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쿠어리어스 / 렛 더 선샤인 인 부른 라몬테 맥레모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라몬테 맥레모어(왼쪽부터)와 플로렌스 라루, 론 타운슨, 마릴린 맥쿠, 빌리 데이비스 주니어 등 피프스 디멘션 멤버들이 1968년 2월 29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팝과 솔을 섞은 사운드에 사이키델릭 요소를 가미해 1960년대와 197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흑인 혼성 보컬 그룹 피프스 디멘션 (The 5th Dimension) 창립 멤버인 라몬테 맥레모어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허프포스트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그룹 이름이 긴가민가 하는 국내 팬들은 이들의 1969년 히트곡 어쿠어리어스/ 렛 더 선샤인 인 의 경쾌한 멜로디를 들으면 무릎을 탁 칠 것이다.
인류가 갑자기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게 돼 새로운 점성술 시대가 됐다는 낙관적인 노랫말과 흥겨운 멜로디는 베트남전 반대로 뜨거웠던 젊은이들과 정반대 쪽에서 젊은이들의 위안이 됐다.
맥레모어는 지난 3일 라스베이거스 자택에서 가족들이 둘러싼 가운데 뇌졸중으로 자연사했다고 대리인 제레미 웨스트비가 성명을 통해 밝혔다.
피프스 디멘션은 폭넓은 크로스오버 성공을 거뒀으며, 업, 업 앤드 어웨이 (1967)와 어쿠어리어스/ 렛 더 선샤인 인 으로 두 차례 올해의 음반을 차지하는 등 여섯 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두 노래 모두 팝 차트 톱 10 안에 들었고, 어쿠어리어스 는 저유명한 반문화 뮤지컬 헤어 곡들을 모아 6주 연속 1위를 지켰다.
맥레모어는 스포츠 및 유명인 사진작가 일도 함께 해 그의 사진이 잡지 제트 등에 실렸다.
1935년 9월 17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맥레모어는 고교를 마친 뒤 해군에 자원, 항공 사진병으로 복무했다. 1958년부터 사진작가로 일해 하퍼스 바자에 고용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진작가로 기록된다. 스티비 원더의 첫 앨범 커버 사진을 찍기도 했다. 40년 넘게 제트와 에보니 잡지의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1960년대 중반 미스 블랙 뷰티 대회에서의 사진 촬영을 하다 마릴린 맥쿠와 플로렌스 라루를 만나게 됐고, 이 인연이 결국 피프스 디멘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는 또 미프로야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첫 입단 테스트를 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란 기록도 남겼다.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뒤에는 다저스 구단 마이너리그 포수로도 뛰어다. 따뜻한 베이스 목소리와 카메라 다루는 실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맥쿠와 함께 재즈 앙상블인 하이파이스(Hi-Fi s)에서 노래했다. 이 그룹은 1963년 레이 찰스의 오프닝 무대를 맡았으나 다음 해 해체됐다.
맥레모어와 맥쿠,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어린 시절 친구 빌리 데이비스 주니어와 로널드 타우슨은 이후 버스타일스라는 노래 그룹을 결성했다. 또 맥레모어가 사진 작업을 하다 인연을 맺은 교사 라루도 합류했다. 1965년 그들은 가수 조니 리버스의 새 레이블인 소울 시티 레코드와 계약하고, 그룹 이름을 피프스 디멘션 으로 변경했다.
이들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1967년 마마스 앤 더 파파스의 곡 고 웨어 유 원트트 투 고 였다. 같은 해에 지미 웹이 작곡한 업, 업 앤드 어웨이 를 발표했으며,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차트 7위에 올랐고 올해의 앨범, 최고의 컨템포러리 싱글, 최우수 보컬 그룹 퍼포먼스, 최우수 컨템포러리 그룹 퍼포먼스 등 그래미상 4개를 수상했다.
1968년에는 로라 니로의 곡 스톤드 솔 피크닉 과 스위트 블라인드니스 로 히트를 기록했다. 이듬해는 아쿠아리우스/ 렛 더 선샤인 인 으로 상업적 성공의 정점을 맞이했으며, 이 곡은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하며 그래미 올해의 음반상과 그룹 부문 최우수 컨템포러리 보컬 퍼포먼스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그들은 블랙 우드스톡 으로 알려진 할렘 문화 축제에 참가했다. 이 페스티벌과 피프스 디멘션 의 역할은 아미르 퀘스트러브 톰프슨의 2021년 다큐멘터리 서머 오브 솔 에 잘 기록돼 있다.
피프스 디멘션은 멤버가 모두 흑인인 그룹치고는 백인 관객들에게 드문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공격도 잇따랐다.
맥쿠는 서머 오브 솔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격당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충분히 흑인 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면서 가끔 우리는 백인 소리가 나오는 흑인 그룹이라고 불렸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는 흑인 예술가이고, 우리의 목소리는 그렇게 들린다 고 털어놓았다.
그룹은 1970년대까지 원 레스 벨 투 앤서 , (라스트 나이트) 아이 디든트 겟 투 슬립 앳 올 , 이프 아이 쿠드 리치 유 등 히트곡을 남겼다. 이들은 TV 버라이어티 쇼의 단골 출연자가 됐고, 백악관과 국무부가 주최한 국제 문화 투어 무대에도 섰다.
창립 멤버 라인업은 1975년까지 유지됐고, 그 해 맥쿠와 데이비스가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떠났다. 1969년 결혼한 맥쿠와 데이비스는 애도 성명을 내 그를 알고 사랑했던 우리 모두는 그의 에너지와 훌륭한 유머 감각이 분명히 그리울 것 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라루 역시 성명을 통해 맥레모어의 쾌활함과 웃음이 어려운 시기에 나에게 힘과 상쾌함을 줬다. 우리는 노래 파트너라기보다는 남매 같았다 고 추모했다.
고인은 30년을 함께한 부인 미에코 맥레모어, 딸 시아라, 아들 다린, 여동생 조안, 그리고 세 손주를 유족으로 남겼다. 시아라는 첫 부인 리사 하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2014년 로버트 앨런 아르노와 함께 자서전 호보 플랫에서 5차원까지 – 야구, 사진, 음악으로 충만한 삶 을 펴냈다.