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츠 이란 협상력에 미 굴욕…전략 부재 비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왼쪽 두 번째) 독일 총리가 27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프로젝트의 날을 맞아 마르스베르크의 카를루스 마그누스 김나지움(중고등학교)을 찾아 학생들과 패널 토론에 참여해 학생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2026.4.27. 마르스베르크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전체가 이란 지도부, 그것도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의해 굴욕을 당하고 있다. 미국이 전략 없이 이번 전쟁에 돌입한 것은 꽤 명백하다. 그 때문에 분쟁을 끝내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27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프로젝트의 날을 맞아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마르스베르크의 카를루스 마그누스 김나지움(중·고등학교) 강연을 통해 이런 견해를 밝히며 작심한 듯 이란은 예상보다 훨씬 강하고, 미국은 협상에 임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전략이 없다 고 비판했다. 메르츠 총리는 학생들과의 패널 토론 자리에서 이런 분쟁에서 문제는 항상 동일하다. 단지 시작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빠져나와야 한다 며 우리는 이를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고통스럽게 경험했고, 이라크에서도 그랬다 고 설명했다. 두 분쟁을 통해 미국 행정부나 지도자들이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고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메르츠 총리는 또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어떤 철수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워싱턴 당국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의 깊은 분열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의 관계는 이미 우크라이나 등 여러 문제로 인해 곪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메르츠 총리는 특히 이란인들은 매우 능숙하게 협상을 진행하고 있거나, 혹은 교묘하게 협상을 하지 않고 있다 며 미국 대표단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향해 떠나게 만들어 놓고 결국 빈손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고 지적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왼쪽부터) 의회 의장,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굴람호세인 모스나이 에제이 사법부 수장이 일치된 모습을 보였다고 이란 정부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밤 엑스(X)에 올린 사진. 이란 정부는 사진설명으로 이란에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이란인이자 혁명적이며, 국민과 정부가 철저히 단결하고 최고혁명지도자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것을 통해 침략자이자 범죄자를 후회하게 만들 것 이라고 달았다. 이란 정부 X 갈무리
메르츠 총리는 아울러 현 상황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며 우리 역시 이번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고, 우리 경제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유럽에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얼마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이란 전쟁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직접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메르츠 총리는 이어 만약 전쟁이 이처럼 이어지고, 점점 더 악화할 것을 알았다면 그에게 좀 더 강하게 말했을 것 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메르츠 총리는 독일이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재개를 돕기 위해 기뢰 제거 함정을 파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다만 이를 위해서는 교전이 우선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5년째에 접어든 우크라이나전 종전과 관련한 견해도 밝혔다. 메르츠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향후 러시아와 평화 협정에서 자국 영토 일부에 대한 통제를 잃을 가능성을 수용해야 할 수도 있다고 시사하고, 이런 양보를 유럽연합(EU) 가입 전망과 연결지었다. 그는 언젠가 우크라이나가 휴전 협정, 바라건대 러시아와 평화 조약을 맺길 바란다 며 그 때,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가 아닐 수도 있다 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렇게 양보가 불가피함을 자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투표에서 지지를 받고자 한다면 국민들에게 EU 가입 가능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메르츠 총리는 EU 가입 후보국 상태인 우크라이나가 조속한 EU 가입을 이루려면 우선 부패 척결과 법치주의 확립 등 EU 가입을 위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7년 1월 1일 가입을 목표로 했지만, 불가능하다. 2028년 1월 1일도 현실적이지 않다 고 덧붙였다.
메르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정회원 대신 옵서버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이런 방안은 지난 23∼24일 키프로스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트루스소셜에 메르츠 총리를 겨냥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 고 응수한 뒤 메르츠 총리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고 쏘아붙였다. 그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전 세계가 인질로 잡힐 것 이라며 나는 지금 이란에 대해 다른 국가나 대통령들이 오래 전에 했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일이 경제적으로나 다른 면에서나 부진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 도서관을 찾은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와 면담을 하기 전에 손을 맞잡고 있다. 아라그치 장관은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된 틈을 타 미국에 대항하는 레드 라인 을 잇기 위해 지난 24일부터 파키스탄과 오만, 러시아 3개국 순방에 나섰다. 2026.4.27 크렘린궁 제공 UPI 연합뉴스
이란 해협부터 열고 종전 협상 에 트럼프 시큰둥
사실 메르츠 총리의 발언 대부분은 현재 세계인 대부분이 직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란 전쟁을 끝내려는 협상은 교착 상태다. 이란은 미국에 우선 호르무즈 해협을 열고 종전에 합의한 뒤에 핵 협상을 재개하자는 제안을 전달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해협을 재개방하는 등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내놓은 최신 제안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참모들에게 밝혔다 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안보 참모진을 소집해 이란과의 협상 교착 타개 방안을 논의했는데, 각료들에게 이란의 핵협상 연기 제안을 수용할 뜻이 없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앞서 액시오스에 따르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최근 중재국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에 이런 내용의 제안을 전달했다. 이란은 이와 함께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법적 통제권 인정, 전쟁 피해 배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 방지 보장, 이란 해상 봉쇄 해제의 4개 조항을 자국 종전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해상 봉쇄를 통해 이란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다수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해상 봉쇄를 이어감으로써 이란의 협상력을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린 뒤 공세적 핵협상에 나서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행정부 일각에서는 미국이 해상 봉쇄를 한두 달 지속할 경우 가동이 강제로 중단된 석유 인프라가 크게 손상되기 때문에, 이란이 결국 저자세로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핵 관련 두 나라의 물밑 협상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NYT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 25일 파키스탄을 통해 우라늄 농축 5년 중단 후 5년간 저수준 농축 및 고농축 우라늄 희석 후 절반 국내 보관, 절반 러시아로 이관 제안을 미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즉각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첫 평화 협상 때 제시한 우라늄 농축 20년 중단, 고농축 우라늄 440㎏ 전량 반출 주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자 이란은 협상의 순서를 바꿔 우선 호르무즈 해협을 열고 종전 합의를 이룬 뒤에 핵 관련 논의를 이어가자는 제안을 내밀었으나, 승기를 잡았다고 보는 미국은 이를 또다시 뿌리친 것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특히 이란 주장은 이란과 협의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공격하거나 비용을 부과하겠다 는 것 이라며 이란이 말하는 해협 개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한편 이란 역시 장기전을 준비하는 기류다. 미국이 해상 봉쇄를 풀 리 없다고 보고, 파키스탄과 튀르키예 방면 육로 교역이나 카스피해를 통한 러시아 물자 수출입 등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이란이 끝까지 버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먼저 타결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지난 2월 1일(현지시간) 촬영돼 닷새 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실린 인공위성 사진. 이란 남부 이스파한 핵 관련 시설은 지난해 6월 6주 동안 집중 공습을 당했는데 그 폐허 위에 지붕이 너다섯 군데 눈에 띄어 새로운 건물에서 핵 관련 활동이 벌어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플래닛 랩스 로이터 자료사진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에 우위를 점하고 자신감을 갖는 배경으로는 여러 요인들을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도덕적 우위다. 전쟁을 공연히 시작한 것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속삭임에 넘어간 트럼프와 미국이었다. 둘째 미군이 보유하던 첨단 무기들의 재고가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NATO를 비롯해 미국 편을 들며 적극적으로 돕는 나라가 없다.
여기에다 지난해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들을 집중 타격한 ‘12일 전쟁’ 이후는 물론 최근 전쟁까지 이란 핵시설들이 공습을 받았지만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대부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일 이란의 일부 연구시설과 핵 관련 인프라는 파괴됐지만,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주요 수단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이를 지렛대 삼아 이란이 버티기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무기급에 근접한 고농축 우라늄 약 440㎏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이스파한 핵시설 지하 터널에 보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백악관에서 이란 관련 업무를 맡았던 에릭 브루어는 이란은 이 물질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이라며 (전쟁 발발 전인) 지난 2월 협상 당시보다 이란의 요구 수준이 훨씬 높아질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이란은 원심분리기와 농축 우라늄 비축량 등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나탄즈 인근 지하 터널 등 일부 시설은 미군의 강력한 무기로도 타격이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한때 지상군을 투입해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직접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작전의 위험성과 전쟁 장기화 가능성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래저래 미국의 손발은 묶여 있고, 시간은 이란의 편으로 보인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이란인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인식한다는 점이 이들의 결속과 저항을 설명하는 틀이 된다. 중국의 진나라보다 250년 앞서 인류 역사에최초의 제국인 페르시아 제국을 이었다는 우월감을 많은 서구인들, 특히 미국인들은 놓치고 있다. 서아시아와 지중해까지를 경영해 본 민족이다. 이들은 주변 중동, 아랍 국가들과 완전히 다른 정체성과 자부심을 형성한다. 신정 체제를 구축했지만, 페르시아 국가 운영 전통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결속력과 똘똘 뭉쳐 저항하는 힘을 표출한다.
이란의 엘리트층은 단순한 관료 집단이 아니라 지식인 집단이란 점을 잊어서도 안 된다. 이들은 외교와 안보 전략에서도 장기적 사고와 이념적 일관성을 유지한다. 특정 인물을 제거한다고 해서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집단적으로 대처한다. 군사력과 자원만 아니라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자부심과 시아파 집단의 정체성, 이런 요소들을 내면화한 엘리트 집단이 독특한 국가 시스템을 형성하며 스스로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인식하며 서구 중심 질서에 대안적인 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