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아이들을 농촌으로 유학 보내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동진 마을활동가
밭일 하며 땀을 흘릴 때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그 바람에 기운을 얻어 힘을 내곤 한다. 그러면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동요 ‘산바람 강바람’(윤석중 작사, 박태현 작곡)이다. 어릴 적 배운 노래를 지금도 어렵지 않게 흥얼거리는 것을 보면 어떤 연유로 내게 깊게 각인된 듯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가보지도 못했을 산촌 나무꾼의 노고에 공감하고, 그를 보듬어 주는 바람에 대신 감사함을 표현하는 노래. 전국의 어린이들이 이 동요를 불렀다면 하늘도 감동해서 바람 한 점 불어주었을 것 같다는 유쾌한 상상도 해본다.
이제는 잊혀져 버린 도-농 공동체 ‘살림의 동요’
이 동요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경험적으로 낯설어도, 촌민과 도시민을 한 자연 속에서 동병상련을 느끼는 공동체로 엮어주었구나 하는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이 동요가 발표된 해가 1936년이었다고 하니, 이 동요 속 ‘나무꾼’은 가족을 위해 땔감을 구하려 애쓰는 방방곡곡의 ‘아빠’의 모습이기도 했을 것이다. 도시 나온 자녀들이 고향에서 자녀 학비, 생활비 만드느라 애쓰는 아빠를 그리는 마음이 담겼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무꾼’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 정겨운 가사가 만들어졌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촌과 도시는 연결돼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산바람 강바람’ 동요를 잘 모른다. 비록 교과서에 실려있어도 수업에서 빠지거나, 가르쳤어도 아이들의 공감을 못 얻고 있는 모양이다. 전 국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을 때 만들어진 동요가 이제 고작 4% 정도가 농업인으로 살고 있고, 전체인구의 90%가 도시에 살고 있는 시대인데, 공감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미련인지도 모르겠다. 동심 속에 촌과의 연결고리가 없어지는 것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 애먼 동심을 말머리로 꺼낸 것은 촌과 도시의 관계가 공생관계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설령 동요 속에 있는 촌과 도시의 동병상련의 공동체성이 사라지더라도 현실에서조차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 소멸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소멸 이전에 파멸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후열대화로 인한 식량위기는 이제 단골뉴스가 됐다. 식량위기 시대에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도시민의 관계가 공생관계가 될 수 있을까? 말이 쉬워 공생이지 4%의 생산자와 96%의 소비자가 공생의 방정식을 만들 수 있을까? 공생보다는 압도적 다수의 힘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더 채우려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산업화, 도시화의 질주 속에서 더 싼 먹거리를 위한 노동력을 제공했던 기층구조로서의 역할을 떠맡아왔던 촌을 계속 그 자리에 두고자 하는 논리들이 더 횡행하지 않을까?
가평민들레농촌유학센터에 참여한 학생들이 활동을 마치고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농산어촌유학전국협의회 홈페이지
청량산풍경원산촌유학센터에 참여한 학생들이 왕겨를 퍼 옮기고 있다. 농산어촌유학전국협의회 홈페이지
촌 소멸, 저출생, 식량위기로 폭발하는 촌에 대한 압제
지난 4월 12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면서 “참 불편한 진실인데, 농산물 등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통화 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기후변화 등이 심할 때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 같은 정책을 계속 수립할 것이냐, 이게 국민의 선택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라고 했다. 이 발언 속에서 농부는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다. ‘국민의 선택’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4:96의 삶의 조건을 가진 ‘개방형 통상국가’ 대한민국에서 그 선택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뻔하지 않은가?
식량위기뿐만이 아니다. 에너지와 쓰레기 문제에서도 역시 촌과 도시는 생산지와 소비지로, 발생지와 매립지로 이미 이해 충돌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촌과 도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 이해관계 속 갈등은 거국적으로 압제돼왔고 도시는 그 수혜지였다. 그러나 그동안 잠재되었던 갈등은 결국 촌소멸로, 저출생으로, 식량위기로 폭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전의 산업화, 도시화, 개방형 통상국가의 성장 패러다임은 요지부동인 것처럼 보인다.
농촌 복원해야 도시가 살아나고 국가가 산다
그렇다면 공생에 대한 바람은 어찌해야 하는가. 촌과 도시의 연결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미 다양한 도농교류, 도농상생 정책들이 얘기되고 실행되고 있지만 내가 이 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정책은 농(산어)촌 유학이다. 농촌유학은 해외유학을 가듯 도시의 학생들이 농촌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농촌유학을 ‘서울 학생이 일정 기간 흙을 밟을 수 있는 농촌의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마을-학교 안에서 계절의 변화, 제철 먹거리, 관계 맺기 등의 경험을 통해 생태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소개하고 있다. 기간은 6개월에서 1년, 현재 전라남도, 전라북도, 강원도와 협력을 하며 초등학생과 중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추진 중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021년부터 전라남도교육청을 시작으로 2022년 전라북도, 2023년 강원 특별도까지 유학 지역을 확대해왔다. 2021년부터 지금까지 1천5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고 한다. 서울시 초등학생 수 약 38만명에 비하면 0.3%에 못미친다. 참여 학생 수를 더 늘려도 모자랄 판에 국민의힘이 다수당인 서울시의회는 학생들 학력 저하 등의 이유를 들며 농촌유학 예산을 삭감하고, 관련 조례인 ‘생태전환교육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도 폐지해 버렸다.
반면 소멸위기의 촌 지자체들은 농촌유학을 유치하기 위해 열심이다. 촌과 도시의 이해관계가 농촌유학에서도 갈리고 있다. 농민 4% 대 도시민 96%의 관점, 식량과 에너지 생산기지, 쓰레기 처리지로서 촌을 바라보는 관점을 깨지 않고는 어디서든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사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말마따나 ‘이제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다’. 하지만 그 생각이 기후재앙, 식량위기를 겪고 있는 해외에서의 식량수입으로 가서는 답이 없다. 바뀌어야 할 ‘근본적 생각’은 농촌에 대한 근본적 생각이어야 한다. <사회적 농부>(정기석 저)에서의 글을 인용하면, “오늘날 ‘사람사는 독일 농촌’을 만든 독일은 사회적 합의로 국가 최우선 과제를 이끌어 냈다. 농촌부터 먼저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농촌을 살리면 도시가 살아나고 마침내 국가가 살아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농촌은 ‘사람과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 이라는 독일 농정 철학은 비로소 완성된다.”
농촌유학은 미래세대를 위한 촌과 도시의 연결고리
이런 근본적 생각을 가진 도농의 연대를 어떻게 만들어 낼까. 그래서 농촌유학이 더욱 필요하다. 굳어버린 어른들의 관점을 바꾸는 것보다 미래세대에게 공동의 경험과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이들을 통해서 그 부모들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이, 그렇게 촌과 도시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더 평화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 판단으로는 서울시의 ‘생태전환교육 조례’가 폐지했다고 해도 ‘식생활교육은 국민이 영위하고 있는 식생활이 자연의 혜택과 식생활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라는 규정이 있는 「식생활교육법」에 근거해서도 농촌유학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서울시 전체 학생들이 농촌유학을 한다면 관계인구 증가,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도 역할을 해 농촌소멸 대응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다.
현 정부의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도 지난 3월 28일 <어린이 동아>와 함께 ‘농산어촌 유학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이 자리에 조희연 교육감을 비롯해 전국의 교육청 관계자들, 농식품부의 관계자들도 참석했다고 하니, 보수 진보를 떠나서 농촌유학 지원에 대한 국가적 공감대는 확보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농촌유학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는 지난 5월 24일 <프레시안>에 실린 “지방소멸 탈출을 위한 농촌유학, 새로운 바람이 분다” 글을 참고하면 좋겠다.
사실 농촌유학은 이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때 전라북도, 강원도 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처음 시작한 정책이다. 나는 당시 곽 교육감을 보좌하며 이 정책 추진을 담당했다. 과밀, 과잉의 도시에서 벗어나 촌의 생태적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라기를 바랐던 학부모들과 촌의 마을활동가들이 이미 제도권 밖에서 추진했던 도농교류,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서울시교육청이 제도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농촌유학 정책을 추진하면서 나는 귀촌에 대한 걱정을 좀 덜 수 있었다. 생태맹(盲)이었던 내가 그래도 농촌에 가서 할 일을 농촌유학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결국 내 공정귀촌의 시작은 농촌유학이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불타는 초가삼간에서 벼룩만 잡고 있을 텐가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농촌유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정귀촌이 필요하다. 얼마 전 감명 깊게 본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내가 특히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은 김민기가 연천군에서 은거할 때의 얘기였다. 그곳에서도 김민기는 낯선 촌민들의 ‘뒷것’으로 기꺼이 살았다. 촌민들과 어울리며 카메라 뒤에서 ‘뒷것’으로 지냈던 도시 지식인 김민기는 내가 바라는 공정귀촌인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런 ‘뒷것’들이 촌에 많이 필요하다.
내가 공정귀촌 제안을 하는 것은 이 제안이 특별한 해법이라거나 어떤 큰 희망이 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내 글을 본 분들은 알겠지만 난 인류의 미래에 그다지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 ‘거대한 전환’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환’ 같은 연착륙적 변화가 해답을 내기에도 늦었다고 난 생각한다. 이미 수십 년 안에 종말이 올 기후재앙의 문은 열린다고 생각한다. 넘지 말자고 약속한 지구 온도 1.5도를 앞당겨 올려버린 인류는 지금도 지구 온도를 6도로 올리는 시나리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때의 파격적 단절과 같은 삶을 살아도 재앙의 흐름을 멈출 수 있을까 말까 할 텐데 여전히 불타는 초가삼간에서 벼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벼룩을 안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냉소적으로 살고 싶지도 않고, 사는 동안 아는 것만큼은 실천하며 살고 싶고,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어서 더욱 내 몸을 다그치며 바쁘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게 도대체 몇 가지 일을 하느냐고 하는데 내게는 다 한 가지 일일 뿐이다. 미안함을 더는 일. 이런 일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우리 공동체가 기후재앙 앞에서도 좀 덜 외롭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논쟁이 있다. 모수 개혁을 통해 국민연금 고갈 연도를 늦춘다고 하는데 그게 2055년에서 2070년으로 15년을 늦추는 것이라고 한다. 그 연도를 본 고3 내 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참 한가한 것 같다.”
촌과 도시, 남녀노소, 다 함께 불러보자 ‘모두모두 자란다’
동요 속에서 우리의 삶이 다시 연결됐으면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으로 또 한 편의 동요를 혼자 불러본다. 이 글을 읽는 방방곡곡의 남녀노소가 함께 불러보길 바란다. ‘모두모두 자란다’(1950년대 곡. 김대현 작사, 박재훈 작곡)다. 정말 촌과 도시가 모두모두 잘 자라기를 바란다.
산산산 산~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들들들 들~에~서 곡식들이 자란다
조롱조롱 가~지에 과일들이 자란다
졸~졸졸 비 맞고 잘도 자란다
모두모두 자란다 시시때때 자란다
모두모두 자란다 우리나라가 자란다
맴맴맴 송~아~지 풀밭에서 자라고
꿀꿀꿀 꿀~돼~지 우리에서 자란다
새근새근 아~가는 엄마 품에 자란다
쭐~쭐쭐 젖 먹고 잘도 자란다
모두모두 자란다 쉬지 않고 자란다
모두모두 자란다 우리 살림이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