다.
공공 주택을 헐값에 매각하여 노동자들을 부동산 소유주로 만드는 정책도 병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처의 기대와 달랐다. 결국 주식 시장에서는 자본력이 큰 큰손 들만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높아지는 금리와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민중 자본주의 의 환상은 깨졌고, 노동자들은 대처 정권에 등을 돌렸다.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시민들의 주식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들에 속하지만, 동시에 노동조합 조직률과 사회 복지 수준, 사회 운동의 활력 또한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이들에게 주식은 기업의 이익을 사회로 환원하고 연금 기금을 통해 기업의 의사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통로로 인식되기도 한다.
반면, 주식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국가가 금융을 완전히 통제하는 나라들에서 금융 자본의 유혹이 사라졌다고 해서 더 활발한 민주주의나 노동운동이 꽃피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국가가 모든 자원을 독점하는 권위주의적 독재 체제인 경우가 많다. 즉, 문제는 단순하지 않고 결과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코스피 6000포인트 돌파 기념 세레머니를 펼치고 있다. 2026. 2. 25 [공동취재]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현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집단적 권리를 얻어가는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역설적으로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계층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주식 투자 등을 꿈꾸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영세 사업장의 미조직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낱낱이 원자화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2020~2021년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주식 투자자는 2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140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와 청년들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거래를 하는 주식 대중화 시대 가 열린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소액 거래와 투자를 하는 디지털 세대 청년들은 이를 불투명한 미래에 대비하는 일종의 생존 전략 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동학개미 , 서학개미 현상이 과연 사회 운동에 부정적이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2025년, 신극우 세력과 윤석열 쿠데타를 막아내며 민주주의를 수호한 빛의 혁명 의 주역들은 바로 이들이었다. 주식과 수익에만 몰두하는 투자자 정체성 이 민주주의를 함께 지키는 시민적 정체성 을 잠식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런 변화와 현상을 부정적,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고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 많은 사람들이 주식 시장에 참가하게 됐을까? 단지 시장의 변화나 정부 정책, 투기적 욕망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대다수의 시민은 낮은 임금과 불안한 소득, 그리고 구멍 뚫린 사회 안전망에 대한 절박한 보완책으로 주식 시장을 택한다.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예·적금은 자산의 가치를 지키기에도 역부족이다. 부동산 투기는 수억 원의 종잣돈이 있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 가능해야만 뛰어들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 로 여겨진다. 그래서 소액으로도 접근 가능하고, 은행 금리보다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은 많은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지로 다가오고 있다. 주가가 올라가는 추세이기에 기대는 더 커졌다.
물론 주식을 보유하게 되면 자기가 투자한 기업의 이익에 민감해지고, 이는 친기업·친시장적인 관점을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가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잘되어 성과급을 더 받고 고용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주주로서 기업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를까? 기대의 핵심은 기업이 잘 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이익이 나에게도 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5.6.11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결국, 주식 투자라는 현상을 기계적으로 바라보고 도덕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불안과 기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낮은 임금과 소득, 불안한 노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에 공감하면서, 그것이 금융 시장의 불안정과 각자도생의 논리, 부채의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정책적 요구들로 이어질 수 있다. 첫째, 기업 의사 결정의 투명성과 민주적 통제가 강화되어야 한다. 둘째, 회계 부정, 주가 조작, 그리고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초단기 투자와 투기성 매매를 억제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셋째, 연금 펀드의 공공적 통제와 윤리적 투자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투자 수익에 대한 적절하고 누진적인 과세 체계를 확립하여 자산 불평등을 억누르고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
주식 시장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소수가 부를 독점하지 못하게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개미 투자자는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도모하고 있는 노동자이자 시민이며, 쿠데타에 맞서 광장에 나선 민주주의의 주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택은 더 공정하고 안전한 조건에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