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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기레기론(論) - 세월호 10주기, 한국의 저널리즘

기레기론(論) - 세월호 10주기, 한국의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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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선생 탄생 123주년을 맞아 <씨ᄋᆞᆯ의 소리> 특집호에 게재된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민들레에 싣는다.  무능한 정부는 참사를 낳는다 지난 2014년 5월 15일,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계신 스승 리영희 선생과 그 외 몇 분을 참배하고, 나는 곧바로 팽목항을 향했다. 한나절 먼 길을 가는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살아남은 자들의 눈물이었다. 선수(船首)가 하늘로 솟아오른 사고여객선이 보였다. 세월호였다. 울컥했다. 가슴이 아팠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내남없이 겪은 통증일 것이다. 전국에서 찾아온 조문객들의 행렬은 국상(國喪)을 방불케 했다. 실은 국상이었다. 모두가 온몸 온마음이 적셔진 채 길게 묵념했다. “이 비극이 그저 악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이들이 삼킨 독백이었다. 그 통절한 슬픔과 분노는 10년이 지났다 하여 잊힐 리 없다. ‘사참위’(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3년 6개월 동안 500억 원 넘는 돈을 쓰고도 유가족들과 뜻있는 시민들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을 결론이라고 내놓고 해산되었다. “침몰 원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 한 문장이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과 악마성을 단순명쾌하게 웅변한다. 과업의 목적을 망각하고, 아까운 세월과 예산을 낭비한 것이다. “처삼촌네 벌초하듯” 한 거다. 그 중심에 문재인이 있었다. 그는 취임 초 스스로 ‘세월호 정권’이라 말했다. 또 그렇게 불렸다. 진상규명에 정권의 성패를 걸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사참위가 그 큰 예산을 가지고 그 긴 시간 동안 활동하고 나서 그 따위로 무책임한 결론을 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나라는 지금 붕괴 직전에 극심한 균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고층건물과 다름 없다. 그는 나라의 중대사들 대부분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하듯 처리했다. 대표적으로, 당장 파면해야 할 악인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편들었다. 비열한 아부였다. 윤석열은 문재인의 그 발언 덕분에 날개를 달았다. 세상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았던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거저 주워먹은 자가 무혈혁명의 주체인 위대한 시민들을 배반하고 펼친 저질정치의 끝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나라는 구렁텅이로 추락하고, 씨ᄋᆞᆯ들은 천길 벼랑에 섰다. 이 나라 역사는 늘 그렇게 죽었다 살아나기의 반복이었다. 그 고단하고 구슬픈 운명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정치에 기생하여 각각의 욕망을 아주 나쁜 방식으로 채우는 언론의 망국적 태도와 관련이 깊다. 일제 때는 왜경들의 서슬에 눌려지내다가, 해방이 되자 제 세상 만난 듯 주먹 하나 믿고 장터를 휩쓸고 다녔던 불량배 무리들이 있었다. 왈패(曰牌)다.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든 잔인하게 ‘다구리’쳤다. 정치권력에게는 저열하게 굴복하며 휘하(麾下)에 들었다. 이 나라 언론이 바로 그 왈패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사흘 앞둔 13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인근 해상을 대형 여객선이 항해하고 있다. 2023.4.13 연합뉴스 KBS는 지난 2월 15일,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과 함께 살아낼게〉를 방송하지 않기로 했다.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불방의 이유라고 한다. 선거가 끝난 뒤에 방송할 특집이 어찌하여 문제가 된다는 건지……. 이 정부는 이렇게 꼼꼼하게 나라를 망가뜨린다. 과거의 ‘땡전뉴스’와 참사 당시, 맨 앞에서 그 불가사의한 ‘오보사고’를 주도하던 저열한 본성을 노골화하고 있다. 상식과 윤리를 저버린 만행이다. 내가 ‘기레기론(論)’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다. 기레기! 이 ‘특이조류’의 난동을 지켜만 보는 것은 그 패거리를 묵인하는 것이며, 그에 더하여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집권세력이 1년 365일 비리와 악행을 지속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헬조선!’은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신음이며 비명이다. 여기는 유사 이래 ‘곡성(哭城)’이다. ‘기레기 저널리즘’이 그 저질정치의 파트너다. ‘기레기’는 이제 사전에도 어엿하게 자리잡았다. 기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품위를 따지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을 품성의 중요한 덕목으로 치는 사회라면, 특종경쟁을 신사적으로 벌이는 언론판이라면, 이 치욕적인 멸칭(蔑稱)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레기’의 사전적 정의를 내가 수정보완했다. “엉터리 저질 기사를 쓰는 기자를 비하하는 속어로,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이에 모욕감을 느끼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특정하는 경우가 아니면 신경쓰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당시 모든 매체들이 앞다투어 오보를 쏟아냈다. 그들은 ‘사실 확인은 불필요한 짓’이라는 엄한 계명을 준수하는 패거리 같았다. 어떤 매체는 오보를 넘어 조작질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공중파 방송이 그 나쁜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들은 오보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하고 버티다가 진정성 없는 메시지를 지껄였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이 신문사와 방송국에 불을 지르기 직전에 집단지성으로 변신하여 ‘기레기’라는 신조어를 ‘창제(創製)’한 것이다. ‘기레기’의 산모는 평화주의다. 이제는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쓰인다. 대법원은 기레기 호칭 소송에서 시민의 편을 들어주었다.” ‘오보쑈’, ‘오보축제’ 2014년 4월 16일! 10년 전 그날로 돌아가보자. 이날 오전, 모든 언론은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전원과 교사 전원이 구제되었다”고 보도했다. 첫번째 오보(誤報)였다. 오후 2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탑승객 477명 중 368명을 구조했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이를 즉시 받아썼다. 또 오보였다. 오후 3시, 중대본은 “368명이 아니고 180명을 구조했다”고 정정발표했다. 다시 오보였다. 오후 4시, 중대본은 “총탑승인원은 459명이며, 164명을 구조했다”고 정정하여 발표했다. 또다시 오보였다. 최종적으로 탑승인원은 476명, 생존자는 176명으로 집계되었다. 믿는 사람은 없었다. 24시간이 지났다. 4월 17일, YTN은 “오늘 낮 12시 30분부터 공기주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SBS는 “아침 7시부터 전문업체가 세월호 선체에 산소주입작업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온국민이 그 긴급조치가 성공하기를 간절하게 빌며 애태우며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이날 오후 충격적인 사실이 발표되었다. 해양수산부는 “산소공급장치가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언론은 산소주입기가 도착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산소주입이 시작되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또다시 오보였다. 하루가 또 지났다. 4월 18일 오후 4시 30분 KBS는 “구조당국, 선내 엉켜 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자막을 속보로 내보냈다. 이에 해경은 즉시 “시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대부분의 언론은 잠수부들이 선내 진입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잠시 후 중대본이 “선내진입이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오보였다. 한 실종자 가족은 “KBS가 조명탄을 터뜨려 구조하는 장면을 보도하던 시간에 잠수부들은 조명탄이 도착하지 않아서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폭로하며 몸부림쳤다. 조작이었다. 오보였다. 나는 이날부터 이 불가사의한 ‘오보사태’를 ‘오보쑈’, ‘오보축제’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날, 언론은 갑자기 소위 ‘구원파’와 교주 유병언을 다루기 시작한다. 참사의 책임을 박근혜에게 추궁하는 분위기로 국면 전환이 이루어졌을 때다. 박의 비서들이 청와대로 쏟아지는 불화살들을 세월호의 선주인 유병언에게 돌리는 더러운 술수를 쓴 것이다. 먹혔다. ‘오보쑈’에 전념하던 기레기들이 박근혜의 사냥개로 돌변하여 유병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유병언은 쫒기다가 자살했다. 실은 그 개떼의 자살이기도 했다. 위의 엉터리 보도사례들은 그 이후 끝도 없이 이어진 역대급 저질 참사보도 시리즈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에 분통을 터뜨리고 아구통 한 방으로 응어리가 풀리겠나. 나는 살의를 느꼈다. 유족들은 어땠을까. 정부가 수시로 틀린 숫자와 상황을 발표할 때마다, 나는 역할극 두 편을 동일한 시공간에서 관람하는 느낌이었다. 작품 1: 정신병동에서 중증환자 하나가 한 시간에 한 번씩 무게잡고 등장하여 아무 말이나 숫자를 씨부렁거린다. ‘보도’ 완장을 찬 ‘기자역할’의 환자들이 그걸 게걸스럽게 받아먹는 개돼지 노릇을 반복한다. 작품 2: 모든 언론이 지상최대의 ‘오보쑈’를 벌이기로 결의한다. 기자들이 활짝 웃으며 하트포즈의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곧바로 ‘관객역할’의 환자들을 쇠못이 박힌 채찍으로 휘갈긴다. 사디즘(sadism)극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라. 그들은 착한 씨ᄋᆞᆯ들이 ‘기레기’라고 불러주었기에 맞아 죽거나 찔려 죽거나 불타 죽지 않았다. 구원을 받은 것이다. ‘오보쑈’는 세상의 모든 논리와 맥락, 인간성이 휘발된 상태에서 자행되었다. 시궁창과 쓰레기의 욕망과 필요들이 무질서하게 착종되어 탄생한 괴생명체들의 난동이었다. 그 종말론적 시공간에서는 당연히, 정상이 비정상이다. 상식이 몰상식이다. 세월이 여러 해 지난 후, 그 칭호를 모욕으로 여기며 불편해하는 기자들을 종종 만난다. 내 기준이지만, 비교적 양질이다. 그들에게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먼저 부끄러워 해야 하오. 그보다 더한 멸칭이 나오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옳소. 그게 품위있는 처신이오. 그 마음으로 칼럼도 쓰고 강연도 하기 바라오. 후배들 계몽도 하시고……. ” 이렇게 말하면, 예외없이 받아들인다. 교양있고 겸손한 품성 탓이겠지만, 실은 매우 지혜로운 태도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이 소수의 선량(善良)들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 오늘은 가능성이 없어보이지만, 그 일부가 인정받고 존경받으며 성장하여, 부장도 되고 국장도 되고, 극소수가 사장이 된다면, 끝내 그 1할이 9할을 이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론판이 점진적으로 ‘질적 전화(轉化)’를 이룰 것이다. 기레기질 백태 젊은 날 한 기업의 홍보담당으로 일했다. 그때 또래의 기자에게서 들은 얘기다. “기자(記者)와 정자(精子)의 차이를 아는가?” 우스갯소리였다. “정자는 사람될 확률은 2억분의 1인데, 기자는 그 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멸칭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자기들이 나쁜 짐승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연이어 “기자와 경찰과 거지가 함께 식사할 때 밥값을 누가 내겠소?” 하고 물었다. 나는 경찰이라고 했다. 그가 알려준 답은 ‘식당주인’이었다. 또 다른 기담괴설(竒談怪說). 신입기자들 경찰서 돌면서 거칠고 공격적인 기자로 콩나물처럼 자랄 때, 비싼 안주에 폭탄주 잘 얻어마시고 큰형 나이의 파출소장이나 삼촌뻘 경찰서장에게 작은 트집을 잡아서 ‘찍짜’ 붙는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침내 상대가 분에 못이겨 큰 실수하게 유도한다. 그 때 절묘한 타이밍을 잡아 쌍욕을 하거나, 뺨을 갈기는 것이다. 선배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 미친 짓을 가장 먼저 하는 놈을 미래의 ‘국장깜’으로 정해놓고 그 ‘신삥’을 전 국장, 이 국장, 장 국장으로 불러주며 밀어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나보다 15년쯤 연상으로 유력지 임원의 얘기였으니 뻥은 아니었을 거다. 실제로 그들과 관계하면서 그 이상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짐승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시절 기자들의 상당수는 이처럼 안하무인에다 파렴치하고 괴이쩍게 살았다. 나이들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욱더 역겨워졌다. 그때부터는 출입처에서 취할 수 있는 이권이 무엇인지, 찾는다. 까놓고 “뭐 좀 없나”고 묻기도 했다. 어떤 기자는 회장, 사장의 좋지 않은 루머를 들고 와서 미팅 주선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사 쓰지 않는 대신 원하는 게 있었다. 몸 생각해서 나오지 말고 법인카드를 빌려달라는 기자도 있었다. 몇년 전, 한 신문사의 대표였던 친구가 말했다. “촌지는 이전의 10%로 줄었다”는 것. 흥미롭지 않은가. 인터넷시대의 변화다. 그렇게 싸구려 인생으로 전락한 자들의 특징은 그렇게 뭘 이것저것 얻어먹으면서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더라는 점이다. 그건 분명히 자신들도 주는 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기대 이상의 기사를 써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예외 없이 바라는 게 특별했다. 목돈 부탁이나 취업 청탁 같은……. 그때나 지금이나 취직은 한 가족을 구해주는 것이다. 취업이 확정된 후, 보답은 거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한겨레》의 법조팀장을 지낸 석진환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나를 포함하여 창간발기인들 4,000여 명과 평생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 나라 언론판에서 업자와 가장 큰 규모―6억 원인가 9억 원인가―의 돈거래를 한 게 《한겨레》 기자였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세기 말의 ‘군계일학’ 한겨레여! 그대들에게는 이제 세상의 약자들을 보듬던 사랑은 식은 지 오래고, 명예 역시 거추장스러운 가치이며, 이름값 또한 시시한 자산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오랜 시간 가족의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그날 수첩에 적힌 나의 메모다. (*석진환과 김만배의 돈거래는 대장동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검찰은 개인간의 채권채무관계로 결론짓고 형사처벌은 하지 못했다. 《한겨레》도 해고로 마무리지었다.) 내가 젊은 날에 만났던 기자들 가운데 적어도 절반은 요즘의 ‘기레기’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그렇다고 나머지는 다 훌륭했다는 말이 아니다. 정통파는 1할 안쪽이었다. 오늘의 ‘기레기현상’은 그 부끄러운 전통이 만든 이 ‘막가파 세상’의 듬직한 인프라다. 다시 말하지만, 세월호 참사보도는 ‘오보쑈’, ‘오보축제’였다. 우리 저널리즘 역사에서 그같은 저급성과 악마성을 특징으로 하여 전개된 오보사태는 초유의 일이었다. 그렇게 하려고 해도 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설의 완벽’이었다. 눈앞에서 수백명의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기계처럼, 아니 기계로서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절망과 분노, 살의와 절제가 믹스되어 탄생한 개념이 ‘기레기’다. 최근 《관훈저널》 2023년 겨울호에서 임철순 선생의 기자인생 회고록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저서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도 탐독했다. 《한국일보》에서 평생을 보낸 분인데, 이 세상이 기자를 ‘기레기’로 통칭하는 것에 대해 모욕감이 심했을 것 같다. 언론계에서 평생을 보낸 원로들은 대부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유일대안 정론직필 우리 저널리즘 역사에서 정말로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생을 걸고 온몸으로 실천하며 입증한 기자들이 있었다. 진실과 정의의 세상을 향한 소명의식이 그들의 직업윤리였다. 그들은 예외없이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초인들이었다. 창공의 성좌였다. 그 대표적인 매체가 《씨ᄋᆞᆯ의소리》였으며, 그 발행인은 바보새 함석헌이었다. “신문(언론)은 씨ᄋᆞᆯ들의 눈이요, 입이다. 그런데 나쁜 정치가 씨ᄋᆞᆯ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을 가리고 보여주지 않는다. 하고 싶어 못견디는 말을 못하도록 입을 막는다.” 이는 함 선생이 《씨ᄋᆞᆯ의소리》의 창간 취지로 하신 말씀이다. 언론이 망가지면 세상이 망가진다. 법칙이다. 진리다. 언로(言路)는 우리의 몸의 혈관이고 그 복잡다단한 혈류들이며, 호흡기관이다. 몽매의 세상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시각기관이며, 미세한 소리도 듣고 옳게 반응하도록 하는 청각기관이다. 건강한 세상의 절대적 요건이다. 한국 언론은 말기암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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