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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무는 신령하다
[뉴스]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부리의 당산나무.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 나온 팽나무 보호수. 세 살 먹은 어린애가 여든 살 노인에게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험한 말을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다 혀를 찰 것이다. 어린애라 차마 욕은 못 하겠고 어떻게 가르쳐 보려고 이리저리 달래는 게 고작이다. 지금 인간이 나무에 하는 짓이 똑 이렇다. 세상을 알기 시작한 지 겨우 몇십 년 된 인간이 수령 몇백 년이나 된 나무를 마치 짐짝 부리듯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구 베어버린다. 만약 그 나무가 자기보다 훨씬 지혜로우며 세상에 널리 도움을 주고 신령하다는 사실을 알면 당연히 함부로 베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신성한 나무에 하는 짓을 보면 백번 망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안 망했다면 그 무례함으로 반드시 망할 것이다. 부암동 은행나무까지 나무 관련 에피소드 3개 나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지만 지난 10년 동안 내가 직접 겪은 세 개의 사건이 있다. 하나는, 이웃 마을 입구에 조상들이 외부의 나쁜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심어놓은 노송 몇 그루를 땅 주인이 팔려고 하다가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포기한 일이다. 두 번째는, 전라도 완주 어느 계곡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주민의 집 앞 도로에 가로수 대여섯 그루가 있었다. 그곳은 깊은 계곡이라 집 마당과 도로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없었다. 그런데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한 종교단체의 사주를 받은 주민이 그 가로수를 가지고 민원을 넣었다. 공공 재산인 가로수가 개인 집의 담장처럼 이용되고 있으니 철거해달라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그 민원을 받아들여 집주인과 시민단체의 치열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가로수를 뽑아버리고 대신 그 자리에 흉물스런 콘크리트 경계담을 세웠다.   제초제가 주입돼 말라가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미술관 옆의 은행나무. 서울 종로구 세 번째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서울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이다. 부암동 김환기 미술관 옆에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어느날 미술관 측에서 나무로 인한 담장 붕괴를 이유로 나무에 독극물을 주사해 죽이려 했다. 아직은 살아있으나 목숨이 간당간당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동네 주민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외부 인사들이 모여 현재 대처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의 천연기념물 지정 느티나무.  나무위키  살아남은 나무와 죽거나 죽어가는 나무 첫 번째 사건은 마을공동체에 기여하는 나무의 공로가 인정되어 살아남은 경우이고, 두 번째 사건은 이미 망가진 마을공동체로 인해 나무가 희생된 경우이다. 세 번째는 도시 지역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건으로, 주로 상점이나 시설물 주변의 나무들이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미관을 해친다, 전망을 가린다, 그늘이 진다, 벌레가 몰려든다, 뿌리가 파고든다, 낙엽이 떨어진다... 멀쩡한 사람일지라도 트집을 잡으려면 한이 없는데 하물며 말 못 하는 나무임에랴. 도시 개발 과정에서 이런 이유로 사라져 간 나무가 전국적으로 수십, 수백만은 될 듯하다. 그렇게 나무를 베어놓고도 위령제 한 번 제대로 했다는 얘기를 못 들어봤다. 이번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은 그동안 있었던 나무들의 희생을 다 모아서 인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다 소중하다는 ‘생명권’ 개념을 사회에 알리는 계기로 만들자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만약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면 특정 지역을 개발할 때 ‘생명민회’ 같은 것을 열어 개발 구역에 있는 뭇 생명들의 발언을 들어보는 일도 가능해진다. 사실 이것은 20여 년 전 새만금 갯벌이 메꾸어질 때 일단의 종교인들이 ‘삼보일배 순례’를 하면서 제기했던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이런 모든 시도가 무지몽매한 행정력 앞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과연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나무위키 오래된 나무에서 느끼는 신령한 힘 우리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아주 오래 산 노인을 찾아가곤 한다. 그런데 신령스럽다고 말할 때의 ‘신령’은 무엇일까? 신령이라는 말은 아주 오래된 나무나 큰 바위에는 붙여도 사람에게는 잘 붙이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인간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행체를 타고 우주 공간을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이지만 오래된 나무나 바위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밝혀내지 못할 수도 있다. 전통 지식에 의하면 그것을 ‘기’ 또는 ‘에네르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양자물리학이 등장한 이래 그 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비주류 과학자들 사이에서 ‘Subtle Energy’(신묘한 힘) 또는 ‘Life Force’(생명력) 같은 단어가 거론되고 있는 정도이다. 여기서 이것을 길게 논의하지는 않겠으나 아무튼 과학자들도 오래된 자연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힘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틀림없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삼신당의 당산나무 거대한 나무 기운 앞에 엎드려 절한 두 번의 경험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나무에게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엎드려 절한 적이 두 차례 있었다. 한번은 주역 강사 김재형 씨가 전남 곡성의 산꼭대기에 살 적에 그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산에 오르다가 갑자기 거대한 소나무를 마주쳤을 때였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나무들의 키가 작아지고 있었는데 작은 언덕배기를 넘자마자 갑자기 큰 소나무 한 그루가 하늘로 치솟듯이 서 있었다. 그야말로 주위를 압도하는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나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세 번을 연거푸 절하고 나서야 찬찬히 나무를 관찰할 수 있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있었으면 더 머무르고 싶었으나 재형 씨가 저 앞에 가고 있어 바로 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슬로 라이프’ 운동의 창시자 쓰지 신이치 선생의 안내로 일본을 여행하던 중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때는 일행이 여럿이어서 개별 행동 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일본은 전쟁의 참화를 덜 겪어 지방마다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남아 있다. 마을 길을 지나는데 가는 방향의 왼쪽에 큰 소나무가 보였다. 아마도 마을의 수호목인 듯싶었다. 마을을 빙 돌아 나오면서도 가이드가 도통 그 나무 쪽으로 가질 않는 것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간다고 말해놓고 일행을 빠져나와 그 나무 쪽으로 갔다. 뻗은 가지에 비해 몸통이 거대한 아주 오래된 소나무였다. 금줄이 쳐진 것으로 보아 마을의 당목이 틀림없었다. 나무 앞에 마주 서서 바라만 보는데도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보니 일행 중 누군가가 내 뒤를 쫓다가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인간이 잃어버린 나무와의 교감 능력 이런 얘기를 하면 내가 나무에 부복할 준비를 하고 다녔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부흥회에 모인 기독교 신자들이 성직자의 가벼운 터치에 픽픽 쓰러지듯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생명평화결사’에서 도법 스님과의 인연으로 100배 절 명상을 좀 하기는 했어도 나 혼자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무 앞에서 그 두 번의 절은 어떤 에너지 또는 힘에 이끌려 저절로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런 쪽으로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나무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는 힘들다. 평소에 관심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원시시대에 살았을 때는 누구나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인간 중심 문명을 일구면서 그 능력들을 다 잃고 말았다.   느티나무.  나무위키 나무는 우주의 안테나 나무는 우주의 안테나이다.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거대한 에너지 기둥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에너지는 커진다. 무당의 한자어 巫(무)를 그냥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가운데 수직선은 ‘신목’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대나무, 시베리아에서는 자작나무, 러시아에서는 잣나무가 주로 등장한다. 근래에 나는 갑작스레 건강을 잃었다가 ’어씽‘(Earthing, 接地 접지)을 통해 원기를 회복했는데 사실 나무를 껴안는 것이 더 강력하다. 땅의 전자기파가 하늘로 치솟는 통로가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다 안테나이다. 인간의 삶이 특정 별자리의 영향 받듯이 나무 역시 특정 별로부터 오는 빛을 먹고 자란다. 인간은 수목의 ’생명 네트워크‘에 깃든 의존적 존재 그런데 나무는 사실 지상부보다 땅속뿌리가 더 대단하다. 보통은 지상부에 보이는 만큼의 뿌리가 땅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포아풀과의 식물의 뿌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상부가 겨우 50㎝밖에 안 되는데, 땅속에 뻗친 뿌리를 끊어 한 줄로 이으면 그 길이가 무려 600km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뿌리들은 그사이에 각종 균류와 미생물들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이런 풀과 나무들이 대지를 가득 메우고 하늘로 두 팔을 뻗고 있는 모습은 수목이 관장하는 지구라는 ’생명의 공동체’를 우주 공간에 둥실 떠올린 것과 같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과 곤충은 수목이 만든 거대한 ’생명의 네트워크‘ 속에 깃들어 사는 ’의존적 존재‘이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에 있는 물건리 방조어부림.  경남도민일보 돈에 팔려 사라지는 오래된 나무들 세계 많은 나라의 민족 신화와 전설에도 오래된 나무들이 등장하는데 그 의미가 다 비슷하다. 나무는 생명의 원천이자 우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신목으로 묘사된다. 내가 살았던 전남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에도 마을 주위에 12그루의 오래된 당목이 있어서 과거에는 정월 대보름날에 나무마다 돌아다니며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름하여 ’열두 당산제‘이다. 지금은 그 가운데 겨우 몇 그루만이 남았고 당제를 지낼 굿패와 어른들도 다 사라졌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다 몰아낸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남산리 마을 한 가운데에 오래된 사당이 하나 있다. 사당의 뒤에는 높이 10m 정도의 야산이 있고 그 산의 늠름한 소나무들이 사당을 에워싸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는데 산자락 아래에 소나무 한 그루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알아보니 사당을 관리하는 남자가 돈이 궁해 벌목업자에게 그 나무들을 다 베어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관리자가 문중 어른들에게 허락을 얻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나는 벌목 현장을 인터넷에 올려 그 소나무의 역할과 중요성을 알리고 모금을 했다. 사당 관리인의 궁한 처지를 완화시켜주기 위해. 며칠 안 돼 500만 원이 모였고 나는 그 돈을 가지고 벌목업자와의 계약을 무효화시키고 나머지 돈을 관리인에게 주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공동체에 우리가 미덕으로 알고 있었던 여러 가지 규범과 윤리 등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본주의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당 관리자로부터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런 일이 벌어져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 혼자 분기탱천하여 북 치고 장구 쳤을 뿐이다. 돈이 장땡이다. 돈만 많이 주면 사당이고 당목이고 다 팔아넘기는 세태가 되었다. 내 농장에 자주 놀러 왔던 함평 사는 한 녀석은 마을 으슥한 곳에 있는 당목이나 오래된 나무들을 업자에게 팔아넘겨 용돈을 마련하고 있었다. 적막한 시골인지라 누가 와서 나무를 베어가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존재의 신령함을 지속적으로 지운 인간 역사 물질주의에 찌들어 사는 인간들이 나무의 신령함을 알 리가 없다. 신령함은 몰라도 인간이 험난한 자연계의 먹이사슬 속에서 온전히 목숨 부지하고 사는 데 나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무에 고마워하기는커녕 여전히 필요할 때 가져다 쓰는 자원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아무리 만지고 들여다보아도 신령함이 느껴지지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나무가 신령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신령함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이 문제다. 태곳적 인간이 처음 등장하여 모듬살이를 시작했을 무렵 인간은 주위의 모든 생명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연히 그들을 경계하고 일부에게는 경외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후대의 인간들은 당시의 상황을 ’애니미즘‘(Animism)으로 설명한다. 세상 모든 것이 신령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샤머니즘이라는 원시종교 형태로 나타나고 오늘날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일부 똑똑한 인간들이(사실은 권력 의지가 강한 사람들) 특별히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을 가지고 종교를 만들어서는 거기에 신령함을 몰빵시켜 버렸다. 그래야 종교를 틀어쥔 사람들이 마음대로 백성을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수천 년 동안 계속되다 보니 사람들은 신령함을 종교에서나 찾고 나머지 세계는 ‘세속’이라 부르며 인간중심의 세계를 아무런 제지 없이 만들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이 분열의 세계를 더 악화시켰다. 신령함에 가격이 매겨지고 다른 상품들처럼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는 가치 전도가 일어나 돈으로 신령함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돌이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존재의 신령함을 지속적으로 지워내는 과정이었다.   충북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의 천연기념물 지정 느티나무.  나무위키  나무에게 인사하고 외쳐보자 고맙습니다” 주식값의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사회에서 나무의 신령함을 얘기하는 것이 생뚱맞기는 하지만, 이 신령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내가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죽을 수도 있다. 신령함을 끝없이 부정하다가 모두가 모두의 적이 되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죽는 것도 알 수 없지만, 기후 이상과 빈발하는 자연재해로 죽을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졌다. 존재를 부정하면 반드시 보복이 들어온다. 우리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는데, 지금의 상황은 꿈틀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니, 대자연은 꿈틀하는 정도만으로도 수많은 인명을 나락에 빠트릴 수 있다. 이런 불확실한 고난을 면하려면 먼저 눈앞에 있는 생명의, 그중에서 특히 나무의 독립성과 존엄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이 나무와 숲에 의존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그것을 거꾸로 자신의 소유물이나 자원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부터라도 길을 가다가 나무를 마주치면 먼저 인사하고 고맙습니다”를 외쳐 보자.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대화가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나무의 신령함을 알아차리게 되면 아마도 이 세상의 전쟁과 폭력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어떻게, 감히, 신령한 존재를 함부로 죽인단 말인가.황대권 문명전환 hdk@mind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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