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페이지투미   페이지투미 플러스
페이지투미 홈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모아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노무현 동지·이재명 멘토 이해찬 전 총리 끝내 별세

노무현 동지·이재명 멘토 이해찬 전 총리 끝내 별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가 3일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취임식에서 취임사 하고 있다. 2025.11.3. 연합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참여정부 국무총리 등을 지냈던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오후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2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출장을 떠났다. 이미 출국 전부터 몸살 기운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오전 몸 상태가 안 좋다는 판단으로 귀국 절차를 밟았으나, 오후 1시쯤 귀국을 위해 베트남 떤선녓 공항에 도착한 이후 호흡 곤란으로 호찌민 탐안(Tam Ahn)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이송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을 보고 받은 이재명 대통령은 곧바로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를 베트남 현지에 급파했고, 조 특보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이해식·이재정·최민희·김현 의원도 베트남에 도착해 이 수석부의장을 문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현지 심장 전문 의료진은 심근경색 진단을 내리고 이 수석부의장에게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시행했지만, 끝내 의식 회복을 하지 못하고 현지시간으로 25일 오후 2시 48분 숨을 거뒀다. 민주평통은 현재 유가족 및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 이라며 확정되는대로 다시 알려드리겠다 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고, 유가족분들께 따뜻한 위로를 부탁드린다 고 덧붙였다.   1990년 6월 당시 지낸 평화민주당 의원 시절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의를 펼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수석부의장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투사이자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민주주의 역사의 산증인이다.  1972년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 박정희 유신 체제에 맞서 학생운동에 투신한 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상황실장을 맡으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끌어내는데 앞장섰으며,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 들어가 정계에 입문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에서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한 뒤 17대까지 내리 5선을 지냈다. 1989년 국회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살인마 전두환! 이라고 외친 일화는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초선 의원 시절, 노동 분야 입법 활동에도 주력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이상수 전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 로도 불렸다. 이 수석부의장의 당시 보좌관이 유시민 작가였다. 1995년 민선 1기(초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았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기획본부장을 맡아 초선 시절 함께 활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2003년 국민참여통합신당 창당 기획단장을 맡아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끌었고, 2004년 고건 전 총리에 이어 노무현 정부의 두 번째 총리로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과 맞담배 를 피울 정도로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다.   2004년 6월 30일 당시 신임 국무총리에 임명된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정동영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이후 손학규 체제가 출범하자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됐고 대표를 맡았으나,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 압박을 받은 끝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4∼2018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 역할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앙숙이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됐고, 탈당 후 무소속으로 세종에 출마해 당선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당선 후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 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참여정부 시절 함께 했던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며 당청 관계를 공고히 했으며,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180석 압승을 이끌었다. 1987년 6공화국 체제 출범 이후 민주진영 최대의 승리였다. 이 수석부의장은 마지막 소임 이라고 밝힌 당 대표 임기가 끝난 뒤 2020년 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했으며,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다. 지난해 10월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돼 이재명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 입안을 뒷받침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2026.1.2. 연합뉴스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